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르의 공장 일지
김경민 지음 / 숨쉬는책공장 / 2023년 6월
평점 :
동료 활동가들에게 글쓰기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이날 나는 5년 간 기자 생활을 하며 체득한 몇 가지 노하우를 알려줬는데, 꼭 동지들에게 전달하려 했던 메시지는 이것이었다. ‘우리 활동가들은 움켜쥔 이야기가 정말 많다. 하고 싶은 이야기도 분명하다. 굉장히 절실하다. 우리는 타인을 위해 산다. 그렇기에 우리는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여성학·평화학 연구자 정희진의 말대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그것이 절실하다면 글쓰기는 시작된다. 철학자 김진영이 이야기한 것처럼 “글쓰기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며 “나만을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약해”지고 “타자를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확실”해진다. 작가 홍은전이 쓴 것처럼 “나에게 혁명처럼 닥쳐온 그 세상이 실은 아주 느리고 치열하게 조직되어 온 거대한 우주였음을 노래하는” 보석 같은 동지들이 곁에 있다. 활동가는 절실한 글을 쓰면서 나날이 확실해지고, 관계 운동 변화를 치열하게 조직하는 중심에 활동가가 존재한다. 활동가의 존재와 활동가의 글은 굉장히 소중하고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나를 포함한)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자신의 글을 쓰기 전에 인권운동 반빈곤운동 장애운동 이주민운동의 활동가들 연구자들과 교류하고 그들의 글을 찾아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권리를 위한 권리 그리고 운동과 권리의 언어를 만드는 동지들, 가장 기본적인 권리와 평등을 가장 처절하게 외치는 활동가와 연구자들이 자신의 동지를 어떻게 대하고 자신의 운동을 어떻게 기록하는지, 그리고 그 사건 그 진실 그 감정을 어떻게 움켜쥐고 풀어내는지를 알아간다면 내가 써 내려갈 동지와 운동에 대한 글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활동가들>(빨간소금, 2023년)을 읽으며 나처럼 평범한 활동가들에게 울림을 주는 동료 활동가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집어든 책이 한 권 있다. ‘싸우는 노동자를 기록하는 사람들. 싸-람’ 멤버인 김미르 동지가 쓴 <미르의 공장 일지>(숨쉬는책공장, 2023년)다. 이 책이 ‘예상 밖’인 이유는 누군가의 투쟁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바로 김미르(김경민)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세탁기를 만드는 거대한 공장에 취업해서, 쪼개기 계약을 하는 비정규직으로, 밥붙이며 야근을 하며, 착취당하고 차별받으면서도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한, 어용노조 사업장의 평범한 비정규직 노동자 김경민의 2년치 일기다.
노동자 김미르의 사업장은 순도 100% 노동지옥이다. 수많은 이유로 라인은 멈추지만 생산량은 줄지 않는다. 야근과 특근을 거부할 수 없다는 문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고용 자체가 안 되고, 어용노조가 탄력근로제를 합의해줬기 때문이다. 임금이 워낙 적어서 노동자들이 야근 특근을 자원하게끔 만든다. 산재가 비일비재하지만 현장은 도무지 바뀌질 않는다. 아파도 말을 못하고, 휴가도 제대로 쓰지를 못한다. 관리자의 막말과 폭언, 정규직-비정규직 차별, 편법 갑질 불법이 판을 친다.
민주노조가 없는 현장, 노조가 있지만 명패만 있거나 어용인 현장의 모습이 날 것 그대로 고스란히 담긴 149편의 일기에는 노동조합 간부로서 내가 놓친 것, 앞으로 가져야 할 태도, 반드시 움켜쥐어야 할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이 일기를 읽기를 권한다. 싸람 홈페이지(https://ssaram.co.kr/)에 실린 글도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