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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일기 - 코로나19로 봉쇄된 도시의 기록
팡팡 지음, 조유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2월
평점 :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저자 팡팡(본명 왕팡)은 1955년생이고 중문학을 전공한 작가다. 30년간 우한에서 생활해온 ‘우한사람’이기도 하다. 1월 25일, 우한에 도시 봉쇄령이 내려지고 3일 차 되는 날 그녀는 인터넷에 기록을 시작한다. 『우한일기』의 시작인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집어삼킨 첫 번째 도시 우한에 봉쇄령이 내려졌을 때, 나는 코로나19 이전의 세계에 있었다. 서랍 속에는 미세먼지가 염려되어 사두었던 KF94 마스크가 열댓 장쯤 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 마스크들을 원래의 용도가 아닌 다른 이유로 전부 쓰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외출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지금의 세계를 결코 예상하지 못했다.
약 일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는 이 일기를 읽는다. 이제는 바이러스가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외로움을 넘은 괴로움이 무엇인지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만큼은 아니다. 저자는 전염병이 창궐한 중심 지역에서 ‘봉쇄’ 당했으니, 나의 괴로움은 그녀의 것에 견줄 것이 못 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같은 바이러스의 영향 아래 있더라도 개인 또는 국가의 상황이 다르면 그 경험 또한 다른 것이 된다.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은 알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무지의 경계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넓고, 우리가 아는 세상을 1밀리미터씩 넓혀가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나 같은 일개 문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역시 최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236쪽)
60일 분량의 일기에는 우한사람으로서 그녀가 겪어야만 했던 특수한 경험, 그 나날들이 담겨있다. 초기의 잘못된 대처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음의 구덩이로 밀어 넣을 수 있는지 알게 되었고 도시를 봉쇄한다는 게 진정 어떤 의미인지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또 한 명의 우한 사람으로서 갖는 고향에 대한 애정, 사람들을 떠내보내는 슬픔, 와중에도 찬란한 햇살 등 개인적이지만 보편적인 일상의 경험도 기록되어 있다.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록을 남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녀의 말을 빌려 말하고 싶다. 나 같은 일개 독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누군가의 기록물을 읽어 나가는 것이라고.
『우한일기』는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15개국에 판권을 팔았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출판 허가를 받지 못했다. 사람들을 선동하거나 자국을 적대적으로 비난하는 종류의 글이 아닌데도 말이다. 이 기록물은 일기다. 중대한 역사가 될 어느 시기의 기록이다. 당시의 참상을 낱낱이 기록한 글이 존재한다면 이후에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최악의 반복만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에게는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정의를 세워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 만일 우리가 책임 묻는 일을 포기한다면, 우리가 이 시간들을 잊어버린다면, 어느 날 창카이의 절망조차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렇게 된다면 나는 이렇게 외칠 것이다. 우한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재난뿐만 아니라 치욕까지 짊어져야 할 것이다. 망각의 치욕 말이다!”(435쪽)
무엇이 우한을 봉쇄령까지 이르게 했는가. 초기의 대처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무엇이 상황을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들었는가. 이 질문들은 잘못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추궁한다. 분명 바이러스만은 아니다. 이것은 인재다. 우리 사회, 우리 인간의 잘못이 동반된 재난이다. 그렇기에 진상규명은 꼭 필요하다. 바이러스 치료에는 백신이 필요하고 백신을 만들기 위해선 바이러스가 어디서 나왔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과거의 재난을 통해 진상규명을 간절히 원하는 마음을 품어보지 않았나.
어떤 세력이 진실을 은폐하려는 이유는, 그 진실이 힘을 가질까 두려워서다. 진실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것이 갖는 힘은 더 강해진다. 한 사람이 귀를 기울이면 목소리는 한 사람 분량의 힘을 더 갖게 된다. 듣는 것과 읽는 것. 그것은 앞서 말했듯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이다. 진실은 승리할 것이다. 진실이기 때문에.
나는 늘 내 모든 기억의 뿌리가 이 도시에 깊게 박혀 있다고 말하곤 했다. 어렸을 때부터 노년이 될 때까지 알게 된 우한의 모든 사람들을 따라 기억도 뿌리내린 것이다. - P112
떠난 자는 이미 없고, 산 자는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 그저 우리가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름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 가슴 아픈 밤들, 그리고 무엇 때문에 이 즐거웠어야 할 춘절 기간에 그들이 인생을 마감해야 했는지를 말이다. - P68
한 나라의 문명 수준을 말할 때는 국가에 얼마나 높은 건물이 있고 얼마나 빠른 차를 만들어내며 (중략), 심지어 얼마나 많은 여행객이 호방하게 외국으로 나가 전 세계를 휩쓰는지도 상관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다. 바로 약자들에 대한 국가의 태도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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