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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후예들 - 대한제국 후예들의 삶으로 읽는 한반도 백년사
정범준 지음 / 황소자리 / 2006년 5월
평점 :
순종은 조선의 마지막 '왕'인가? 아니면 대한제국의 두번째이자 마지막 '황제'인가? 재위시 '융희'라는 연호를 사용했던 순종은 대한제국의 두번째이자 마지막 황제임에는 틀림 없지만, 조선의 마지막 '왕'이라는 표현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우리가 흔히 '국치일'로 기억하는 1910년 8월 27일의 한일합방을 통해 일제는 대한제국의 국호를 조선으로, 황제를 '왕'으로 격하시켰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으니 한국이라는 나라는 없어져버린 것이 아니라, 일제는 조선의 '왕'을 비록 꼭두각시이기는 하지만 그대로 둠으로써 그들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조선백성들의 저항을 조금이나마 무마시키려 한 것이다. 물론 그들의 임금을 '천황'이라하고 '천자'와 제후인 '왕'의 봉건관계가 더 익숙한 일본의 입장에서는 식민지 조선을 그대로 일본과는 분리된 제후국 정도의 '국가'로 인식하는데는 모순이 없었나 보다.
아무튼 순종이 붕어한 1926년 이후 황태자에서 세자로 격하되었던 '영친왕' 이은이 조선의 28대 국왕으로서 왕위를 이었고, 1945년 일본이 미국에 패하고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천황'만 남겨두고 모든 왕공족 제도가 폐지되면서 '평민'으로 격하될때까지 이은은 명목상 조선의 왕으로 남겨져 있었던 것이다. 비록 식민지였지만 일국의 왕이 볼모로서 식민지 종주국의 일개 장교로(나중에는 중장까지 진급했다지만) 복무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 국민에게는 참을 수 없는 수치이지만, 왕위를 강제로 빼앗긴 것도 공식적으로 퇴위하지도 않은채, 정적인 이승만에 의해 귀국을 방해당하고 조선왕조의 법적/제도적인 청산도 없이 대한민국이 건국된 것은 뭔가 허술해 보인다.
건국한지 60년이나 된 '대한민국'이 아직도 일제 잔재와 친일파 정리의 해묵은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음은, 부패/무능한 임금의 목을 쳐본 민주주의 쟁취의 경험도 조선왕조의 완전한 단절이나 계승도 없이, 친일부역자에 대한 청산도 독립투사에 대한 평가도 거치지 않고 미군정에 의해 갑자기 탄생한 '공화정' 자체가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몇달전 한겨례21에서 우연히 만난 '대한제국 마지막 황손 이우, 야스쿠니에 있다'라는 기사를 읽은 후 관심을 가지게 된 '대한제국' 후손들의 삶과 행적을 살펴보다 우연히 '정범준'이라는 필명을 쓰는 같은 세대 작가의 책을 접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방대한 자료를 근거로 최대한 객관적으로 과대평가나 폄훼없이 여러 인물들의 행적에 대해 소상히 쓴 노력이 돋보였고, 또한 능력이나 의지와 무관하게 도도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거친 파도를 헤쳐가다 좌절한 황실 식구들에 대한 연민이 가슴에 절절하게 와닿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매력적인 '왕자'로 호감을 가지고 있던 '의친왕' 이강공과 운현궁으로 입적된 그의 차남 이우공의 행적에서, 의친왕이 상해 탈출에 성공했다면, 또는 이우공이 히로시마로 떠나지 않고 살아서 해방을 맞았다면 오늘의 우리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부질없는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