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무당 김어준 - 그 빛과 그림자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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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치교주라 하는게 더 맞을듯.
내 주변에 있는 신봉자들도 김어준에 1만큼이라도 비판적으로 말하면 눈에 쌍불을 키고 달려든다. 나도 나꼼수에는 열광을 했던지라 그 마음을 완전 모르지는 않지만 이제는 본인이나 팬들이나 너무 극단적이고 너무 많이 가버렸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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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 민주주의는 어떻게 끝장나는가
강양구 외 지음 / 천년의상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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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촛불 들었는데 조국과 거기 붙은 인사들이 촛불 촛불 들먹일때마다 구역질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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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시대는 모든 절대적인 가치와 개념들을 해체시켜 상대화 시키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다. 이는 사상의 영역에서 뿐 아니라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세계화에서 나타나듯이 우리내 실생활의 영역에까지 만연한 시대정신이다. 정치·경제·문화·종교 등 모든 영역에서 유일하고 절대적으로 여겨졌던 모든 가치가 다른가치들과의 비교 속에서 상대화되고 있다.

 

이렇게 절대성을 지양하고 다원성을 지향하는 시대이지만, 한국인이라면 무의식적으로 한국적 가치관을 절대화시키며 살아왔을 것이다. 연장자에 대한 복종, 학연·지연에 의한 사회 진출, 눈치로 대변되는 암묵적 표현 방법 등등 철저히 한국적인 것을 보편적 진리인 양 여기며 살아왔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한국이라는 강물 속에서 아무 이질감 없이 한 마리 물고기로 살아왔던 내게, 이 책은 물 밖으로 뛰어 올라 전혀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게 해줬다. 내가 살아온 한국이라는 세계를 철저히 해체시켜 상대적인 가치를 지니는 세계로 새롭게 바라보도록 해줬던 것이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 놀라웠던 점은 한국인의 정신세계 속에 이름도 없이 뿌리내리고 있던, 그래서 너무나도 당연히 여겨졌던 가치들에 이름을 부여한 저자의 통찰력이었다. 저자는 우선 우리 안에 근본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특성(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근본적 문법)을 현세적 물질주의, 감정우선주의, 가족주의, 연고주의, 권위주의, 갈등회피주의로 이름짓고, 파생적인 특성(문법)은 감상적 민족주의, 국가중심주의, 속도지상주의, 근거없는 낙관주의, 수단방법 중심주의, 이중규범주의로 이름짓는다. 이렇게 무의식적인 음()의 가치들을 의식적인 양()의 세계로 이끌어냄으로써 당연한 세계를 낯설게 만든 것이다.

 

얼마 전 교육계의 한 지도자가 교육철학에 대해 강의하는 것을 들었을 때, 나는 보편적 가치관 보다는 위에서 언급한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을 잘 알고 대처해야만 교육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인상을 받았다. 강의의 핵심은, 예컨대 새로 부임한 교육현장에서 먼저 주변에 있는 선배 교육자들을 일일이 찾아가 인사하고, 회식 후에는 눈치 보지 말고 제일 먼저 계산하고(달리 말해 먼저 눈치 보라는 뜻), 자신의 교육철학에 반하더라도 선임 교육자의 방침에 전적으로 복종하라는 등의 실제적인 노하우에 관한 것들이었다. 물론 한국에서 한국인 교육자로 살아가면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고 더러는 보편적 가치에도 부합하지만, 한국적 편협성을 조금도 뛰어넘지 못하는 교육이 어떻게 보편적 진리를 구현하는 세대를 양육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처럼 비단 한국 교육계 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도 역시 주체는 사라지고, 편협성 속의 객체들로 넘치게 되었다. 때문에 이 지점에서 우리는 저자의 대안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의 자주성과 독자성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을 고쳐나가기 위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이다. 그것은 국가와 민족, 가족과 동창을 비롯한 모든 소속집단에 용해되지 않는 독립적인 ''를 만드는 일이다. 개인주체는 이기주의나 특정한 집단주의와 결합하지 않고 보편주의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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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상징 우리 시대의 고전 5
폴 리쾨르 지음, 양명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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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한 집중력을 요하는 책이었다. 대륙의 철학자가 쓴 책답게 사변적이고 형이상학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석학이라는 거대하고도 낯선 도시에서 정처 없이 두리번거리다가 폴 리쾨르라는 보금자리를 발견한 기분이다. 감히 말한다면 이 책의 해석학은 자크 데리다의 포스트 모던적 해체주의 해석학과 대척점에 서있는 기독교적 해석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2부로 되어있다. 1부는 ‘흠’, ‘죄’, ‘허물’이라는 1차 상징을 해석하고 2부는 ‘신화’라는 2차 상징의 기능을 해석함으로써 인간의 윤리, 도덕, 신앙의 문제들에 천착한다. 먼저 1차 상징에 대해 역자가 정리한 것을 인용해 본다. “흠은 금기와 터부로 이루어진 원시 종교의 악체험이다. 죄의식은 인격적인 존재와의 관계 단절의 체험으로 누구에게나 ‘들어 있는 악’이다. 허물은 죄가 내면화되고 세분화되어 ‘저지르는 악’이다.” 이를 풀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흠’은 어떤 악으로 인해 인간이 스스로 더러워 졌다고 느끼는 체험의 상징이고, ‘죄’는 그렇게 더러운 자신이 거룩한 하나님과 단절되었음을 느끼는 체험의 상징이며, ‘허물’은 죄로 인해 벌어진 하나님과의 간극을 메꾸는 과정에서 그것이 결국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끼는 체험의 상징이다.

이러한 허물의식은 의로움에 이르는 율법을 요청하게 되는데, 중요한 것은 완전한 의로움에 이르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무한한 계명도 요청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인간에게 계명이 넘치는 만큼 이를 지키지 못하는 잘못(죄) 역시 넘치게 된다. 그리고 저자에 의하면 바로 이 지점에서,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 5:20)”라는 바울의 선포가 의미를 갖게 된다. 허물의식은 칭의론의 자궁인 것이다.

세 가지 악의 상징에 관한 고찰 후에 저자는 2부에서 이 악의 상징이 어떻게 ‘신화’를 통해 전달되는지 분석한다. 에덴의 인간은 순결한 자유를 지닌 선한 존재였다. 그런 그/그녀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자유를 제한하는 ‘금지’가 아니라 자유에 방향성을 부여하는 ‘한계’였다. 그러나 뱀은 “하나님이 정말로 [……]라고 말씀하셨느냐?”라고 유혹함으로써 ‘한계’를 ‘금지’로 바꾸어 버린다. 그 때문에 선악과라는 한계 아래에서 자신의 ‘유한성’을 기꺼이 받아들였던 인간은 이제 금지 아래에서 자신의 ‘유한성’을 극복하고 하나님과 같은 ‘무한성’에 도달하려는 욕망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인간이 욕망하는 무한성은 이성이나 행복의 무한성이 아니라 ‘욕망 그 자체의 무한성’이라는 점에서 비극을 예고한다.

그리고 바로 이 '타락 신화’의 2차 상징 속에 흠·죄·허물이라는 1차 상징이 들어있다. 즉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인간의 선한 유한성에 흠이 생겼고(“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창 3:7a) 그 흠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다(“야훼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창 3:8b). 그리고 이렇게 시작된 인간의 무한한 욕망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 무한한 허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야훼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 6:5).  

이와 같은 저자의 철학적 성서 해석은 깊이 감춰졌던 무엇인가를 마침내 드러내는 듯 심오했다. 또한 내 안에 굳어져 있던 기존의 화석화 된 성서 해석을 벗겨낼 듯 전복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저자가 결론부에서 말한 것처럼 상징은 내게도 어떤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악은 아담이라는 특정인의 죄로 인해 수동적으로 전달받게 된 것이 아니라, 혹 아담이라는 상징 안에서 나를 포함한 보편인간 속에 가능성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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