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프 - 죽음 이후의 새로운 삶
메리 로취 지음, 권 루시안 옮김 / 파라북스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읽고 있는 책이 'Stiff'이다. 이 책은 심심한 휴일날 읽기에도 적당치 않고, 잠 안오는 밤에 읽기에도 적당치 않고, 특히 식사시간 전후로는 아주 적당치 않은 책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에 적당한 시간이란 없을 것 같다.

'Stiff'는 인간의 생명이 끝난 후의 사체에 대해서 다루는 책이다. 사체는 그냥 자연스럽게 부패하기도 하고 뜨거운 불길 속에서 태워지기도 하고, 때로는 방부처리되어 이러저러한 의학, 과학, 군사, 종교적 용도에 쓰이기도 한다.

각각의 경우를 한 장으로 구성하고, 각 장마다 직접 사체를 다루는 현장에 찾아가 상황을 자세히 묘사하고 또 그 사체를 다루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충실히 담고 있기 때문에 책을 읽다보면 사체에서 풍기는 야릇한 냄새나 차갑고 서늘한 촉감까지 느낄 수 있을 듯하다.

사체를 다루는 사람들은 한때 따뜻한 피가 흐르는 공동체의 일원이었을 그 사체를 절단하고 가르고 파괴한다는 충격과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사체를 객관화한다. '인간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인 얼굴과 손을 가리고, 때로는 대상화와 객관화를 돕기 위해 사체를 조각내서 이용하기도 한다.

사체는 그들에 의해 살과 뼈, 근육이나 지방으로 이루어진 '물질'로 객관화된다.

안개같은 비가 내리던 지난 일요일, 예술의 전당에서 스페인 국립무용단의 'Multiplicity' 공연을 보았다. 나초 두아토라는 출중한 안무가에 의해 만들어진 공연은 바흐의 음악을 배경으로 많은 무용수들이 음악이나 음표, 또는 뮤즈 그 자체를 상징하고 있었다.

젊은 무용수들의 신체는 가장 이상적인 유전자와 가장 훌륭한 단련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의 신체는 군더더기 없이 유려한 직선 혹은 곡선을 그려내고 있었고 생명력 그 자체로 빛나고 있었다.

바흐의 음악과 함께 걷고 뛰어오르고 바닥을 구르는 그들 신체는 또다른 객관화를 만들어낸다. A석에 앉은 나로서는 더더군다나 그들 개개인의 생김새라든가 표정을 볼 수 없어 각각의 신체는 각각이 맡은 배역- 음악이나 음표, 또는 뮤즈 - 의 표현체일 뿐이지, 그들이 어느 동네에서 누구와 어떻게 사는 '사람'일까 따위는 전혀 생각도 나지 않았다.

물질로 객관화된 인간의 몸과, 정신의 표현체로 객관화된 인간의 몸. 능동적 객관화와 수동적 객관화. 생명이 사라진 인간의 몸이나, 생명력으로 충만한 최고의 인간의 몸이나 똑같이 객관화된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점...재미있다.

역시 'Stiff'같은 책을 읽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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