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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다 쓴다 남긴다 - 여행 작가의 모든 것
루이스 퍼윈 조벨, 재클린 하먼 버틀러 지음, 김혜영 옮김 / 푸른숲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학창시절 수학여행, 졸업여행 모두 가지 않았다. 돈 내고 피곤하게 돌아다니는 것보다 교실에 엎드려 자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나의 첫 장거리 이동은 누군가를 만나러 가기 위함이었다.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 그것이 자발적인 첫 여행이었다. 여행보다는 이동에 가깝다. 새로운 도시에 가서 그 지역을 둘러보는 게 아니라 사람만 보고 왔으니까. 그곳에서 그와 함께 했던 풍경과 음식들을 떠올리면 여행이었나 싶기도 하다.
탱고를 배우면서 이동은 점점 잦아지고 반경 또한 넓어졌다. 전국에서 열리는 탱고파티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여름에는 해변에서 탱고를 추는 부산으로, 가을에는 별이 쏟아지는 순천으로, 겨울에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나는 서울로. 봄이 오면 딸기 냄새로 가득한 논산까지 탱고를 추러 갔다.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우리는 자지러지게 웃었다. 탱고를 추러 여기까지 오다니! 이 역시 여행이라기보다 탱고를 위한 이동이었다. 밤새 춤추느라 모든 기력을 소진하고 나면, 그 지역에 아무리 멋진 관광지가 있더라도 갈 수 없었다. 돌아와서 쉬어야했다.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여행의 맛을 알아갔다. 동네 자전거 길에서부터 투어 라이딩 까지. 경주, 안동, 대구, 영월. 10km, 30km, 60km....120km.. 하루에 탈 수 있는 거리도 늘어난다. 자전거는 이동과 여행을 구분 짓지 않는다. 자전거로 길을 달리는 그 자체가 여행이 된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뭘 한다기보다 거기까지 가는 길을 느끼는 거다. 길 위에서 풍경을 만나고 사람을 만난다. 오르막길은 시련을 주었다가 내리막길은 쾌감을 준다. 안장 위에서 울고 웃었다. 아스팔트와 자갈길, 풀꽃과 바람이 전부 여행이 되었다.
올해 3월 혼자서 15일간 대만으로 자전거 탱고 여행을 다녀왔다. 낮에는 자전거를 타고 밤에는 탱고를 추러 다녔다. 밤낮으로 몸을 쓰다 보니 피곤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외로웠다. 이상한 일이었다. 한국에서도 하루 종일 혼자 지내는 것은 별반 다를 것이 없는데. 다른 나라에 갔다고 해서 그렇게 외로울 줄이야. 외로울 때마다 호텔 침대에 엎드려 글을 썼다. 우울하기도 하고 지치기도 한 심경으로 써내려 간 글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나중에 읽어보니 글이 마음에 들었다. 고생 중에 쓴 글이어서인지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힘이 빠져 담담한 느낌이 좋았다. 얼마나 좋았냐면, ‘다음에 여행을 한다면 글쓰기 여행을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이 책을 샀다. <떠난다 쓴다 남긴다>. 여행을 어떻게 쓰는지 알고 싶었다. 책은 제목대로 1부 떠난다 2부 쓴다 3부 남긴다로 구성되어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여행을 하는 동안, 그리고 돌아와서까지 ‘쓰기’에 초점을 맞추어 필요한 것들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준다. 처음 이 책을 고를 때 발행년도가 2011년인 것을 보고 ‘너무 뒤처지지 않았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기우였다. 지금 읽어도 충분히 가치 있는 책이다.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강조하는 세 가지를 놓치지 않는다.
여행자는 누구나 될 수 있다. 그러나 ‘여행 작가’가 되려면 본능과 통찰력, 상상력과 열정이 있어야 한다. (...)
여행 작가는 ‘무엇’을 묻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며, ‘누가’ 그리고 ‘어떻게’, 더 중요하게는 ‘왜’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17p
여행에는 목적이 있어야 하고, 그에 따라 의미 있는 경험을 만들어내야 한다. 27p
여행 계획은 아주 세심해야 한다. (...) 여행 계획이란 사람, 장소, 비용에 따라 조정되는 것이다. 59p
여행 작가는 보편적인 것뿐 아니라 특수한 것까지 찾아내야 한다. 절대 그저 대기하기만 했던 공항과 기차역 이름이나 나열하지는 말자. 그보다 그 장소에서 가장 중요하고 진정한 의미를 찾아 독자들을 위해 새롭게 해석하자. 109p
여행기를 쓰는 가장 쉬운 방법은 독자들이 눈으로 생생하게 보는 것처럼 쓰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내가 독자라면 어떤 정보를 원할 것인가?” 135p
글쓰기는 반드시 누군가를 위한 것이다. 독자들은 온라인이나 지면에서 “왜 당신은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항상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146p
당신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당신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148p
“독자들이 무엇을 알고 싶어 할까?”344p
여행을 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여행을 쓰고 싶다면 호기심, 성실함, 배려라는 미덕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끊임없이 강조한다. 여행을 하려면 왕성한 호기심과 관찰력이 있어야 필요하다는 것. 여행 계획을 철저하게 세워야 한다는 것. 여행기를 쓸 때 끊임없이 독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것. 책을 읽기 전에는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여행을 쓰는 일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힐링 여행’의 미덕이요 그때그때 닥치는 대로 하는 것이 즉흥 여행의 묘미인 줄 알았다. 여행기를 쓸 때도 ‘나중에 나 보려고’ 쓰는 데에 그치는 수준이었다. 더 이상 이동이 아닌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여행을 쓸 수 있을 것인가.확인해보고 싶다. 떠나고 쓰고 남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