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제1권 : 삼계본주 소설 공 1
김준걸 지음 / k-Books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즐겁기만 하던 대학시절, 유행처럼 번지던 철학 강의를 들었었다. 비오는 날이면 교수님과 학생들이 수업을 때려치우고 막걸리를 한사발씩 마시며 소재의 제한도 없이 이야기꽃을 피웠다. 언젠가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철학자의 궁극적 화두는 단 하나다. '어째서 무엇인가가 존재하는 것인가?' 바로 이것이다." 그날 이후로 그 질문은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사실 지배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대학을 졸업하고 남들처럼 빈둥거리는 백수 생활을 거쳐 취업을 하고 연애를 하고 숨가쁘게 살아왔다. 그간 얼마나 이 질문을 붙들고 앉아 생각해 보았을까? 부끄럽게도 아마 친구들과 별다방에 모여 된장녀 흉내를 낸 시간만큼도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의문은 한 번도 내 가슴 속을 떠난 적이 없다.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바닥 모를 불안감. 일요일 밤에 개그콘서트를 보며 자지러지게 웃다가도 불현듯 마음 한 구석을 찌르는 이 불편하고 허망한 심정을 나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느끼고 있지는 않을까.

 

이 책을 우연찮게 읽은 것은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1권만 선물해 줄테니, 2권부터는 사서 보라는 말에 코웃음을 치며 책을 빼앗아 들었다.

 

아! 그런데 그냥 소설인 줄로만 알았던 책 속에 나를 정의하는 코드, '존재'에 대한 깊은 식견이 있었다. 헐리우드 액션처럼 박진감 넘치는 묘사는 없었다. 그러나 작가의 철학적 깊이만은 나의 예상을 산산히 깨부수었다. 누군가 이 책을 읽은 이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물밀듯이 밀려와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얘기를 듣더니 하하거리며 웃는다. 니가 좋아할 줄 알았단다. 나와는 유유상종인 이 친구와 주말 저녁 약속을 잡아 놓고는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괜시리 흐뭇하다. 부침개 한 장을 상 위에 올려놓고 설전을 벌여볼 생각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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