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슬픔이 슬픈 채로 끝나지 않기를
오가와 이토 지음, 홍미화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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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슬픔이 슬픈 채로 끝나지 않기를.


제목에서부터 슬픈 예감이 든다. 그리고 슬픈 채로 이야기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

"오가와 이토"

2008년 '달팽이 식당'으로 데뷔했다.

다수의 소설 작품을 발표하며 일본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오가와 이토'의 작품은 언제나 섬세한 시선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은 어루만진다.

'이 슬픔이 슬픈 채로 끝나지 않기를' 역시 크고 작은 상처를 가진 인물들이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을 담았다고 한다.


어떤 이야기, 어떤 위로가 담겨 있을지 읽기 전부터 기대가 된다.

모유의 숲,

아이를 잃은 여자, '요시코'

그런 요시코를 우연히 만나 위로를 건넨 '그리아'

그리아가 일하는 곳의 점장인 '사나에'


P.27

고가 갑자기 사라진 뒤로도 내 몸은 이렇게 줄곧 고를 위한 모유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우습게도 고가 먹을 때보다도 더 많은 양이 나왔다. 나는 매일 밤 우구에게도 먹일 수 없는 모유를 싱크대에 짜냈다.

너무나 갑작스러워 우는 것조차 잊고 있었던 나에게 눈물 대신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모유의 숲'에서 일하기로 한 '요시코' 아니 이제는 '사쿠라'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사람들, 손님 중에는 학생도, 회사원도, 할아버지도, 여자 손님도 있다.

모두들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P.42

'고'를 잃게 된 이야기.

놀라서 구급차를 부른 것까지는 기억하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는 고의 유골이 작은 단지에 담겨 있었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오히려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주변 사람들이 위로하면 할수록 허전함이 밀려들었다.


나는 잠드는 것이 두려웠다.


고를 잃고 난 후의 언쟁.


P.45

"어째서 행복해지려고 노력하지 않는 거야?"

남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이제 다 잊어버렸어. 내가 지금까지 어떤 순간에 웃었는지, 어떻게 사람들과 얘기를 나눴는지 어떻게 밥을 맛있게 먹었는지, 아무리 해도 기억나지 않아.

뉴스에서 무슨 불행한 사고를 보면 전혀 관계가 없는데도 내가 잘못한 건 아닌지 생각해. 트럭이 굴러도,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해도, 누군가 산에서 조난을 당해도, 전부 내 잘못인 것 같다고. 바보 같은 소리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정말 그래. 매일매일 고가 왜 그런 일을 당했는지 생각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아.

그래서 잠도 잘 수 없고 이제 사는 것도 진저리가 나는데, 아무도 나를 죽여주지 않는다고!


아이를 잃은 엄마의 마음이 느껴지는 이야기.

이야기라고 하기보단 절규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


나는 남자로서 슬픈 감정을 남들 앞에서 드러나게 하지 않기 위해 감정을 조절하고 눈물샘을 무의식적으로 억제하곤 했는데

이 글을 읽으며 그랬던 나의 무의식이 조금씩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아이를 잃은 '요시코'의 마음이 내게도 전해졌다.


이들 부부는 어떻게 될까?


이대로 헤어질 것인가? 아니면 다른 계기로 다시 행복한 시간을 공유할 수 있게 될까?


'이 슬픔이 슬픈 채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서클 오브 라이프,


성폭행의 기억이 있는 '가에데' 그런 딸을 방치한 엄마.

업무상의 일로 캐나다를 찾게 된 '가에데'는 죽은 엄마가 남긴 케이스를 갖고 왔다.

태어나 자랐던 캐나다. 그리고 스스로 떠난 캐나다. 다시 찾은 캐나다.


연인으로부터 받은 프로프즈,

육체적 관계를 할 수 없다고 말하며 예전의 상처를 털어놓은 '가에데'

​그런 그녀에게 오로라 얘기를 하며 마음을 녹여준다.


P.106

오로라 얘기,

'세상에는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 아직 너무 많다는 걸 깨달은 거지.'


죽은 엄마가 남긴 케이스를 열어봤다.

그 안에는 삐뚤삐뚤한 글씨체로 쓰여진 여러 장의 노란색 종잇조각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엄마에게.가에데로부터'

그랬다. 어린 나는 그런 어머니도 사랑했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가방을 여는 순간부터 나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나 또한 가방에서 무엇이 나와도 흔들리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책을 읽었는데,

철렁했다.




공룡의 발자국을 따라서


고향은 찾은 '미미'

그곳에서 만난 '나루야' 갑작스러운 나루야의 제안에 함께 몽골로 떠나게 된다.

말할 수 없는 사랑, 힘겨웠던 일, 친구의 자살에 마음이 닫혀 있는 '미미'는 몽골의 자연 속에서

마음을 치료받았다. 자연스럽게...



P.151

밤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깨끗이 비워졌다. 몸이 조금씩 부서져 모래알처럼 작은 알갱이가 되어 별들 사이로 흩어져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P.222

"처음부터 반듯한 지면은 없는 거네."

자연에는 아주 평평한 것도 곧은 것도 존재하지 않아. 비뚤어진 게 당연하지.

"나는 그런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살았어. 하지만 틀렸던 거야."

이렇게 땅에 드러누워 있으니 공룡의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아?


P.247

나는 지금 과거에 공룡들이 당당하게 활보하던 그 대지 위에 누워 있다. 그것은 누군가의 심장 소리와 닮아서 쿵쾅쿵쾅 세차게 울리며 다가오더니 이내 멀어져 갔다.


나는 홀로 눈을 뜨고 잠시 동안 밤하늘에 가득한 별을 바라보았다.


여행을 통해 바라본 나의 모습은 어떠할까? 문득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아무 생각이 드러누워 있고 싶다.

그 안에서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보고 싶다.

내 마음속에는 어떤 응어리가 있을까?

나의 마음도, 어쩌면 나도 모르게 굳어져 있는 마음 깊숙한 곳의 상처도 위로받을 수 있을까?


아직도 잔잔함이 남아 있다. 이 책, "이 슬픔이 슬픈 채로 끝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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