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친 민음사 모던 클래식 5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나는 몰랐지만, 혹은 긴 시간 외면해 왔지만, 일본 (여성)현대문학의 시조, 원류 쯤 되는 모양이다. 어쨌든 작가의 후기가 참 공감이 갔다.
나는 옛날부터 오직 한 가지를 얘기하고 싶어 소설을 썼고, 그에 대해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아질 때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 쓰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짧은 호흡의 문장과 감상으로만 이루어진 문장들의 나열이 자꾸만 나오는 의미없는 쉼표와 더불어 내게 귀여니 소설의 한복판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읽다보니 제법 진지한 것이, 한때 좋아했던 나나난 키리코 류의 만화책이 생각나는 덤덤하고도 감성적인 소설들 세 편이었다. 하이틴 로맨스이긴 하지만 등교, 하교, 등교로 이루어진 로맨스가 아닌,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지어먹고 아르바이트를 다녀 오고, 저녁에 다시 만나고 하는 얼리 어덜트 로맨스. 결코 달달하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기 보다는 삶을 성찰해야 할 시기에 일상을 버텨내는 데 집중된 삶이랄까, 여튼 그런 기분이었다. 나나난 키리코라고 하기엔 섹스가 결여되어 있고, 에쿠니 가오리라 하기엔 서사가 결여되어 있고, 여튼 요시모토 바나나를 어쩌면 예정된 시간보다 한참 뒤에 읽게 된 나는-그러니까, 일본 소설을 처음 접한지 12년이 흐른 뒤 처음 읽게 된 지금 말이다-이게 뭐지, 하며 사실 엄청나게 생뚱맞은 그런 독자의 위치에서 이 책을 잡게 된 게 아닐가, 그런 생각도 들었다.
 
  나는 나 자신을 5월이 올 때까지 어영부영 느슨하게 지내도록 놔두었다. 그랬더니 극락처럼 매일이 편안했다.
  아르바이트는 빠짐없이 다녔지만, 나머지 시간에는 청소하고 텔레비전 보고 케이크를 굽고, 주부 같은 생활을 하였다.
  마음으로 조금씩 빛과 바람이 통하여, 기뻤다. (p.25, 키친)
이 세 줄이 나의 마음에 와닿았다. 뭐랄까, 이 소설의 후크였달까. 우리는 언제나 이 순간을 찾아, 자신의 5월을 찾아 그 광풍을 헤매며 길을 찾고 노를 저어 이만큼 해안가에 나와 숨쉴 수 있게 되는 게 아닐까. 커다란 상실은 인간의 마음에 정말 많은 것들을 불러 일으킨다. 꼭 굳이 그 상실만큼의 무게나 부피가 아니어도 좋다. 그저 예상치도 못했던 감정들과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그런 일들이 아주 물밀듯이 마음으로 들어와 나는 내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숨이나 쉬면 다행일 그런 나날들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심지어 내 주변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았는데 그래, 그렇지 하며 누구 한 명 죽은 것처럼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나는 왜 항상 상실과 함께인가. 아무것도 잃지 않았는데 항상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의 마음이 되어 살아가는가. 그것이 나의 운명이고 이 소설의 아주아주 평범한 문장들은 신기하게도 나의 운명을 뒤돌아보게 했으니 그걸로 좋은 소설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 단 한 단을 밟는 검은 구두와 스타킹과, 내 교복의 치맛자락을 기억하고 있다.(p.125, 달빛 그림자)

 

이렇듯 항상 상실을 살아가는 나에게 결여된 것은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시선이었다. 삶을 삶으로 여겨보지 않은 사람은 죽음도 감내할 수 없듯, 소중한 것이 없는 그 사람은 그렇기에 모든 것을 잃은 채 살아가는 것이겠지.
 
세 소설의 화자는 모두 젊은 여성으로 이상적이라 해도 좋을만큼 멋진 연애를 했거나 하고 있다. 그 점이 나에겐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아마 하이틴 로맨스니 어쩌니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게지. 다음과 같은 뻐기기 용 구절들이 손발을 오글거리게 해서 이런 연애 안 해본 사람이 어디 있기나 한가, 싶게끔 만들었으니까. 아마 그래서 내가 이 소설의 발표연도를 들춰봤던 것이다. 88년도. 아, 그때면 이런 묘사들이 아주 신선했겠지. 당돌해보이기도 했을 테고?
 
영문도 모르는 채 그는 아주 친절했다. 나 기분이 굉장히 우울하니까, 지금 당장 아라비아로 달 구경 하러 가자고 해도 응,하고 간단히 대답해줄 것 같았다.
(p.80, 만월)
 
어찌됐든 이 자기 분수를 알고 성실한 작가는 후기에 썼던 대로, 이 소설들을 통해 한 작품, 한 작품 그 속에서 하고 싶은 말을 직접적으로 했다.
 
어느 쪽이 좋은지, 인간은 선택할 수 없다. 각자는 각자의 인생을 살도록 만들어져 있다.(p.63, 만월)
인생은 그렇기에 받아들이기 쉬운 쪽도, 어려운 쪽도 아니다. 인생은 무조건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작가는 독자가 자신을 '행동하는 철학자'로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삶이 어떠하든 독자도 초대를 하는 것이다. 자신이 말했듯 쓰고 싶지 않을 때까지 이렇게 소설을 쓰면서. 그러므로 살아가다 '사람에 따라서는 평생에 한번도 하지 않아도 좋을 일(임신 중절, 물장사, 큰 병치레 등)중 하나에 이렇게 참가하게 되어 유감'스러울 때, 요시모토 바나나의 어떤 소설을 집어들든 그만큼의 위로는 분명 받을 것이다, 이렇게나 멀리서도 어깨를 토닥여 주는 친구가 있구나, 하는 느낌 말이다.

 

(음.. 한마디로 평하자면 유.치.해! 그래도 만화보듯 읽으면 재밌다. 클라이맥스 부분이 덤덤하고도 휘황찬란하다. 근데 문장이 정말... 작가가 생각하는 깊이가 없는 모양인지 문장마다 감정묘사를 붙잡고 낱낱이 토막나 있다. 지못미... 하고 싶은 말은 여기에 다 했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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