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오기 전에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김성기 옮김 / 이레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결국 읽는내내 참았던 울음을 참아내지 못하고 쏟아내 버렸다. 얼마만에 울어보는 것인지 기억조차 없다. 더군다나 책을 읽다가 눈물을 보이다니....남자녀석이, 그것도 40이 넘은지 어느덧 5년이 지난 내가 말이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어릴적 기억부터 최근의 일까지 한꺼번에 파노라마 사진처럼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마치 죽을때 자신의 지난시간들이 정신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 처럼 말이다. 죽.음. 그 슬프고, 가슴아프고, 오래도록 지우지 못하는 흔적을 간직한 나로서는 이 책이 내 자신의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갖 들어간 4월. 아버지는 어머니와 3남매를 남겨놓고 말없이 떠나셨다. 초등학교 5학년인 여동생의 목소리를 끝으로 그 힘들고 길었던 생명의 끈을 놓아버리셨다.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고...아버지를 먼 곳에 남겨놓도 뒤돌아 돌아오는 우리 4식구의 내일은 옷의 색깔 만큼이나 어두컴컴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일상 속으로 되 돌아온 우리는 그 아픔의 기억들을 하나씩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아니, 망각의 신이 하나씩 가져가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죽.음.그.것.은.살.아.있.는.자.는.그.냥.그.렇.게.살.아.가.기.마.련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나 두번째 죽음을 맞이했다. 바로 할아버지의 죽음. 그날도 역시 평범한 날이었다. 나에게 늘 올바르고, 곧음을 일러주시던 분이셨는데, 늘 목욕탕을 데려가고, 매주 한번씩 영어를 봐주시고, 대학들어갈때 손수 지도까지 해주셨던 분이셨는데 시간은 더이상 할아버지와의 관계를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점점 죽음에 대해 익숙해질 나이가 되었다.

죽.음.그.것.은.익.숙.해.져.가.는.것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2000년을 맞이하기에 들뜬 99년 여름. 그렇게 나는 가까운 사람의 세번째 죽음을 함께해야했다. 바로 내가 그토록 사랑해던 형의 죽음이 그것이다. 1년전 내가 미국길에 오를때 아무도 없는 내방에 들어와 나에게 자신의 주머니속에 있는 잔돈과 꼬깃꼬깃 꾸겨진 얼마의 종이돈을 손에 쥐어주며 '미안하다고, 지금은 이것밖에 줄게 없다고' 하던 형. 일밖에 몰랐던 형은 지나친 과로와 작은 술자리 등으로 인해 간이 망가질데로 망가져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순간에 도달했던 것이다. 간암말기. 잠시 다니러 나왔던 나는 그런 형의 곁에 머무를 수 밖에 없었다. 의사의 선언은 전쟁을 선포하고, 사형을 언도하는 것과 맘먹었다. 모든것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 그로부터 3개월 후. 나날히 야위워가던 형도 더이상  끈을 잡지 않았다. 허무하게 놓아 버린것. 이날 역시 나는 형과의 어릴적부터 얼마전 다녀왔던 이별여행이 한꺼번에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예전의 그 언젠가 처럼...

죽.음.그.것.은.머.지.않.아.나.에.게.찾.아.올.반.갑.지.않.은.손.님

이제 내나이 정도 되면 살아온 날들보다 날아갈 날이 신경 쓰이게 된다. 아마도 반도 남아있지 않았겠지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고개를 쳐드는 나이라고나 할까. 이제 주변의 죽음은 무덤덤하게 되는 나이이기도 하다. 너무 일찍 죽음을 알아서일까? 올해만 해도 가까운 분들이 마치 함께 하자고 약속이라도 한듯 내곁을 떠났다. 또 언제 누가 어떤 소식을 전해줄지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그날. 바로 죽음의 그날. 우리는 어떤 모습을 할까? 마치 누군가 죽게되면 세상이 끝나고, 도저히 제정신으로 살아내지 못할 것 같지만 막상 닥치고 보면 평상시보다 오히려 더욱 더 담담해진다. 차분해지기까지 하다. 물론 갑자기 비명횡사의 경우야 다르겠지만 차곡차곡 죽음을 기다려온 사람들에게는 그것은 그냥 무덤덤함이다. 그러면서 남아있는 사람은 홀로서기를 연습한다. 하나하나씩. 나는 너무 어릴적부터 '산사람은 살기마련' 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게 무슨말이지 모르던 나이부터 말이다.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시간은, 그리고 죽음은 그렇게 사람을 바꾸어 놓는다.

시게마츠 기요시의 '그날이 오기전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기고 죽음을 향해 떠나거나, 죽음을 받아들이거나, 함께했던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처음부터 마음이 아리다. 가슴이 저리다. 시게마츠 기요시는 잔잔하게 여러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일상을 풀어내고 있다. 단편이거니- 비행기 구름, 파도소리, Here Comes The Sun - 했다가 마지막 세개를 묶은 한편 -그날이 오기 전에, 그날, 그날이 지난 후에- 를 읽다보면 그것이 단편이 아닌 연작소설임을  알게된다. 절묘한 순간에 등장하는 앞편의 인물들이 이야기를 더욱 더 생동감있고, 짜임새 있게 해준다.

첫번째이야기 '비행기구름'은 같은반 아이가 병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그 친구를 병문안 가는 학급임원과 몇몇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물론 아이들은 그 병이든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결국 그아이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그 반의 여자아이는 그 친구에게 줄 선물로 색종이에 날아가는 비둘기를 그리게 된다. 날아가는 비둘기는 죽음을 의미한다고...결국 그 비둘기를 그린 소녀는 훗날 '그날 3부작'에 나타나게 된다. '파도소리'는 어릴적 바다에서 뛰어놀던 친구의 죽음을 둘러싸고 남아있는 친구들의 추억과 그 중 한명이 훗날 죽음의 병때문에 자신의 어릴적 고향을 찾게 되는 이야기다. 이 친구는 고향에서 어릴적 또 다른 친구-약국을 경영하는-를 만난다. 결국 그 친구도 병으로 죽게되고, 약국을 경영하는 친구는 훗날 '그날 3부작'에 역시 나타난다. 'Here Comes The Sun' 도 같은 맥락이다.

마지막 3편 '그날 3부작'은 아내의 죽음을 앞둔 남편과 두아들의 이야기이다. '그날이 오기 전에'는 죽음 전, '그날'은 죽음, 그리고 '그날이 지난 후에'는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결국 나는 그날이 오기전에 울움을 보이고 말았다. 너무 가슴이 애려서 말이다. 떠나는 아내는 남겨질 가족에게 살아가는 방법을 준비해준다. 보내는 가족또한 떠나는 사람과 이별을 준비한다.

때로는 남아있다는 것이 미안할 때가 있다. 내가 대신 그 역활을 해주고 싶을때도 있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것이 마음먹은대로 되질 않는다. 간혹 '내 인생의 일부를 떼어 그의 생명을 연장해 주고 싶은' 생각을 할때가 있다. 정말로 그렇게만 된다면 나는 과연 나의 얼마만큼의 인생을 떼어 사랑하는 사람이나 필요한 사람에게 줄 수 있을까? 그리고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그 사람을 잊을 수 있을까? 나의 기억으로는 영원히 잊지는 못하는 것 같다. 단지 묻어둘 뿐이지...

시게마츠 기요시의 '그날이 오기 전에'는 지금 살고 있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이 들거나, 주변에 죽음을 앞둔 소중한 사람이 있거나, 찐하게 눈물한번 흘리고 싶을때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적어도 이 책을 읽고나면 지.금.나.의.삶.이.썩.나.쁘.지.만.은.않.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그 어떤이가 지금도 그날을 기다리고 있을테니 말이다.

그런 모든이에게 희망과 아름다운 기적이 일어나길 간절히 바란다. 간.절.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