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독립만세 - 글이 좋아지고 생각이 깊어지는 국어책
김철호 지음 / 유토피아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저자는 여는 글에서부터 이 책이 '졸저'임을 밝히고 있지만 그것은 겸양의 수준으로 봐줄수 없는 진언이다. 자신이 하는 말에 자신이 없지만 극구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이 중에서 그 갈등을 건설적으로 승화시키는 사람이 한국인 중엔 많지가 않다. 남들이 보잘것 없다고 할까봐 신경쓰이지만 일단 자존심은 세워야해서 내부에서 일어나는 갈등에 바치는 에너지 때문에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는 인간들이 쓰는 수법이 있다. 수 틀렸을 경우, 자신의 시도가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해서 항상 빠져나갈 곳을 만들어 놓고 남들의 지적에 '그래서 내가 OO하다고 말했잖아'라고 입을 비쭉거리며 비열하게 대답하는 수법이 그것이다.

 

이 졸저는 그저 '나는 한국어에 대해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밝힌 책이지, '고민의 결과 나는 이런저런 결론을 얻었다'고 선언하는 책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p.6

 

당연하다. 왜냐하면 이렇다 할 주장을 내세우는 것 자체가 없다. 하지만 또 무슨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밝힌 것도 거의 없다. 그저 자신의 생각인지 바램인지 알 수 없는 것만 주절주절 이야기할 뿐이다. 한국인답게 인습에 의한, 예리하게 벼려지지 못한, 소위 '지식인'들의 술자리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를 글로 옮겨놓았나 싶다.

 

일단 저자는 자신은 보통의 국어관련 서적을 지은 고리타분한 사람들과 다르다고 얘기한다.

 

...'흔히 국어 관련 책들이 그렇듯이 영어를 비롯한 다른 언어들의 영향을 일절 배제하고 한국어의 고유성을 지켜나가자'는 뜻은 결코 아니다. p.9, 10

 

하지만 책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가 주장하는 한국어의 맨얼굴이라는 것을 우리가 보아야하는 이유는 그저 우리말이기 때문이다. 이것 또한 웃기다.

 

일단 이 책에서는 저자의 피해의식이 두드러지는 기본 골조 때문에, 국어에 대한 지식을 주워섬기기가 참 힘들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서 한국어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언어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우리에게 한국어 다음으로 친숙한 언어인 영어를 비교 대상으로 삼아 우리말이 지니고 있는 이런저런 특징을 살펴보려고 하는 것이다. p.6

 

라고 해놓고, 겨우 한 꼭지 끝내자마자 다른 소리를 한다.

 

그러니 한국어를 상대하려면 무엇보다 문법의 주술에서 풀려나야 한다. 영어식 언어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어를 공부할 때에는 영문법 책을 덮으라. 잠시 영문법과 결별하라. 그리고 영어와 다른 한국어의 특성을 탐구하라.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어는 이렇게 부르짖고 있다 :

 

나는 나예요

나를 그저 나로 보아 주세요

나를 옆집 아이하고 비교하지 말아 주세요 p.27, 28

 

자신의 생각도 자신이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는가. 비교언어학적으로 문제에 접근하여 한국어의 특성을 파헤쳐보겠다고 해놓고는 무슨 피해의식때문에 '나를 옆집 아이하고 비교하지 말아 주세요'라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조악한 문장을 만들어 냈을까.

마르틴 부버가 '나와 너'에서 얘기했듯이, 내가 있어야 '너'가 있고, '너'를 알아야 나를 알 수 있는 것은 한 언어의 특성에 비교해 다른 언어를 좀 더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에 비견할 수 있다.

그런데 대체 어디서 무슨 피해의식이 발동했는지 자기 엄마한테나 할 말을 이 책에 싸지르고 있는게 영 볼썽 사납다. 옆집 아이하고 비교해서 국어가 어떻게 다른지 알려주겠다고 해놓고는 갑자기 '나를' 옆집 아이와 비교하지 말아 달라고 하다니. 그런 말은 80년대 하이틴 영화에서는 통했을진 몰라도 지금은 구역질만 불러 일으킨다.

 

저자는 우리가 영어 공부는 열심히 하면서 국어 공부는 안한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 와중에 자주 등장하는 '영문법'책은 완전히 우리말 훼손의 원흉이다.

 

 

우리말은 태초의 언어를 고스란히 담은 고상한 언어다. 그런데 그 언어를 무조건 지키는 건 별로 바람직하지 않고 민중이 쓰는대로 바뀌어야 한다. 근데 요즘 애들은 생각해보기 싫어서 석, 넉 보다 세, 네 를 쓴다.

 

 

뭐 어쩌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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