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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기쁨 - 불확실한 날들을 가볍고 유연하게 건너는 법
박정은 지음 / 옐로브릭 / 2021년 8월
평점 :
『사려 깊은 수다』, 『슬픔을 위한 시간』의 저자 박정은 수녀님의 신간 『생의 기쁨』.
수녀님의 이전 책들을 즐겁게 읽었기에 신간에 대해서도 기대감을 품긴 했지만, ‘기쁨’이라는 키워드는 사실 내게 그리 친숙하지 않다. 밝거나 유쾌한 성격과는 거리가 있기도 하고, 삶의 밝은 면보다는 어둡고 부정적인 면을 늘 먼저 그리고 가장 크게 지각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첫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이 책은 나를 위한 책이다’라고 직감했다.
“딱히 불행할 것도 없고, 딱히 내놓을 것도 없이 그저 성실히 매일을 살고 있는데, 언제부터인지 삶이 좀 건조하고 기계적이라고 느껴진다면, 우리는 잠시 멈추어 서야 합니다. 아이들을 챙기고 직장 일을 하면서 그저 주어진 대로 해내야 하는 일들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내면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정색하고 자신에게 '안녕하니?' 하고 물어야 합니다.”(p. 7)
내 일상이 사찰당했나 싶을 정도로 너무 내 상황, 내 마음과 같은 이야기여서 멈칫했다. 하긴, 주위의 워킹맘들을 보면 다 내 마음 같다. 지난주엔 회사 동료와 거의 몇 달 만에 이야기를 나눴는데, 회사 일과 집안일과 육아가 가득 채우고 있는 서로의 일상에 대해 몇 마디 하지 않고도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같이 한숨을 쉬었었다.
나만 이런 게 아니지만, 모두가 비슷하게 힘들다는 것을 안다고 해서 내가 힘든 것이 조금이라도 덜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내 일은 내가 해야 하고 내 아이는 내가 챙겨야 하니까, 그렇게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기쁨’은 언감생심이고, 오늘 하루를 별 탈 없이 그저 보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한숨을 돌리게 된 것 같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내게는 ‘기쁨’이 필요하다! 기쁨을 기꺼이, 더 많이 발견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며 깨닫게 된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기쁨이란 삶의 모든 것이 만족스럽거나, 자랑할 만한 무언가를 가졌을 때 느끼는 일시적 행복감이 아니다. 기쁨은 일상의 사소한 순간에서 ‘발견’되고 처한 환경에 관계없이 ‘훈련’되는 능동적 능력이고, 저자의 말에 따르면 “영성적인 문제와 맞닿아 있”(p. 15)는 것이다. “이 광활한 우주의 한 점 먼지와 같은 존재에게 삶이란 결국 순례”(p. 9)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삶의 기쁨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작은 순간들, 그러니까 자기 자신과 혹은 다른 누군가와(혹은 무언가와) 연결되는 순간들”(p. 8)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일상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훈련을 돕기 위한 현실적인 제안들, 기쁨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놀이와 유머에 대한 고찰 등을 제시해 준다. 결국 이 책의 목적은 ‘기쁨을 위한 훈련’이며, 이 책을 읽는 것은 ‘훈련’으로 이어져야 한다.
“나는…마치 이 시대에 잃어버린 보물을 찾아가는 작업처럼 기쁨을 찾아가는 책을 쓰려고 합니다. 그것은 눈부시게 새로운 동시에 아득하게 오래된 어떤 것을 찾는 설레는 작업이 될 것입니다.”(p. 16)
나는 요즘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시간 거지’라고 부르는데, 한자리에 진득히 앉아서 뭘 읽거나 보거나 듣거나 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오롯이 혼자일 수 있는 시간이 하루 24시간 중에 1시간도 채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틈틈이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런 내 일상 속에서도 기쁨의 파편들을 발견하려는 마음의 자세를 취하게 되었고, 놀랍게도 발견‘하려는’ 시도만으로도 적지 않게 발견하게 되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틈틈이 조금씩 읽을 수 있는 좋은 책들, 일주일에 단 한 시간 온라인으로 만나 서로 힘을 북돋워 주는 친구들과의 대화, 재택근무할 때 점심시간을 쪼개어 보는 ‘슬의생’, 어린이집 갔다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엄마~” 하며 불러 주는 아이들의 목소리, 자려고 누우면 그제야 대화를 시작하는 아이들의 조잘대는 목소리와 한밤의 노래잔치…. 내게도 ‘생의 기쁨’이 있었다!
모든 것을 다 잘해 낼 수는 없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고 늘 생각해도, 어느 순간 실수하고 놓치고 부족한 나 자신을 용납하지 않는 나를 발견한다. 좀더 관대하게, 좀더 경쾌하게, 단순하고 사소한 일상의 기쁨들을 발견하며 살고 싶다. 내게 주어진 지금의 일상을 좀더 기쁘게 누리고, 그래서 내 삶이 행복한 것임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사실 그걸 가장 잘 보여 주는 사람들이 내 옆에 두 명이나 있다. 한 명은 일곱 살, 한 명은 네 살. 오늘 저녁도 이 어린이들에게 잘 배우면서, 하루를 즐겁게 마무리해 봐야겠다.
“내 일상이 축제가 되기 위해서, 아니면 일상 속에 깃든 축제를 찾아내기 위해서, 내 영혼의 콜라주를 읽어 내려가야 합니다. (…) 그런 조각들은 늘 내 일상은 작은 축제라는 것을, 축제에는 슬픔도 있고 상실도 있음을, 그런 것들을 보아 내면 거기에 맑은 기쁨이 탄생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pp. 217-218)
늘 손 닿는 곳에 두고, 빼곡한 일상에 한숨이 나올 때마다 펼쳐 봐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