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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폭력이다 - 평화와 비폭력에 관한 성찰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조윤정 옮김 / 달팽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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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들 톨스토이라고 하면 러시아의 유명한 작가 정도로만 알고 있다.
물론 나도 그랬지만 이 책을 읽고 작가이기도 하거니와 일련의 체계적인
방향과 사고를 갖춘 사상가라는 것을 알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국가는 폭력이다. 국가가 행하는 어떤 부분적, 국소적인
제도나 법률, 제재에 한해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가
폭력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누구에 대한 폭력인가. 
 일반적으로는 피억압자들, 피수탈자들, 일반적인 구분하의 하층민들이
그 대상이겠거니 하겠지만 종국적으로는 그 위에 '군림'한다는
귀족, 더 나아가서는 최고 통치자인 국가 원수까지 그 피해자에 해당된다.
 최고 정점에 있는 자라 할지라도 어떤 의미에서든지간에, 언제든지 국가가 쳐 둔 
거미줄에 걸릴 여지가 있다. 힘없는 대다수의 대중은 물론이거니와
행위의 주체가 귀족이라 하더라도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대중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행동하기는 힘들며 심지어 독재자가 마구 횡포를 일삼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가 정한 '독재법'에 근거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톨스토이는 국가를 필요악必要惡적 개념에서 '필요'라는 부분까지
부정하고 아예 국가를 '악'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는 아나키스트들은 항상 옳지만 그들이 내세우는 혁명이라는 것만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혁명이란 단지 또 하나의 머리를 내놓을 메두사의 목을
치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유한다.
 그리고 그 이유때문에 자신은 아나키스트가 아니라고 역설한다. 
 대신에 그는 국가라는 '현상'을 종식시킬 도구로서 협력과 복종,
굴복을 일절 하지 않는 비협력 비폭력 방법론을 내세운다.
 


 톨스토이는 지극히 이상적인 세계관을 제시한다. 국가는 악의 근원이기 때문에
모든 폐단과 악습은 국가로부터 비롯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국가를 없애야 한다는
논리를 제시한다. 우선 국가란 필요악이라는 존재를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국가라는 억압자가 없는 상태에 이르면 모든 개인은 '톨스토이의 성선설'에 따라
각자 서로에게 피해주지 않고 상대를 최대한 배려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기본적으로 '더 나은 조건'을 끊임없이 찾아 나서기 마련이다.
그리고 인간은 선하다고 남에게 항상 피해를 주지 않을 수는 없다.
전혀 관련 없어보이는 부분에서 행한 일이 어떤 사람에게 치명적인 피해로
다가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들을 각각 살펴보자.
 '톨스토이의 성선설'을 따르지 않는다면 옆집에서 나한테 피해를 주지
않더라도 좋은 농법을 개발하여 엄청난 부를 소유한다면 자신도 그러고 싶을
것이고 이런 일시적 비충돌적 경쟁이 확대되다 보면 언젠가는 마찰은
피할 수 없게 된다. 일시적으로나마 이런 비충돌적 경쟁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것도 넓은 땅이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그럼 전제와 동시에 성선설을 따르면서까지 논리를 전개해보자.
모두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므로 꼭 충돌이 필연적이지 않다고
가정한다면 어떤 집에서 농사에 따르는 많은 부산물을 강에 흘려 보낸다면
그 강의 하류에 있는 그 어떤 사람도 의도하지 않은 피해를 입게 마련이다.
이렇게 남에게 피해를 주고자 하는 의지와 상관없이 상호간의 마찰이나 피해가
발생하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국가는 악의 개념도 갖고 있지만 분명 필요라는 의미도 포함하는 존재이다.
국가끼리 영토확장과 각종 이권다툼을 벌이는 것은 물론 국가 존재에 따른 부산물이다.
하지만 국가는 사람들의 필요를 느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어떤 것이다.
 인류의 기원사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자면, 물자와 자원이 풍족해지면 농경사회의
규모가 커지고 그에 따른 인구 증가로 인해 개인, 집단간의 교류, 마찰이
불가피하게 된다. 그리고 산업사회가 되면서 먼 곳까지 상품을
주고 받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고 그에 따라 마찰은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
 국가는 이것의 확장된 개념이다. 영토가 무한하다는 전제가 있다면 참으로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지구라는 곳은 제한된 공간만을 가지고 있다.
어떤 집단간의 마찰이 생긴다면 당연히 중재자가 필요하고 개인간의
마찰에서도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그 어떤 존재가 필요하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성선설을 반증하는 수많은 사례들이 존재할 뿐더러
행여 선한 인간이라 하더라도 남에게 피해를 줄 여지는 존재하는 것이다.
 

 한가지 더 비판적으로 바라볼 만한 점은 그의 러시아 농민 예찬론이다.
이상적 세계상은 러시아 농민에 의해서만 가능하고 그 결과도 모두 '순박한' 러시아
농민으로 귀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러시아는 유럽에서도 비교적 늦게
부흥한 나라이고 워낙 영토가 넓었기 때문에 농민의 비율이 그만큼 높았다.

 이러한 사실은 러시아 농민이 순박했고 미래를 내다보는 선견지명을
가졌다기보다는 오히려 발전단계가 늦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현상이다.
그리고 그가 제시한 이상낙원이 펼쳐진다 한들 러시아 농민이 정말 언제까지나
그가 제시한 순박한 농민일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그 방법론에 대해 수인囚人의 딜레마라는 측면에서 살펴보자.
그의 주장대로 국가를 폐지하기 위해선 일순간에 전세계의 모든 개인이
국가의 어떤 행위나 요구에 모두 거부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의 심리는 알 수
없는 법이다. 특히나 장기적인 문제보다는 이러한 단기적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자국에선 일거에 모두 비협력하여 국가를 제거하는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바로 이웃국가의 반만이라도 그 약속을 파기하고 존속한다면, 곧바로 느껴지는
군사 위협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이런 위험한 여지가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서로 눈치를 보며 기피하려고 하고 혼자만 국가를 포기한 곳에서는
이른바 모든 위험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하지만 완벽한 이론이란 없는 것이고 약점이 있다고 해서 그 이론이 완전히
무용한 것은 아니다. 기존의 국가체제도 아니며 혁명적인 아나키즘도 아닌 그의 사상은
거시적으로 볼 때 간디의 인도 독립 투쟁 노선까지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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