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여행하는 스타일이 있을 것이다. 먹는 것까지 아껴 쇼핑 하는 사람도 있고, 아침부터 줄서서 유명 미술관은 꼭 가봐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난 둘 다 아니다. 쇼핑은 크게 관심 없고, 미술관은 가봤는데 '잘 그렸네...' 이것 이외에 남는 게 없어서 휙 보고 나오더라. 파리에 네 번 갔는데 루브르는 한 번도 안 가봤을 정도. '아니, 어떻게 그래?' 반응을 다들 보이지만 예쁜 그림 보겠다고 몇 시간씩 줄 서느니 나가서 뭐 하나 더 먹겠다는 주의라...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프랑스 대사관 수석 쉐프셨다. 항상 하시던 말씀이 이태리는 길가의 오렌지도 맛이 다르다며 입맛을 다시셨다. 유럽 있을 때 가장 좋았던 곳이라며. 한 번은 파리 놀러간다니까 거기를 뭐하러 가냐며 이태리나 한 번 더 가라고 하시더라. 이제 나도 똑같은 말을 한다. 유럽은 이탈리아라고. 솔직히 로마는 낡아빠진 무덤 같고, 밀라노는 두오모 빼면 시체고, 베니스는 바가지에, 물때 밖에 없지만 용서할 수 있는 건 음식과 커피 때문.
이 책은 나처럼 도시를 음식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건축이나 미술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 관광지나 미술관은 그냥 예쁜 장소, 예쁜 물건 있는 곳일뿐이다. 여행에서 일반인 기억이 남는 것은 길거리 사람 사는 모습과 뭐 먹었는지 아닌가. 인스타만 봐도 여행 다니는 애들은 다 음식 사진. 니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넣어봤어, 그래서 두껍디 두꺼운 가이드북이 아니라 어디서, 무엇을, 왜 먹어야 하는지 미식이라는 목적에 충실하게 쓰여진 책. 아주 실용적이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8p 부터 54p까지 '여행 준비하기', 76p부터 끝까지 각 지역별 방문 레스토랑 정보 및 감상. 여행 준비하기 파트가 이 책의 핵심이라 생각한다. 카페나 레스토랑 방문하기 위한 여행은 일반 여행과 살짝 다르다. 이상적인 식사를 위한 동선 배분, 메뉴 숙지, 주문 방법, 식사 예절, 드레스 코드까지 별거 아닌 듯 한데 막상 상황이 되면 괜시리 긴장되는 것들이 꽤 있다. 특히 한국은 유럽 문화권이 아니기에 미묘한 차이가 존재하는데 그런 것들이 여행 준비하기 파트에 세세하게 쓰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