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과 열 세 남자, 집 나가면 생고생 그래도 나간다 - 웃자고 한 일에 죽자고 덤빈 우리 바닷길 3000km 일주 탐나는 캠핑 3
허영만.송철웅 지음 / 가디언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외출 후 돌아오셔선 짐을 싸서 이사를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모르는 사람의 채무를 짊어졌다든가, 빚쟁이들에 쫓겨 급하게 야밤도주하듯 이사를 가야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목회자 이시고, 직업의 특성상 어릴적부터 이곳 저곳 자주 이사를 해야만 했다. 도시에서의 삶에 푹 젖어있던 우리들 삼남매. 어릴적의 잦은 이사로 변변찮은 친구들도 못 사귀어보고 이곳저곳을 옮겨다닌다는게 우리에겐 참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물론 재미나고 좋은 기억들도 있지만). 그렇게 이사를 간 곳이 바로 '영덕 강구'였다. 우리가 이사를 가자마자 모 방송국의 드라마가 촬영하는 일이 벌어졌고 순식간에 내가 사는곳은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것에 신경쓰지 않았다. 우리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푸르디 푸른 넓은 바다였다. 늘 말로만 듣던 바다. 새파란 바다. 넘실대던 높은 파도. 그리고 여기저기 널어 말리는 오징어들과 끼룩끼룩 울어대던 갈매기들까지.

 

우리들은 집이 좁고, 낡았고, 불편했지만 순식간에 동네를 점령하고 다니며 바닷가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한여름만을 손꼽아 기다렸고, 태양이 내리쬐는 오후 1~2시때가 되면 '바다 가자~~~'라는 아버지의 말씀만 들렸다 하면 튜브에 바람넣고, 손과 발을 헹굴 식수를 넣어 바닷가로 달려갔다. 그렇게 두 세시간을 놀다 보면 금새 입술이 새파랗게 변하고, 추위에 오들오들 떨었지만 조금이라도 더 바다에서 놀기를 갈망했다. 언젠가는 폭풍 주의보가 내린줄도 모르고 바닷가로 뛰어가 앞으로, 뒤로 떼굴떼굴 굴러가면서(신이나서 꺅꺅대며)놀았던 기억이 있다. 물론, 온 몸엔 상처투성이었다! ^^

 

그렇게 바닷가에서 살기를 11년. 우리들은 지금 육지로 떠나 와 한적한 시골에서 살아가고 있다. 여기서 산 지도 벌써 10년 가까이 되어간다. 그간 바다를 늘 그리워하며 마음앓이를 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서평도서로 올라온 이 책을 보고는 정말 뛸뜻이 기뻤다. 허영만 화백의 지난 책 <허패의 집단가출>을 너무나도 재미나게 읽었던 터라 이번에도 신청을 했다. 당첨이 되어서 너무 기뻤다.

 

지난번의 책은 <캐나다 로키산맥>위주의 등산 스토리였다면, 이번에는 국내 바닷길 3000km를 일주하는 이야기였다. 그것도 요트로!

사건의 발단은  '식객' 선술집에 모여든 '침낭과 막걸리' 멤버의 대장격인 허영만 화백의 한 마디로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길은 어디나 있잖아? 돛단배를 타고 바다의 백두대간을 가는 거 어때? 서해에서 남해를 돌아 국토의 막내, 독도까지!"

 

그렇게 시작된 허영만 화백과 13남자들의 항해 일주.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이 책 속에 담겨있었다. 바다 위에서의 처절한 사투, 어민들의 따뜻한 마음씨, '집단가출'이라 명명한 배의 이름을 보고는 웃음을 참던 해경들, 군복을 벗어던지며 싸인해 달라며 등짝을 내밀던 군인들까지 생생한 사진과 글 솜씨에 난 금새 흠뻑 빠져들었다. 책장을 한장한장 넘기는게 아쉬울 정도였다.

 

요트라면 늘씬늘씬하고 이쁜 아가씨들과 값비싼 포도주를 떠올리겠지만 중년 남성들 13명이 떠나는 여행에 그런게 있을리가. 한때 요트경기에서 이름을 날렸다는 배를 만나러 가니 온통 수리를 해야 할 판이었다. 13명이 달려들어 배 수리를 끝내고 바다위를 달릴때의 기분은 어떠했을까. 좋은 풍랑을 만나 항해를 쉬이 한적도 있었고, 또 폭풍우와 비를 만나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여야 했던 적도 있었다. 선술집에서 농담 삼아 던졌던 말 한마디에 이리 똘똘 뭉쳐 멋진 여행으로 실천을 옮길 수 있음이 부러우면서도 그 패기넘침에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었다.

 

육지에선 나름 가정도 꾸리고, 직장도 있듯이 사회에서 묵묵히 제 할일을 감당해나가며 살아온 중년 남성들 이었다. 하지만, 책을 펼쳐서 보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들의 표정은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고정된 사진속의 모습이었지만 그들의 모습에서 난 살아 펄떡펄떡 움직이는 싱싱한 모습을 본 것만 같다. 그만큼 그들의 표정은 살아있었고, 또 생생했고, 또 어떨 땐 어린 소년들 같았다.

 

출렁출렁이는 파도위 바다에서만 생활하다 육지에 닿았을땐 모두가 힘껏 원없이 달리고 싶어 진다고들 한다.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스피드로 단단한 땅 위를 달리는 그들의 표정은 정말 해맑았다. 개구진 소년같았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 또한 키득 거리며 웃을 수 있었다. 식사 후, 벌어진 윷놀이에서 진 OB(Old boy?)팀이 엄동설한에 차가운 물로 설겆이를 하는가 하면, 전날에 식량을 다 없애버려 먹을게 없을때 요리도구를 뒤집어쓰고 찍은 개구진 사진들도 재미있었다. 마라도에서의 먹다보면 누구 하나 업어가도 모른다고 할 정도로 맛좋다는 선상에서의 자장면도 맛있어 보였고, 폭풍이 몰아쳐 배가 떠내려갈 상황에서 대원들이 배를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일 때에 육지에서 마냥 지켜보기만 했을 허 화백의 심정은 또 오죽했을까.

 

여러 명이 여행을 하다보면 트러블도 많이 생길테고, 또 불미스런 일도 많이 생길텐데 끈끈한 정과 우정으로 다져진 남자들의 여행기를 읽을 때면 왠지 나도 모르게 그 무리의 일원이 된 것만 같았다. 함께 배 위에서 요리를 하고, 함께 폭풍속을 뚫고 항해를 하고, 함께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비박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일주기가 생생했고 또 마음에 와닿았다.

 

허 화백의 팬이 된 만큼 이러한 여행기가 또 나와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든다. 그래야 또 그들의 일원이 되어 전국 방방 곡곡을 누비고 다닐 수 있을테니 말이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나도 그들의 무리에 실제로 껴서 비박을 해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밤 하늘의 초롱초롱한 별을 보며 잠이 들고, 자연 속에서 눈을 뜬다면 이 보다 더 행복한 생활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오래오래 건강히 사시길 바라며, 이런 재미난 여행기가 또 우리들 곁으로 찾아와 주길 간절히 바라본다. 집단가출,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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