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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경애의 마음>, 김금희
현대사회에서 관심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은 보통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택한다. 행복을 전시하거나, 슬픔을 과장한다. 행복은 충만에서 오며 슬픔은 상실에서 출발한다. 대부분의 상실은 이런 것들이다―자존감, 목표, 성취, 혹은 뭐 좀더 개인적이고 구체적으로 파고들자면 화목한 가정이나 성장과정의 상실, 뭐 이런 것들. 부러 나의 상처를 덮지 않고 방치하며 가끔은 슬쩍 벌건 물감으로 덧칠하여 커보이게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나는 턱 가로막히기도 했다―대체 세상이, 너에게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데?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그래? 그게 뭐 대단해?―. 뭘 알기에 그렇게 지껄이고 있는지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언어로 빚어내기 힘들기에 관두고 그 관계를 냅다 썩둑 잘라버렸던 기억.
김금희 작가의 신작이자 첫 장편소설인 <경애의 마음>에는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을 상실의 기억을 공유한 두 사람이 베를 짜듯 얽힌다. 1999년, 56명의 사망자, 대다수가 청소년이었던 사망자를 낸 인천 호프집 화재사건―나는 이 때 신문을 열심히 읽는 이른 사춘기의 초등학교 4학년생이었고, “술값을 내고 가라”며 출입문을 잠근 사장이 혼자 빠져나와 살아난 것도 알고 있었고, 그가 평소 숱한 부정청탁을 통해 청소년을 상대로 술 장사를 하는 것을 묵인받았던 것도, 세상 사람들이 그러게 왜 그 불량 청소년들은 거기서 술을 먹고 있었냐, 죽어도 싸다, 식의 여론을 형성하던 것도 기억한다. 그러나 그가 출소 후 CCM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의 사망자인 은총을 각자 둘도 없는 친구로 두었던 공상수와 박경애가, 어른이 되어 건조하게 바스라지는 일상을 스멀스멀 기어가고 있을 때, 그 둘의 일상이 어느 순간 서로의 손을 잡고 의지하게 되는 순간들이 요란하지 않게 비춰진다. 공상수는 친모와 은총을 상실했고, 박경애는 은총과 연인을 상실했으며, 동시에 ‘은총’이라는 교집합을 잃은 바 있다는 것을 오랜 궤도를 돌아 알며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사회가 아프게 만드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앓게 만드는 날벌레들을 손을 휘휘 저어 몰아내고 꾹 눌러보는 것은 작가 김금희의 몫이다. 노동과 자본, 섹스와 젠더, 관계의 위선과 거기서 빚어지는 단절. 상수와 경애, 그리고 죽은 은총은 다른 사람들보다 아주 조금 더 예민하고 말랑한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작가가 여러 이야기를 스케치하고 채색하고 또 덧칠하기에도, 편한 화구였을 것이다.
나는 문학과 영화에 대해서만큼은 지독한 염세주의자이고, ‘다 싸우고 다 망하자’ 식의 내러티브를 사랑한다. 그런 작자가, 그런 지독한 취향에도 불구하고, 맘에 들어 할 만한 해피엔딩이란, 까놓고 말해 얼마나 훌륭하게 쓴 끝맺음일 것인가. 감히 이야기하건대 이 소설의 엔딩이 그렇다. 물을 아주아주 많이 섞은 물감으로 아주아주아주 옅게 색칠된 문단들과 거기서 보이는 경애의 뒷모습에서 우리는 추위 끝에 따뜻한 우유를 한 모금 마셨을 때의 뱃속에서 구르는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상실은 메워질 수 없지만 두 상실이 하나로 만났을 때 각자를 껴안는 방식은, 그다지 요란한 장면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경애는, 요란하지 않기 위해 그 많은 계절들을 지나서야 상수를 찾았을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상실은 있다. 퇴직 후 호프집 알바를 하면서, 동네 사람들과 셔터를 내린 매장 안에서 자주 술을 마시며, 농반진반으로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영등포 일대의 비행 청소년 사(史)에 대해 르포를 쓸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숱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엔 나의 과거 직업이나 학력에 대해 숨겼지만, 3주 정도가 지나니 어느새 많이들 눈치를 챘고, 그들이 보기엔 별다른 굴곡도 없이 말갛게만 살아온 나 같은 샌님에게 온갖 영웅담을 더욱 신나서 풀어헤쳐놓는 면도 없잖아 있지만. 그런데 낄낄대며 이야기하던, 마흔 언저리의 한 사람이 술을 몇 잔 더 걸치더니 그런 말을 꺼냈다.
J씨 있잖아요, 우린 죽은 애들도 진짜 많아요, J씨 대교에서 원래 차가 서면 안 되는 거 알아요? 근데 우리 친구 새끼가 하나 있었는데, 야 너 그 OO 걔 죽은 거 기억 나냐(“응, 알지 알지, 그 새끼 씨발...”), 걔가요, 열아홉 살 때쯤인가, 술에 진탕 취해서 택시를 타고 양화대교를 건너다가 택시기사한테 세워달라고 소리를 소리를 지른 거예요. 택시 기사가 안 된다고 하는데, 쌍욕을 하면서 세우라고 세우라고. 기사가 겁나서 세우니까 문을 열고, 그대로 인도 쪽으로 나가서 가방을 내려놓고, 자켓을 벗고, 신발도 옆에다 가지런히 세워놓더니 그냥 한강 물 속에 뛰어들었어. 아무 얘기도 안 하고, 씨발 우린 다 친구였는데, 걔가 왜 그랬는지도 몰라요. 죽었어요. 그대로 한강에서. 왜 죽었는지도 모른다구요. 씨발 죽을거면 곱게 죽든가, 왜 그러는지 얘기는 하고 죽든가. 택시기사는 무슨 죄야. 그렇게 죽었어요. 기사에도 났는데. 그런 애도 있었어요. 열아홉 살 때요.
그리고 잠시 이어진 침묵은, 이전의 낄낄댐과 이후의 낄낄거림 사이의 아주 짧은 찰나 동안 이루어졌고, 곧 남겨진 사람들은 다시 숨을 쉬며 소맥 한 잔씩을 더 말며 웃었다. 그리고 나는, 하필 이 책을 그 날 다 읽었던 나는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상실은 있고, 경애와 상수가 그것을 공유하여 채웠듯이, 세상 사람들도 그러면서 사는구나,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