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끝나야 시작되는 여행인지 몰라
김현 외 28인 지음 / 알마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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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습관이 바뀌었고, 공장과 도시가 멈췄다. 약간 오래된 표현을 빌리자면, 혁명적 변화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문명의 질병”으로 수십억명의 사람들이 같은 경험을 하는 중이고,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소망과 욕망마저도 닮는다. 우리는 하루아침에 “악몽을 나눠 갖는 사이”가 됐고, “사람을 대하는 가장 겸손한 자세”를 배웠다. 그리고 이 현상과 변화가 “수직으로도 수평으로도 가로지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안다.


그래서 이 책은, 이 글들은, 이 시들은, 이 그림들은, 그래서 나의 경험, 나의 감정, 나의 소망, 나의 욕망이다. 내가 겪은 현상이고 변화다. 이 작가들처럼 나도 사람들을 만나지 못해 우울했다. 처음으로 “집과의 관계”를 맺었다. 넷플릭스와 온라인쇼핑이 나의 저녁을 지배했다. 권리의 제한과 정부의 통제를 받아들였다. “공공이 허락하는 자유의 한도 내에서 각자의 삶을 변화시켰고 적응”했다. “그냥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릴 뿐”이다.


약간 다른 방식으로 나도 코로나를 이야기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공포를 판다. 그러면서 그것을 이겨내자고 선동한다. ‘전례 없는 위기’임을 강조하고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중장기간의 국면으로서 경제구조는 물론 개개인의 삶의 방식들이 바뀌는 문제’라고 주장한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열과 성을 다해서 말이다.


또 이렇게 내던진다. 사회적 재난에 있어서 (시민의 건강권, 정보인권, 모빌리티를 포함한) 우리 사회의 프로토콜을 설계하고, 공공의료와 사회복지를 대폭 강화하고, 정보접근권으로서 방송통신서비스의 공공성을 고민하고, 경제위기와 고용충격에 대해 (고통분담 식의) 과거와는 다른 대안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노동조합 간부로서 지난 반년은 방송통신기업과 콜센터에서 일하는 우리 조합원들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낸 기간이었다. 나는 2월부터 방송통신서비스를 유지하는 수준으로 출동건수와 근무인원을 조절하고, 재택근무와 현장출퇴근을 도입하거나 대중교통 출퇴근시간을 조정하고, 실내 업무간격을 넓히고 공조시스템을 구축하고, 돌봐야 하는 가족이 있을 경우 적극 지원하고, 협력업체 노동자들을 보호하라고 요구했다.


허무하게도, 결과적으로 ‘마스크와 손세정제를 부족함 없이 지급하라’는 기본적인 요구조차 쟁취(?)하기 굉장히 어려웠다. 자본 입장에서도 코로나는 엄청난 충격과 공포였을 터이지만 그들은 금세 정신을 차렸다. ‘노동자 건강’보다 ‘코로나 특수’에 집중했다. 그렇게 자본, 통신대기업, 하청업체들은 “각자의 뉴노멀을 구축”했다.


다른 모든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조합원들 또한 힘들고 두려운 시기를 그렇게 견뎌냈고, 지금도 견디고 있다. 당장 내 주변, 내 가족, 내 직장, 나의 오늘이 불확실하고 위험하기 때문에 더 움츠려든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말은 “명상센터에서나 할 법한 말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사실은 매일 아침 양치질하며 명심해야 할 생활의 당부라는 걸 깨달았”고, 이 말이 “1 더하기 1은 2가 되는 것처럼 군더더기 없는 명백한 연산 같은 말이라는 것”을 알았고, 또 이 말이 “위아더월드식의 낭만이 아닌 살벌한 경고의 말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러다 결국 오늘로 돌아온다. ‘코로나’로 말이다. 온 사회, 정말 많은 시민들이 달라붙어 고민하고 토론하고 연구해도 아직 뾰족한 해법은 없다. 허무하고 허탈하고 무기력해진다. 언제까지 집에 틀어 박혀야 할지, 도대체 언제쯤이면 백신과 치료제가 만들어질지, 무너져버린 일상은 언제 어느 수준으로 복원이 될지 어느 누구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것은 “코로나 경제위기가 언제까지 어떤 강도로 이어질 것이며 우리 사회의 모습과 삶의 방식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는 전망뿐이다.


그런데도 “일상은 계속”된다. “이 안전한 세계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불안하고 또 걱정하다가 “집에 가만히 있으면 세상이 저절로 찾아올 거라고” 기대한다. 우리는 “여전히 일상을 붙들고 그 둘레를 완성”하고, “규모는 작아졌”지만 “사색의 시간은 종종 찾아”온다. “고요하되 열렬함으로” “엉뚱한 지점”으로 삶은 계속된다. “마스크 너머에 있는 동료들의 미소”가 보이기 시작하고, 전에 없던, “삶에 대한 강한 충직함”을 생각한다.


싸움 또한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 이후의 세계, ‘뉴노멀’을 만드는 싸움은 몇 년이 걸릴 것이다. 그럼에도 코로나 이후의 세계가 이전과는 다를 것이라는 희망을 갖는다. 왜냐면, 우리는 코로나 때문에 전례 없이 깊은 사유를 했기 때문이다. 온 사회가 모든 시민이 생태위기, 공공의료, 노동안전 그리고 지속가능한 삶과 사회를 고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로나 이후의 세계는 다를 수밖에 없다. 여행이 시작됐다. 아주 혁명적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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