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자서전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35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안정효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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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후각, 촉각, 미각, 청각, 지성-나는 내 연장들을 거둔다. 밤이 되었고, 하루의 일은 끝났다. 나는 두더지처럼 내 집으로, 땅으로 돌아간다. 지쳤거나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피곤하지 않다. 하지만 날이 저물었다.
해는 졌고 언덕들은 희미하다. 내 마음의 산맥에는 아직 산꼭대기에 빛이 조금 남았지만 성스러운 밤이 감돌고 있으니, 밤은 대지로부터 솟아 나오고, 하늘로부터 내려온다. 빛은 항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구원이 없음을 안다. 빛은 항복하지 않겠지만, 숨을 거두어야 하리라.

가장 많은 바다와 가장 많은 대륙을 본 사람은 행복할지어다.

평원으로 돌아가던 길에 나는 돌멩이 위에 무릎을 꿇고 앉은 늙은 남자를 보았다. 수로 위에서 허리를 굽히고 흐르는 물을 쳐다보던 그의 얼굴은 형언하기 힘든 황홀감으로 넘쳤다. 마치 그의 코와 뺨은 사라지고, 두 눈만 남아 바위들 사이로 흐르는 물을 따라가는 듯싶었다. 나는 그에게로 다가갔다. "무엇을 보고 계신가요, 할아버지?"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는 머리도 들지 않고 물에서 눈을 떼지도 않으면서 대답했다. "내 인생을, 거의 다 흘러가 버린 내 인생을......."

그게 당신의 큰 장점이에요, 파나이트. 알지 못했더라면 당신은 백치였겠죠. 그리고 알면서도 자꾸 잊지 않았다면 당신은 냉정하고 무감각해졌을 테고요. 따라서 당신은 따스하고, 부조리로 가득하며, 희망과 실망이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죽을 때까지 참된 인간입니다.

옛날에 어느 이슬람 나라의 토후가 아끼던 사람이 전쟁에 나가서 죽었을 때, 토후는 부족 사람들에게 이런 명령을 내렸어요. <그랬다가는 너희들의 슬픔이 가벼워질지 모르니까, 울거나 소리를 지르지 마라!> 슬픔을 참는 그런 행위는 인간이 스스로 짊어지는 가장 자랑스러운 수련이에요, 파나이트. 그렇기 때문에 난 고리키를 그토록 좋아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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