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백년고독 > 바짝 말린 무청처럼 살고 싶어라...
비구니 산사 가는 길
이기와 지음, 김홍희 사진 / 노마드북스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새벽 3시다. 도량석이 시작되었다.’ 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조용하지만  잰 걸음의 스님들이 떠오른다. 차가운 물에 세수를 하고 가사를 걸치는 소리, 미닫이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들이 책속에서 걸어 내게로 다가온다. <비구니 산사 가는 길>은 굴곡의 시인 이기와가 사진작가 김홍희와 함께 전국의 산사들을 돌며 펴낸 감동의 기행집이다. 나와 같은 남정네는 평생 들여다 볼 수 없을 법한 비구니들의 생활들을 소소하고 감동적으로 이야기해준다. 여성 특유의 감수성에 시인의 혜안까지 지녔으니 책의 내용은 말하지 않아도 알만할 터. 또한 이기와 시인의 글과 어울리는 아름다운 사진작가의 주인공은 <나는 사진이다>라는 포토 에세이를 펴내기도 한 김홍희 작가이다.


평창 오대산의 지장암, 울산 가지산의 석남사, 예산 덕숭산의 견성암, 그리고 강화 고려산 백련사 등 수 많은 산과 그 속에 자리하고 있는 산사의 모습과 스님들을 이야기한다. 시인은 스님들을 만나고 절에 머물면서 삶의 화두를 찾고 잃어버린 길을 보며, 보이지 않는 답을 본다. 소나무 밑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는 작은 자벌레에게서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지혜를 배우고,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느낀다. 시인은 시집살이 보다 더 고달프고 까다롭다는 행자시절을 마치고 구족계를 받아 스님이 된, 수많은 비구니들을 만나면서 배움과 깨달음의 의미를 되짚는다. ‘계곡물이 꽁꽁 얼어붙어 죽은 듯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꺼운 얼음장 밑으로 실핏줄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계곡물은 냉장고의 얼음덩어리처럼 죽은 것이 아니라 피가 통하고 있다’ 계곡물 속에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다는 시인의 말은 오래 묵은 된장으로 끓인 구수한 된장국과 같다. 산과, 나무와, 물과, 법당안의 공기들은 무릇 ‘때가 잘 끼는 애욕의 손톱 밑’과 ‘물욕의 발가락 사이사이’를 깨끗이 씻어주는 최고의 멘토가 아닐까...


이기와 시인의 글도 글이려니와..., 실은, 나에게는 김홍희 작가의 사진이 글보다 더욱 좋았다는 것을 고백한다. 눈이 부실 듯 반짝이는 스님의 방, 목탁이 걸려 있는 깨끗한 벽, 법당 앞에 벗어 놓은 하얀 고무신들은 속세에서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겠다는 스님의 무소유를 보여주는 듯 하다. 어른어른 한 물결과 그늘진 산사의 모습, 간절한 소원을 빌기 위해 피어 놓은 단아한 촛불들... 아름다운 처마의 단청과 어두운 그늘의 담 속에서 강하고 부드러운 모습으로 피어난 작은 잎들... 김홍희의 사진들은 산사의 고즈넉한 풍경을 고스란히 책에 담았다. 시간이 나면 글을 쓰고 명상을 한다는 작가의 모습은 산사의 스님들과 꼭 닮았다. 그래서 일까, 사진들은 하나같이 스님들의 법문처럼 깊고 진하게 다가온다.


온갖 더러운 욕망으로 가득한 세상, 오랜만에 차분히 앉아 내 속에 들끓고 있는 욕망들을 잠재울만한 책을 만났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부질없는 속세에 너무 많은 기대와 열망을 안고 있다. 그것이 고스란히 자신을 갉아먹는 벌레인줄은 꿈에도 모른 채... 욕심으로 가득한 속세인들의 모습을 잘 표현한 이기와 시인의 말은 물욕으로 가득한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기에 충분하다....


수분이 있는 것들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무청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이승에 머무르기 위해 지나가는 바람과 햇살을 끌어와 이불로 덮고 제 몸의 부피를 줄이고 있다. 애욕과 물욕의 수분이 많은 사람들의 몸은 쉬 곰팡이가 슬고 빨리 부패하고 만다. 그들은 제 욕심의 수분을 말리는 방법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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