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농장 보물창고 세계명작전집 9
조지 오웰 지음, 황병훈 옮김, 이선주 그림 / 보물창고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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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만 해도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어른들은 정치에 관심을 갖고 알아야 한다고 하셨지만, 정치는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 기르다 보니, 정치가 나와 굉장히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우리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마침 시작된 영유아 무상보육 덕분에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기면서 부터였다. 연년생으로 아이가 둘이다보니 무상보육의 혜택은 당시 우리에게 경제적으로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무상보육이 아니었더라도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야 했던 우리로서는 더더욱 말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한참 어린이집을 다닐 즈음 무상보육이 중단 될 위기에 몇 차례 놓이게 되자 정치적 결정을 계속 지켜보며 정치에 점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잘 몰랐을 뿐 정치는 우리 생활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정치라는 것이 알수록 참 어려웠다. 그냥 간단히 눈에 보이는 것만 보자면 그저 그때그때 올라오는 기사만 보면 되지만, 정치라는 것은 사실 그렇게 간단하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정치적 사안에도 그 내면에는 여러 가지 입장과 상황이 복잡하게 얽혀있었고, 순수하게 한 가지 사안만 놓고 결정하는 경우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정치에 대해 제대로 알고 이해하려면 단순히 정치 기사만으로는 절대 정치에 대해 알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정치에 대해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눈으로는 정치 기사를 읽어도 그 내용이 전혀 머리에 들어오지를 않았다. 정치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려면 정치 뿐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지리, 세계 등 많은 것들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지 싶었다. 그래야 기사를 보든 정책에 관해서든 정치에 대해 뭐라도 한 마디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정치에 관심을 갖고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역사 공부였다. 정치에도 우리의 역사가 반영되어 있었고, 역사적 변화 속에서 우리의 현 정치도 나온 것이니 말이다. 지금의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치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역사를 먼저 알아야지 싶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공부를 했는데, 역사를 공부해도 정치가 어렵게 느껴지기는 매한가지였다. 역사라는 것이 꽤 방대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정치 역사만 놓고 보더라도, 나에게는 우리나라 대통령에 대한 것도, 정당에 대한 것도 참 어려웠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나로서는 지역감정이나 지역에 따른 정당 주의가 없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그리고 정치를 잘 모르는 나로서는 자꾸만 바뀌는 정당이름이나 당을 자꾸 바꾸는 정치인이 너무 많아 복잡하게만 여겨졌다. 공부에는 끝이 없다지만, 정치 공부에도 정말 끝이 없는 듯 했다. 나의 얕은 지식이 가장 큰 원인이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정치에 무지한 국민인 나도 알 수 있는 것은 무언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고려해야 했고, 여러 가지 상황을 염두 해 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떤 사안을 결정하든 가장 상위에 있어야 하고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기준은 가능한 한 많은 국민이 공평하게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우리를 대표할 이들을 뽑아 정치인이라는 부르고 나랏일을 맡긴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정치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일반 국민들이 느끼는 것은 정치가 대다수의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일부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오해에서 비롯된 느낌일 뿐인 것인지, 오해가 아닌 진짜 그런 상황인 것인지는 그것이 궁금해서 정치에 대해 공부해보겠다고 역사 공부를 해보았지만, 여전히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것은 정치를 하는 분들이 가장 잘 알 것이고, 일반 국민인 나로서는 직접 정치를 하지 않는 이상 평생 공부해도 절대 모를 일이지 싶었다.

 

역사 공부를 해도 잘 모르겠던 정치. 내 공부가 짧아서이다 싶어 다시 정치에 대해 공부해봐야겠다 하고 생각 할 즈음, 정치풍자 소설로 유명하다는 책<동물 농장>을 읽게 되었다. 정치 풍자 소설이라는 것을 알고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책을 읽으면서 어떤 부분을 풍자하고 있을지 자꾸 생각하면서 읽게 되었다. 이 책이 그냥 동물들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보면 다소 지루하기도 하고 재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재미는 우리 인간 사회와 연관 지어서 읽는 것이었다. 대체 이 책에 나오는 농장이 인간 사회의 어떤 사회를 풍자하고, 이 책에 나오는 동물들이 어떤 사람을 풍자한 것인지 찾아보는 것 또한 큰 재미고 말이다. 나는 이 책의 배경이 되는 곳이 우리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데도 자꾸 우리나라 정치와 연관시켜 보기도 하고, 북한의 정치와 연관시켜 보기도 하며 읽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읽어도, 왠지 모르게 잘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영국의 동물들>

 

영국의 동물들, 아일랜드의 동물들,

온 땅의 동물들이여!

황금빛 미래에 대한

내 흥겨운 소식에 귀 기울여 보시오.

 

조만간 그날이 올지니,

폭군 인간이 파멸되리라.

영국의 풍요로운 들판을

오직 동물들만이 걷게 되리라.

 

우리 코에서 쇠코뚜레가,

등에서는 멍에가 사라지리라.

재갈과 박차는 영원히 녹스리라.

잔인한 회초리는 더 이상 찰싹 소리를 내지 못하리.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풍요로움,

밀과 보리, 귀리와 건초,

토끼풀과 콩 그리고 근대가 그날 우리 것이 되리니.

찬란함이 영국의 들판을 빛내리.

영국의 강물은 더 맑아지리라.

산들바람은 한층 더 달콤하리.

우리가 자유로워지는 그날에.

 

그날 위래 우리 모두 노력하리라.

그날이 오기 전에 우리가 죽는다 하더라도.

암소와 말, 오리와 칠면조

자유를 위하여 모두 부지런히 일해야 하리.

 

영국의 동물들, 아일랜드의 동물들,

온 땅의 동물들이여.

귀 기울여 황금빛 미래에 대한

내 소식을 들어 보시오.

- <동물농장> p15 중에서  

<칠 계명>

1.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것은 무조건 적이다.

2. 네 발로 걷거나 혹은 날개를 가진 것은 무조건 친구이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으면 안 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면 안 된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 <동물농장> p31 중에서  

점점 시력이 떨어지고 있어요. 나는 젊었을 때도 저곳에 적힌 것을 읽을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저 벽이 어딘가 달라진 것이 보여요. 벤자민, 칠 계명이 예전과 똑같은가요?”

클로버가 물었다.

벤자민은 이번 한 번만 자신의 규칙을 깨고 클로버에게 벽에 쓰여 있는 것을 큰 소리로 읽어 주었다. 그곳에는 단 하나의 계명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았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몇몇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 <동물농장> p142 중에서  

이 책이 특정 시대의 특정 사회를 노골적으로 풍자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음에도, 이상하게 이 책의 이야기를 어느 곳에 대입시켜보아도 전혀 이상하거나 어색하지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작가가 주고자 했던 근본적인 메시지는 결국 정치는 정도의 차이일 뿐 누가해도 다 똑같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나 사람을 미워하고 싫어했던 동물들도 동물 사회를 이끌기 위해서는 지도자가 필요했고, 지도자가 사회를 이끌기 위해서는 정치를 해야 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문제는 지도자와 지도자 세력이 권력의 맛을 본 뒤부터였다. 한 번 권력의 맛을 본 지도자와 그 세력들은 권력을 유지하고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편의와 이득을 챙기는데 급급했고, 같이 사회를 이룬 동물들의 권리는 뒷전이었다. 그러다 점점 욕심을 커져서 결국에는 지도자와 그 세력들은 다른 동물들을 자신들을 위해 멋대로 이용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이상하게도, 정말 이상하게도 동물농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왠지 모르게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결국 동물들도 어쩔 수 없구나 하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항상 우리들을 위해 바른 정치를 펼쳐 줄 영웅을 기다리고 기대하고 있지만, 정치라는 곳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어쩔 수 없이 변할 수밖에 없구나 싶었다. 그동안 사회적으로 괜찮은 인물이라 여겼던 사람들이 정치에 뛰어들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 될 정도로 바른 정치를 펼친 사람이 없는 것만 봐도 그랬다. 설사 바른 정치에 대한 신념이 굳건하다 하여도 정치에 발을 들여놓는다 해도 주변에서 가만두지 않는 듯 했다. 그 누구도 바른 신념을 위해 자신의 밥그릇을 내어놓으려 하지 않는 듯 했다. 바른 정치를 꿈꾸고 이를 끝까지 관철시킬만한 이들이 우리 사회 어딘가에는 있을 듯한데, 왜 우리가 그렇게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이들은 없는지 참 안타까울 뿐이다.

 

 

열두 개의 목소리가 화가 나 외쳐 대고 있었다. 목소리들은 서로서로 비슷했다. 이제 돼지들의 얼굴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바깥에 있던 동물들은 돼지에서 인간으로, 인간에서 돼지로, 그리고 다시 돼지에서 인간으로 시선을 옮겨 가며 살펴보았다. 그러나 누가 인간이고 누가 돼지인지 구별하기란 정말 불가능했다.

- <동물농장> p150 중에서 -

 

이 책의 마지막에 나오는 누가 인간이고 누가 돼지인지 구별하기란 정말 불가능했다.”라는 글은 읽는 순간 마음이 찹찹해졌다. 정말 정치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싶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말이다. 권력이라는 것이 원래 욕심과 탐욕을 부르는 자리인가 싶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인물, 세종대왕님. 이 시대에 세종대왕님 같은 지도자를 바라는 것이 너무 큰 욕심인 것인가도 싶지만, 세종대왕님 같은 지도자가 나타나 우리 사회를 평정해주길 간절히 바라게 된다.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 읽고 있는 나도 많은 공감과 이해가 되는데, 이 책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당시 쉽게 출간되지 못했던 이유가 어느 정도 가늠이 된다. 아마 이 책을 읽으며 가슴 뜨끔했던 이들이 많지 않았을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꿈을 말해보라고 하면 대통령이라고 하는 아이들이 거의 대부분일 정도로 많았는데, 요즘에는 대통령이 꿈인 아이들조차 없는 듯하다. 과연 대통령을 원하는 아이들이 있기는 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우스갯소리로 대통령 자리를 두고 잘 해도 욕먹고, 못 해도 욕먹는 자리라고 하니 말이다.

 

이야기가 끝난 후 나에게 갖은 상상을 하게 했던 인물들에 대한 궁금증은 책의 가장 뒤편에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작품 속 숨은 상징 찾기라는 코너는 작가가 각 동물들이 상징했던 실재 인물들에 대한 설명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아마 각 동물들이 상징했던 인물들에 대한 지식과 당시 상황에 대해 공부를 한 뒤 이 책을 다시 읽는다면, 막연하게 상상하며 읽을 때와는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지 싶다. 동물 농장에서 벌어지는 동물들의 이야기들. 이야기를 곱씹어 볼수록 작가의 대단함에 절로 박수가 쳐진다.






- 연필과 지우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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