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자고 우린 열일곱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42
이옥수 지음 / 비룡소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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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에 이모 공장 한구석에서 시다(보조)일을 해본적이 있었다. 이모 생전에 아르바이트라 명명하며, 부족한 일손을 보태어 보고자 공장엘 가끔씩 들러 도와드리곤 했었는데 내가 한 일은 고작 시다 밖엔 할 것이 없었다. 네대의 재봉틀에서 드드득 거리며 옷이 만들어 지고 난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옷과 옷 사이에 연결된 실밥을 쪽가위로 따고 잘 개켜 놓는 일이었다.

 

이 일도 동작이 굼떠서 시간내에 못맞춰 이모와 엄마 동생에게 가끔 잔소리를 들을때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책 속의 세 소녀의 삶에 금방 빠져들 수 있었던 것 같다.

 

책속에서 만난 세 소녀의 삶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싱그럽고 푸르른 풀밭위의 제목 <어쩌자고 우린 열일곱>은 너무나도 애절한 제목이었다.

 

시골에서 쭉 커온 세 소녀(순지, 정애, 은영)는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가족들의 생계를 짊어진 채 서울로 향하게 된다. 지하 단칸방에서 시작된 세 소녀의 꿈은 병 속에 갇혀있던 나비와 같이 으스러 지고 만다. 정애와 은영의 죽음으로 인해 순지는 말문을 닫아 버렸다. 언제고 함께하며 인생을 만들어 가자던 친구들을 잃은 순지의 마음속 말이 너무나도 아프게 읽혔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순지의 목소리다 못해 핏물 뚝뚝 흐르는 절규와도 같았다. 다니던 전자부품 회사에서 나와 다시금 일을 찾아 들어간 곳이 미싱공장 이었다. 이곳의 건물은 '불법' 이었다. 창문엔 창살로 막아놓았고, 십대 소녀들을 공장 직원으로 쓰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철제 셔터 문으로 위장을 해놓은 곳이었다. 그래서 화재가 났을 때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한 소녀들이 그곳에서 처참하게 죽어갔다.

 

인생을 만들어 가자던..... 은영이가, 정애가 가버렸다.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친구들의 죽음을 들은 순지는 공장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목놓아 친구들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그것은 소리없는 절규일 뿐이었다. 소리가 사라졌다. 재자불 재자불 예쁘게 쫑알 거리던 목소리가 사라져 버렸다. 그 대신에 순지는 마음속에서만 외쳐댈 뿐인 그 말들이 너무나도 마음이 아파서 책을 읽는 내내 울었다.

 

요즘의 아이들은 어떨까? 자연스레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엘 들어간다. 그런 어찌보면 당연스런 정규 교육과정을 따라가는 것이 당연스레 생각되는걸까? 아님 아주 조금이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았을까? 궁금했다. 물어보고 싶었다.

 

순지의 엄마는 순지의 몸에 죽은 아이들의 혼이 붙어 있는 것이라고 믿어 굿을 한판 벌이려 한다. 굿이라니. 엄마. 정애와 은영이는 그런 애들이 아니야. 절대 그럴리가 없어. 라고 이야길 하고 싶지만 마음속에서만 외쳐댈 뿐이다. 굿은 순지의 오빠인 순식이가 순지를 들쳐업고 도망가버려 실패를 했지만 순지가 마음속으로 오랫동안 좋아해온 정애의 오빠인 정태가 순지를 병원에 입원시켜 치료를 받게 한다. 의사선생님과의 상담을 통해 순지는 조금씩 끔찍했던 화재의 순간들을 직면하게 되고, 마음속에 응어리 져 있던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웃지않던 순지가 조금씩 웃음을 지을 수 있게 되고, 불 속에서 고통스러워 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대신 친구들과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곤 하는 순지가 좋았다.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조금씩 조금씩 상처를 치유해 나가던 순지는......... 결국 말문이 트이게 되고 좋아하는 정태 오빠를 오빠.. 라고 부르게된다.

 

그 순간 순지의 어깨를 꼭 끌어안아 주고 싶었다. 잘했어 순지야. 정말 잘했어... 인생은 그렇게 살아가는 거야. 라고. 아마 그 순간을 정애와 은영이도 바라보고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정애도 은영이도 오랫동안 순지의 마음속에 있던 응어리들도 노오란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올랐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땅의 청소년들이 앞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하며 밝게 살아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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