태극기 다는 날 지식이 잘잘잘
김용란 지음, 강지영 그림 / 한솔수북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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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뭘로 할까 잠시 고민했다. 슬픈 색깔을 말하고 싶었다. 슬픔만이 아니라 환희도 말하고 싶었고 희망도, 미래도 담고 싶었다. 기쁨은 슬픔이 있어야 기쁨인 줄 안다. '슬픔이 기쁨을 빛나게 한다'라고 할껄 그랬나...

 

맞다. 독특한 지식 그림책이다. 여기서, 나에게 독특함이란 우리나라 국기에 관한 그림책임에도 낯설다는 의미도 지닌다.

 

태극기를 일러주는 꼬마아이는 삼일독립운동을 하던 유관순의 어린 모습을 연상시킨다. 하양저고리에 까만치마 혹은 5, 60년대 초등학생 즈음이었을 우리들의 엄마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얀 반팔티와 까만 짤뚱치마. 음. 만국기 휘날리던 운동회와 공굴리기하는 작은 아이를 떠올리게도 하고.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한 모양새다.

 

앞표지에는 제목 그대로 태극기를 달고 있다. 그런데 완성된 태극기를 휘날리게 다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대표하는 식구들이-아마 국민 대표들이겠지- 태극을 들어올려 옮기고 있고, 사괘중 상부의 두 개가 사슬에 매달려 끌어올려져 자리를 잡는 중이며, 우람한 삼촌쯤-아니 운동선수 쯤이려나 다른 사쾌를 만들 검정 도막들을 손으로 잡고 있다. 속표지로 들어가면 파란 구슬 한 알과 빨간 구슬 하나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굴러가고 있다. 그리고 속제목들을 넘기고 나면 구슬은 고전적인 단발머리의 동글여자아이에게 넘어가 있다. 아인 머리 위에 구슬 두 개를 겹쳐들고 아마도 굴릴 준비를 하는 것일게다.

책장을 넘기면 본문이 시작된다. 구슬을 또르르 굴리는 것으로. 돼지꼬리를 따라 제멋대로 튀는 듯이 구르던 구슬들은 튀기며 반쯤 뭉개지고, 다시 구르고 튀어오르며 각이 생기고, 날아 구르며 살랑살랑 꼬리를 만든다. 그러다 어디 있었니 내 반쪽하는 모습으로 빨강, 파랑 태극이 완성된다. 그리고 세월의 때가 묻은 고궁의 현판, 대문, 기둥, 문갑, 부채 등이 자신들이 품은 태극을 보여준다. 마치 그 태극을, 서서 혹은 매달려서 그리고 있는 듯한 아이의 동작이 재밌다.

드디어 표지그림의 태극기가 등장한다. 그리고 태극의 무늬는 태극 소용돌이가 되어 태극기 모양, 빛깔, 무늬마다의 뜻에 걸맞는 평화와 화합과 완전한 발전을 말해주는 듯하다. 다음 장에는 사쾌가 등장한다. 네 개의 괘는 마치 계절의 기둥처럼 세워져 그 뜻의 일부를 보여주고 있다. 상당히 괜찮은 발상이다.

장을 넘기니 태극기의 변천사가 한 장에 담겨있다. 빨간태극과 파란태극이 자리가 바뀌거나 세워져있던 걸 눈여겨 본 적이 없었다. 우리나라 국기가 항상 지금의 모습은 아니었었구나하고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 까망이 태극에 쓰였던 것도. 태극기에 서명을 해도 되는 것도. 사실 태극기에 무엇인가를 쓰면 국가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낙서를 해서도 뭔가 얼룩이 생겨서도. 나는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은 절대법칙인 줄 알고 사수하던 차칸 어린이였다. 지금도 거기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나? 사실 sign은 낙서나 얼룩은 아니니까 괜찮은 건가? 나도 지금의 태극기가 제일 멋있다. 내 눈에 익은 건 지금의 태극기니까.

이어 태극기 다는 법과 태극기 다는 날에 대해 알려준다. 기뻐서 빨강, 슬퍼서 파랑. 이런 기분과 색깔로 독립만세운동, 나라를 되찾고 나라를 지키며 단군할아버지와 세종대왕님의 뜻을 받들어온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 와중에 역사의 꽃이 된 넋들을 기리는 꽃들도 핀다.

 

아이는 고깔모자를 쓰고 케잌위에 앚아 다시 훨훨 날아가려는 태극과 사괘를 바라본다. 그리고 묻는다. ‘태극기는 나라에서 정한 날에만 달까?’하고. 거기에 기쁜 답을 한다. ‘날마다 달아도 좋’고. 생일날 다는 것도 괜찮다고. 제일 신나는 구절이다.

역사의 태극 양탄자를 타고 만세를 부르는 동글이 뒤로 미래의 어느 즈음에서 볼 서울의 모습이 흑백으로 깔리며 본문은 끝난다.

 

지식그림책 답게 책 말미에는 역사 속 태극기를 소개한다. 태극기 변천사에 담겨있던 태극기들을 이러저러한 사연과 함께 설명해준다. 그리고 태극기의 무늬와 빛깔의 뜻을 ‘알아봐요’하며 정리해뒀고, 마지막으로 ‘그려봐요’라며 태극기 그리는 규칙을 제시하고 태극기를 보관함에 담으며 마친다.

 

낯선 그림책이었다. 그래서 한 번 보고 덮어두고, 두 번 보고 덮어두고, 잠자리 옆에 계속 내비두고. 그러다 오늘은 한 장 한 장 다시 들춰보며 이 글을 썼다. 그리고 뒷표지에 태극기를 꽂아둔 그 하얀 산은 어딜까 상상해 본다. 내가 아는 한 가장 높다는 에베레스트 산일까? 우리 한반도에서 제일 높다는 백두산일까? 그도 아님 저 드넓다는 만주벌판의 어느 언덕일까?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아이는 책을 새로 꺼내놓자마자 또 달라들어서 봤다. 그리곤 덮었다. '저 책 엄마랑 같이 봐야 하는데, 엄마 도와줄 일이 있어’라고 했더니 ‘난 벌써 봤어’란다. 어떠냐고 물었더니 슬프단다.

 

- 그래?

- 응. 슬픈 책이야. 색깔이 빨강, 파랑, 하양, 검정 네 개 밖에 없어. 그래서 슬퍼.

 

그렇다. 아! 그 낯섬의 정체가 그거였구나 싶었다. 네 가지 색만 쓰였다. 맞다.

마치, ‘포스터를 그릴 때는 두 세 가지 색으로 눈에 띠게 그려야 한다’라고 했던 초등학교 미술시간과 숙제들이 생각났다.

 

태극기에 쓰인 색으로만 만든 책이었다. 태극기의 의미를 하나하나 그림에 담아 구성한 책이다. 새록새록 태극기에 애정이 배어나오게 만든다, 이 작은 그림책이.

 

딸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너 태극기 언제 언제 다는지 알고 있었지? 어떻게 다는지도 알고 있었지? 이런 거 유치원에서 다 배운다. 유치원 다니면 국경일에 태극기 꼭 달아야 한다. 엄마가 해야 하는 숙제다.

 

- 그런데, 너. 이 책 보면서 새로 알게 된 게 뭐야?

- (여전히 슬픈 얼굴로 책장을 넘기더니 조기 다는 방법을 알려주는 쪽을 펼친다) 이거.

- 슬픈 날 태극기 내려다는 건 알고 있었잖아?

- 이건 잘 몰랐어(아이는 ‘깃봉에서 태극기의 한 폭만큼 내려서’ 단다는 구절을 가리킨다).

- 아아~. 이걸 새로 알았구나. 너 사괘가 무슨 뜻인지는 알았어?

- 응. 알았어.(하지만, 이건 사괘를 설명하는 각각의 말뜻을 안다는 게 아닐까 하고 그 엄마는 짐작한다)

그리곤 다시 물었다.

- 이게 슬픈 책이기는 했어도 재미있는 그림, 있었어?

- (아이는 책장을 다시 넘기며 찾는다. 그러더니 사괘를 설명하는 그림을 펼치곤 맨 오른쪽 태극 물방울을 가리킨다) 이거.

- 오마, 이게 재밌었구나? 뭐가 재밌었어?

아이는 빨간, 파랑이 물방울 모양으로 맺힌 게 재밌다고 한다. 나는 이걸 ‘겨울에 내리는 눈’이라고 생각했었다.

- 그리고 또 뭐가 재밌었어?

- 엄마, 태극기는 생일날에도 달아도 되게 안되게?

- 글쎄. 달아도 되지 않을까?

- (아이는 태극색의 케잌이 그려진 페이지를 폈다) 딩동댕!

 

아! 지식 그림책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지식’이고 아이가 확~ 믿어버린다.

 

고학년은 사이즈별 태극기 그리기를 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이건 비와 비례를 이용해야 계산할 수 있다. ㅋㅋ 아주 좋은 수학활동이다! 전학년 모두 미래의 태극기, 그러니까 우주시대의 태극기라던가, 아니면 옛날로 돌아가 고조선이나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고려, 조선 시대의 태극기 그려보기 이런 것도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다. 태극 무늬 넣은 옷을 만들어 인형에게 입혀도 좋고, 태극 집을 설계해봐도 좋을 것이고, 인테리어 소품을 디자인해봐도 재미있겠다.

 

참. 조금은 닫힌 시각에서 느껴지는 걸까?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 다시 찾은 우리나라 국기(라고 생각함)에 우리나라를 지키는 군인아저씨들이 경례를 하고 있는데 왜 우리 국군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나는 뽀빠이만 생각이 나서 기분이 나빴다. 아~~ 좋은 얘기만 쓰고 싶었는데, 깨알 재미도 찾고 있었고. 근데, 이 그림은 나의 심기를 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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