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 1
김형경 지음 / 민예원 / 2000년 4월
평점 :
절판


 

김형경작가의 책을 처음 접했다.
통장잔고가 바닥을 보이고 있어, 책 한권을 사는 것도 부담스럽게 되어버린 때 알게된 인터넷 헌책방에서! 1994년 3월 30일 초판 21쇄 발행된 책이었는데, 오랜 세월만큼이나 원래는 하얗던 겉표지가 짙은 아이보리색으로 변해있었다. 그리고 사진의 김형경작가를 보고 풉. 웃게 되었다. 얼굴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커다란 안경과 안으로 둥글게 드라이한 단발머리라니.

알라딘에서 찾아보니 이 책은 품절상태였다.
지난주 단단하게 포장된 한 상자의 헌책 박스가 집에 도착하고, 처음 읽게 된 책이 이 책이었다. 표지 앞에 적혀있는 '국민일보 1억 고료 수상작' 이라는 문구가 처음으로 눈에 들어왔고(우와, 1억이라니 진짜 좋겠다.는 생각에) 제목 아래에 적힌 열정, 좌절, 청춘의 떨림들. 이라는 문구에 젊은 사람 이야기니 공감하며 쉽게 읽을 수 있겠다, 생각했다. (예상은 빗나갔지만!)

책은 5명의 이야기이다.
이제 막 30대의 문턱에 들어서게 되는, 20대를 미술대학 같은 동아리에게 함께 보낸 젊은이들의 기록이다. 작가는 소제목에 한 명씩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시'로 등단한 작가라서 그런지 소제목 하나하나도 시적인 느낌이다. (길 위에서 길을 묻다. 빛나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니다. 슬픔도 자라면 꽃으로 피리.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 골목이 꺾이는 곳마다 그대 만나리. 물 위에 어리는 불빛)

80년대에 대학시절을 보낸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나는 공감가는 부분을 찾기 어려웠다. 그 시절 나는 매우 어렸고, 운동권은 커녕 친척언니와 머리끄댕이 잡고 싸우기에 바빳다. 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내가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그 시절 이들이 품었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아주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고등학교 미술선생, 알 수 없는 두통에 매 주 정신과 상담을 받는 [구운형]
  잡지사에서 일하면서 대학때부터 형조를 사랑해온 [진은혜]
  엉겅퀴처럼 이상을 쫒다 스스로 숨을 끊은 [최민화]
  [민형조]
  명상센터를 운영하며 신비주의와 여자를 통해 길을 찾는 [김시현]

이들은 대학 졸업 후, 몇 년 간이나 서로 소식없이 지내다가 민화의 죽음으로 인해 다시 만나게 된다. 그리고 민화의 죽음을 통해 4명은 모두 자신이 민화를 죽였다는 죄책감을 시달린다.
- 우리는 누구도 민화의 죽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리라. 이것이 이십대를 마무리하는 우리의 통과의례가 되리라. 인생을 십진법 단위로 나누어 인식하는 것이 순진한 환상이라 해도 아무튼 서른이 되면 달라지리라는 것, 그것만이 지금 이십대의 고개를 넘는 우리를 버티는 힘이 될 것이다. 서른이 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세상이 한눈에 조감되고 인생의 길목에도 가로등 같은 것이 켜져 있을 것이다.(189p)

- 사랑이라니. 언젠가 사랑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있었는데……. 작은 일로도 가슴이 내려앉고 사소한 일로도 마음이 허공에 뜨곤 하던 신기한 체험. 그때의 어지러운 열기, 이상한 흥분, 원인 모를 초조함, 그런 건 다 무엇이었을까…….(24-25p)

- 요즈음에야 운형은 막연히 깨닫고 있다. 자신에게 행복한 사건이 없었던 게 아니라 행복을 느끼는 정서가 없었던 게 아닌가 하고. 사랑도 그랬다. 사랑할 만한 대상이 없었던 게 아니라 내부에 사랑이라는 정서가 없었던 거라고.(26-27p)

- 우리는 무엇을 힘들어 하는가. 우리에게 버거운 것은 어깨 무거운 이데올로기나 눈부시게 먼 이상이 아니다. 불합리하고 질척거리는 현실도 아니다. 그것들은 오히려 얼마나 명확한가. 우리가 진정으로 참을 수 없는 것은 자기 자신, 그리고 젊음일 것이다. 사방이 자욱한 안개에 싸여 한치도 눈앞에 보이지 않는 젊음.(28p)

- 숨을 쉬기 곤란할 만큼 가슴이 아프더니 기어이 감각이 마비된다. 가슴에 휑한 구멍이 뚫려 그 구멍에 야구공을 던져 넣도록 되어 있는 나무판 인형의 뻥 뚫린 가슴, 제 가슴이 바로 그런 것 같다.(8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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