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울넘버 - 한민경의 타로 속의 수비학
한민경 지음 / 스윙밴드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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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래 기다렸던 책이고, 기대한 만큼 좋았던 책입니다. 무엇보다 책에만 있는 지혜가 아니라는 거. 내가 겪어내야할 어려운 일과 사람이 생길 때마다 타로수비학의 도움을 받고 있어요. 다음 책도 벌써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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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영혼 Dear 그림책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올가 토카르추크 글, 이지원 옮김 / 사계절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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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는 순간 이 책을 꼭 보고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용은 말할 것도 없구요. 바로 제 이야기였습니다. 책을 받으니 더 좋습니다. 기대한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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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영혼 Dear 그림책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올가 토카르추크 글, 이지원 옮김 / 사계절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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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는 순간 이 책을 꼭 보고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용은 말할 것도 없구요. 바로 제 이야기였습니다. 책을 받으니 더 좋습니다. 기대한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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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베이커리
이연 지음, 이지선 그림 / 소년한길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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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원래 책이란 짬날 때보다, 짬이 없을 때 더 재미있고 간절한 법. 연일 회사 업무로 바쁜 와중에 <오후 3시 베이커리>를 읽었다.

정오의 출근길, 길가에 바람이 가득하고 햇볕도 쨍쨍하였다. 한마디로 기분 좋은 여름의 한낮이었다. 날씨가 너무 화창하여 곧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는 270 버스에 앉아 <오후 3시 베이커리>를 읽었다. 몇 정거장 가지 않아 책 속의 검은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다 큰 어른인 나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구석자리에 앉아 눈물을 흘렸다.  

몇 달째 병원에서 앓던 검은 할머니가 결국 돌아가셨다. 한시도 떠나지 않고 병원을 지키던 하얀 할머니는 장례식날 집으로 돌아왔다. 안 그래도 비쩍 말랐던 할머니 몸은 겨울 나뭇가지처럼 앙상해져 있었다. 할머니는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검은 할머니 자식들이 몰려와 할머니를 내쫓았단다. 할머니는 검은 할머니 마지막 가는 모습도 보지 못하고 집으로 와야만 했다. 할머니는 눈물도 다 말라버린 것 같았다. 표정은 분명히 우는 것 같은데 눈에서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검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텔레비전과 신문에도 나왔다. 

주인공 상윤이에게 감정이입을 된 것 같지는 않은데. 생각해보니 나는 내 마음 속의 검은 할머니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검은 할머니가 죽었을 때, 하얀 할머니가 슬퍼할 때 견딜 수 없이 힘들고 아팠다. 엉뚱한 일이지만 이것은 작가만이 가질 수 있는 힘. 하지만 수많은 책을 읽는다고 이런 힘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 이연은 오후 3시 베이커리 아줌마와 닮았다. 평범치 않은 상황을 덤덤하게 이야기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이성을 놓지 않는다. 명확하게 잘라 말하지만, 실은  그것이 상대방에 대한 깊은 배려라는 것을 알게된 순간, 감동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공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같은, 혹은 나보다 더 힘든 처지의 주인공을 만나 그 주인공과 울고 웃으며 현실을 함께 극복한다. <오후 3시 베이커리>는 처음 만난 열린 소설, 계몽 소설이다. 나는 <오후 3시 베이커리>를 통해 위로를 받았다. 바람이 있다면, 이런 책들이 많아져서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현명하게 이겨내는 슬기로운 아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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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피포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노마드북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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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 평소 관심이 많은 작가였던터라 <라라피포>를 읽게되었다. 읽고싶었던 <공중그네>를 차일피일하다가 아직 읽지 못했지만 <라라피포>를 읽은 지금 오히려 그 독서순서가 뒤바뀐 것에 대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라라피포>띠지에는 '오쿠다 히데오의 최신 블랙코미디'라고 써있었다. 나이가 든 탓인지, 취향이 바뀐 탓인지 이제는 자극 강한 소설을 기피하지만 재기 넘치는 블랙코미디라면 가뿐하게 읽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감상으론, 이건 블랙코미디가 아니다. 출판사의 책소개에도 역시 '어느 순간 박장대소하게 된다'고 나와있지만 오히려 나는 묻고 싶다. 어느 부분에서 박장대소하게 되었는지.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씁쓸한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여섯명의 등장인물이 각각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여섯 챕터는 이야기의 말미로 갈수록 캐릭터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오쿠다 히데오의 재능이 돋보인다. 프리랜서 기자, 클럽 스카우트맨, 에로배우가 된 주부, 노래방 아르바이트생, 관능소설가, 테이프 리라리터인 이들은 누군가와 새로운 관계를 맺으면서 일상이 변화되지만, 그로 인해 드러나는 것은 결코 정상이라고 할 수 없는 자신의 밑바닥 현실이다. 대체 이걸 왜 읽어야하지? 하면서도 읽을 수 밖에 없는 것은, 이 소설이 매우 현실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프리랜서 자유기고가는 넘쳐나고, 유흥가에는 삐끼들 천지며, 지하철 주변에는 노숙자를 비롯한 지하생활자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연예인들의 모바일 누드서비스는 물론 이미 인터넷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의 성교제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아닌가. 심지어 최근에는 성폭행에 대한 뉴스가 지긋지긋하게도 나오고 있다. 경제에 대한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하다. 브레이크 없이, 브레이크가 있어도 목표점 없이 달려가는 인생들이다. 그러니, 누구든, 조금만 삐딱하면, 밑바닥 인생이 될 수 있다. 고도성장 때문인지 선택형 노숙자와 히키고모리가 많은 일본이니 한국독자들보다 더 체감지수는 높았으리라.

 사실 이 책을 읽기 전 얼핏, 요시다 슈이치의 <퍼레이드>가 떠올랐다. <라라피포>의 띠지에 '인생 뭐 있어? 비주류 인생들의 유쾌한 조롱과 통쾌한 반란'이라고 써 있었다면 <퍼레이드>에는 '빛나는 미래도 없고, 꿈도 희망도 없다. 오로지 변함없이 이어지는 일상만이 있을 뿐. 일탈을 두려워하는 현대 젊은이들의 심리를 리얼하게 묘사'라고 써 있다. <라라피포>는 나란히 연결된 여섯명의 주인공이 각 챕터의 주인공으로 각 이야기의 끄트머리마다 결말이 팡팡 터진다면, <퍼레이드>는 한 공간에 사는 다섯명의 주인공이 각 챕터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미스터리한 한 가지 사건에 대해 소설의 맨 끝에 반전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조금 다른다. 그러나 두 소설 모두 현대사회(특히 일본)의 서글프고 우울한 일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닮았다.

 물론 <라라피포>쪽이 훨씬 독하다. 마치 일부러 만든 나쁜 영화같다. 사람들이 빽빽한 지하철이나, 입석손님이 있는 심야버스에서 읽기엔 용기가 필요하다. 각 페이지마다 민망한 단어들로 가득하니까. 사춘기 시절, 하이틴로맨스나 무협지 한번 손에 잡은 적 없었지만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듯이 20대에는 하나무라 만게츠 같은 것도 아무렇지도 않게 읽었건만.

 하지만 <라라피포>는 분명 읽어볼만한 소설이다. 가독성도 좋고, 재미도 있다. 다만 이 소설의 묘한 힘에 당분간 우울해질 수도 있다. 오쿠다 히데오의 현실감각이 써내려간 평범하지 않은 주인공들의 생각과 심리묘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은근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외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더 힘든 것은, 진실을 무거움을 외면하고, 진실을 촌스러운 것으로 생각하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 대한 경고다. 자신에 대해서도 직시하지 않는 나약한 우리들은 결국 타인에 대해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의심의 가장 큰 폐해는 안전이 아니라 불신이다. 지옥은 가난이 아니라 불신에서 시작되는 것이므로(현대 가난의 지옥에 대해서라면 배수아의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을 권하고 싶다).

오쿠다 히데오는 일본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아무리 힘든 인생이라도 생각해봤자 아무것도 해결 안 된다. 어차피 인생은 계속되는 것이니 까마귀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하라고 강하게 조언해주는 게 최선의 해결책이며 그것이 바로 <라라피포>의 긍적적 메시지'라고 했다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한채 살아가느니 까마귀로 태어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러니 지금 인생이 고달픈 사람, 누군가와 육체적인 관계를 시작한 사람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다. 다들 이러고 사나봐, 하면서 무신경해지는 것만큼 무서운 것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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