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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외출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외출.
이라고 하면 밖으로 나감을 의미한다. 어쩜 그 단어에는 '잠깐'이나 '얼마간' 정도의 일시적인 시간이 내포되어 있지는 않을까_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나 마스다 미리의 책은 '외출'에 '영원한'을 덧붙여 제목부터가 슬프다.
슬프고 외롭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영원한 외출'. 읽기도 전에 느껴졌던 외로움은 책을 펴자마자 더 깊어졌다.
어떤 대목에서는 아주 오랜만에 통곡이라는 것을 하게 만들었다.
-p.58
나는 물었다.
"그 집은 어떤 구조였어요?"
아버지는 눈을 감고 생각하다, 잠시 후 "마루가 있었지."라고 했다.
"마루라니, 툇마루요?"
"응. 아버지하고 둘이 거기 서서 오줌을 누다가 엄마한테 혼난 적이 있지."
아버지는 웃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할아버지의 모습이 처음으로 생생하게 움직였다.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은 할아버지. 만난 적도 없고, 그걸 쓸쓸하게 느낀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 세상에 존재했다. 존재해서 어린 '내 아버지'와 함께 툇마루에서 아내에게 혼났다.
혼났을 때, 할아버지는 어쨌을까?
"들켰네."
하고 아들을 바라보며 씩 웃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얘기를 통해 과거의 세계에서 손녀딸에게로 온 할아버지. 그에게 뭔가 전할 수 있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할까.
당신의 손녀는 지금 당신 아들의 마지막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라고 하면, 할아버지는 울까.
그동안 읽어왔던 마스다 미리 책 속의 아버지란 존재는 조금은 가부장적이고 무뚝뚝한, 내가 우리 아빠에게 갖는 감정과 비슷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었다.
그랬던 아버지의 병, 그리고 죽음은 독자인 내게도 작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너무 무겁거나 어둡게만 이야기하지 않았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가까이 있고 누구나 겪게 될 인생의 한 부분이기에_ 중간중간 현실적으로 결정하고 이야기하는 마스다 미리가 귀엽게까지 느껴졌다.
-p.72
좌석을 고를 때, '앗' 하고 생각했다.
후지산 측으로 하자.
파란 하늘이다. 맑디말게 갠 가을하늘이었다.
"오늘 신칸센에서 후지산 보였어요."
귀향길 풍경을 보고하면 아버지는 "그랬냐." 하고 언제나 기뻐해주었다.
신칸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죽은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인생 최초이자 최후의 귀향이다.
오늘 밤, 내가 집에 갈 때까지 살아서 기다려주길 바랐다.
엄마와의 전화를 끊은 직후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신칸센에 흔들릴 무렵에는 그건 아니란 걸 깨달았다. 이것은 아버지의 죽음이다. 아버지의 인생이었다. 누구를 기다리고 기다리지않고 그런문제가 아니라, 아버지 개인의 아주 고귀한 시간이다. 날 기다려주길 바라는 것은 주제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프다. 눈물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한편으로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생각하는 나도 있었다.
재작년 여름. 결혼을 하고 따로 나와서 살기 직전까지 함께 살았던 삼촌이 돌아가셨다.
1983년, 내가 태어난 해부터 함께 살기 시작하여 30여 년을 함께 한 사람.
나의 탄생과 결혼, 그리고 내 두 아이의 탄생까지 지켜봐 준 사람.
동네 어귀의 부동산에 붙어있던 아파트 매매 전단지를 들여다보며 로또가 되면 내게 아파트부터 사주겠다고 했던 사람.
예순이 되면 하늘나라로 갈 거라고 다짐 아닌 다짐을 했던 사람.
그리고 정말 60세가 되던 해 여름. 생일을 얼마 남기지 않고 '영원한 외출'을 한 사람...
삼촌은 사는 동안 행복했을까.
혹여 꿈에서라도 만나게 된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고맙고 미안했다고. 많이 많이 보고 싶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