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를 찾아서 - 인간의 기억에 대한 모든 것
윌바 외스트뷔.힐데 외스트뷔 지음, 안미란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기억을 연구했던 다양한 배경을 소개한 책입니다. 인간의 기억에는 뇌의 다양한 부분에서 담당하지만, 이 책에서는 '해마'를 중심으로 소개합니다.  이 책을 통해 뇌과학을 깊이있게 공부하자는 목적을 가진 책은 아니고, 뇌과학 지식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우리 인간의 기억에 관심을 갖고 있거나 갖고 싶은 독자가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목차를 보니 서문도 없고 바로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첫 장을 읽고 나니 본문이 굳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면 첫 장에서는 바로 인간이 해마를 처음으로 발견한 이야기부터 시작하니 이것이 바로 서문이겠다 싶었습니다. 첫 장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사실 첫 장에 담긴 내용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헨리 몰레이슨에 대한 연구"인데요. #헨리몰레이슨 은 뇌전증(간질)을 앓는 환자로 자주 발작이 일어나 1953년 전두엽 절제술을 받으면서 해마를 적출했다고 하는데요. 그 이후 발작 증세는 호전되었지만 새로운 기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결과를 불러왔습니다. 한 마디로 설명하면 매 순간을 새롭게 사는 것이죠. 사실 이 장에서는 #헨리몰레이슨 뿐만 아니라 #솔로몬셰레셰프스키 라는 러시아인의 엄청난 기억력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지만(심지어 이름도 '솔로몬'입니다 ㅋㅋ), 그 기억력이 비현실적으로 뛰어난 것 같아 기억력이 나쁜 제게는 그리 크게 와닿지는 않았던 것 같네요 ㅎㅎㅎ


솔로몬 셰레셰프스키까지는 아니겠지만 기억력이 얼마나 좋아질 수 있는지 궁금하시면 제5장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쯤에서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뇌는 가소성(plasticity)이 있어 자신의 행동과 생각, 느낌, 배경 등 외부 요인에 따라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뇌가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세계적으로 까다롭다고 알려진 영국 런던의 택시 면허 취득 과정에서 미로같은 런던의 길거리를 알아야만 비로소 면허를 받아 택시영업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 택시기사의 뇌를 관찰한 결과 해마의 크기가 일반인에 비해 큰 것을 확인했다는 연구 결과는 너무나도 유명한 사례라서 알고 계신 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각 장의 제목이 기억에 오래 남았습니다. 각 장의 제목이 그 장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을 너무나도 잘 함축해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이러한 제목이 독자로 하여금 호기심을 갖게하기에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특정 기억을 깊이 저장해두거나 잊어버립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의지와 상관없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우리 뇌에는 '의지를 갖고' 컴퓨터에서 파일을 삭제할 수 있는 Delete 키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문서를 작성한 뒤에 '의지를 갖고' Ctrl + S를 눌러 저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안 좋은 상황을 애써 기억하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떠오르게 되고, 좋은 상황만을 기억에 담고자 하지만 나도 모르게 안 좋은 기억이 튀어 올라오곤 하죠.


심지어 제4장에서 '허위 기억'이라는 것이 뇌 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흥미로웠습니다. 기억은 내가 마주한 어떤 것에 대한 존재일 것이고 그 기억을 '구성'하는 건 분명 나 자신일텐데, '허위 기억'이라는 말에 도대체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심리학에서 '허위 기억'이라고 말하는 것 중 개인적으로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것이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입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현실을 부정하고 허구를 진실처럼 예쁘게 '포장(구성)'하면서 마침내 그 허구가 진실이라고 믿게되는 것이죠. 이것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허위 기억'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인간의 기억에는 오류나 결함이 있을 수 있다는 건 인정해야 할 부분입니다. 하지만 "리플리 증후군"이 다른 사람이나 우리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을 단순히 오류라고 인정하고 넘어가기엔 너무나 '틀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허위 기억'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계기로 인해 타인의 영향을 받아 '허위 기억'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범죄 수사 과정에서 수사관이 허위 자백을 유도하여 피의자로 하여금 인정하게 하는 것을 한 예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허위 기억'은 우리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을 더 많이 주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 외에도 제2장에서는 잠수사가 다양한 조건 아래 해저에서 본 것을 얼마나 잘 기억하는지 소개하며 우리가 처한 상황에 따라 기억력이 달라질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고, 제3장에서는 우리가 가장 잘 기억할 수 있는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개인적으로 특별한 이벤트(경험)를 더 잘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만 제3장의 경우 너무 많은 사례를 소개하다 보니 조금은 읽기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었고 빠르게 스킵했던 장이기도 합니다...ㅠㅠ 마지막으로 제7장에서는 마치 타임머신이 있는 것처럼 우리의 시선이 미래를 향해 무언가를 상상하는 것이 우리의 기억에 어떠한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 보는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의 여섯 장은 '이미 일어난 것'에 대한 것이라면 제7장은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에서 차이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지금까지 #해마를찾아서 라는 책을 살펴보았습니다. 제가 이 글에서 책을 자세히 소개하는 것보다 직접 읽어보시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고 든 생각에도 '오류'나 '결함'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ㅎㅎㅎ '기억'에 관심있으신 분들이라면, 뇌과학에 관심있으신 분들이라면, 한 번 읽어 보시고 생각을 공유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우리는 때때로 어떤 것은 나중에 쓰기 위해 저장해 놓고 뇌의 공간을 정리한다. 다행이라고 할 일이다. 우리 생애의 모든 순간들을 기억해야 한다면, 우리는 종일 앉아서 회상하는 일밖에 하지 못 할 것이다. 그런다면 살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 P20

진짜 기억은 사실 상상의 한 형태, 상상한 재구성에 지나지 않는다. 허위 기억은 그 법칙이 아무리 비이성적으로 보이더라도 기억의 자연법칙을 이용할 뿐이다. 허위 기억은 그러니까 환상에서 시작하여 기억을 거쳐 어느 순간 현실로 인식된다. ‘사실‘이라고 쓰인 딱지를 자신에게 갖다 붙이고, 박새 새끼를 둥지에서 밀어내고는 크고 뚱뚱한 뻐꾸기로 자라난다. - P151

기억은 언제나 구성적이며, 우리 기억 안에는 오류와 결함이 있을 것이다. 기억과 허위 기억의 차이는 허위 기억은 오류를 포함하고 있다는 게 아니라,얼마나 틀리냐는 것이다. 모든 기억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 P197

"망각은 기억의 아주 중요한 한 측면이지요. 중요한 걸 구분해 내도록 도와주니까요." - P26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