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피투성이연인 #정미경 문예창작과를 다녀본 건 아니지만 무언가를 묘사할 때 독창적인 문장으로 써야 한다고 수업에서 가르치는 게 아닐까 싶은 문장을 읽을 때가 있다. 전문가들은 그런 문장들의 예술성을 높이 평가하는지 모르겠지만 독자 입장에선 오글거릴 때가 있다. 묘사하기 위해 가져온 은유들이 오히려 삶에서 멀리 떨어진 것들일 땐 더더욱.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묘사의 아름다움, 묘사의 힘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게 아닌가 싶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을 읽는 초반부만 해도 그랬다. 오글거리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낯선 표현들로 묘사된 문장들을 종종 만났다. 이런 문장들은 최근 출판된 젊은 작가들의 소설, 간결하고 단호한 문장들을 주로 읽는 나에게 익숙하진 않았다. 그런데도 인상 깊은 문장에 붙이는 플래그는 매 편 여러 개가 붙었다. 낯선 묘사들은 오래도록 문장에 머물게 만들었고 결국에는 마음으로까지 전이 된 것 같았다. 문득 소설이란 건 이런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이 무엇이다 정의 할 수 있을만큼 이력도 내공도 없지만 적어도 소설은 허구적인 세계를 구축한 산문 형태의 글이라는 건 알고 있다. 허구적인 세계를 구축한다는 것 그리고 직접 체험 하지도 느끼지도 못한 세계에 타인을 초대한다는 것. 그것이 소설의 기본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나의 피투성이 연인>에 수록된 6편의 단편 모두 소설의 기본을 너무나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그의 문장에서 대리석 아케이드를 걷는 구두 소리가 들렸고 곰팡이가 축축하게 내려 앉은 퀴퀴함을 느꼈으며 마당 흙바닥에 튀긴 비 냄새를 맡았다. 묘사의 힘을 느꼈다. 툭툭 짧게 내뱉고 내면 묘사에 중점을 둔 요즘 소설을 읽는 매력과 또 다른 매력이었다. 작가가 희곡으로 등단 했던데, 소설 속 배경과 인물이 눈 앞에 펼쳐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것 역시 묘사의 힘이었을까.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소설 속 인물들이 자꾸 생각난다. 다정했던 죽은 남편에게 숨겨진 비밀을 알게된 사람, 채워지지 않는 욕망 때문에 자신을 망치는 사람, 행복할 수 없었던 그래서 비소로 사람들을 서서히 죽이는 사람,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었던 일과 할 수 있는 일들 사이에서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사람, 과거가 붙잡고 끝내 놓질 않았던 사람 그리고 서로의 삶에 젖어들었던 시간들을 가슴 깊게 남긴 사람까지. 타인을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면 사랑하게 된다던데. 그들을 사랑하게 됐다. 이런 경험이 실로 오랜만이다. 아무래도 정미경 작가가 만들어 놓은 세계에 온몸을 내딛게 된 것 같다. 인물과 상황 그리고 그것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오감으로 느끼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구축된 세계와 인물에는 비범한 매력이 있다. 작가의 새로운 작품을 더 볼 수 없어서 너무 안타깝다. 남겨 놓은 문장들을 마음 깊이 느끼는 것으로 애도 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