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공주 파라랑 푸른도서관 73
김정 지음 / 푸른책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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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자마자 눈에 확 들어오는 표시의 문양이 인상 깊었다. 단순하면서도 화려한 느낌을 주는 문양이 그 어떤 그림보다도 더 눈에 잘 들어왔다. 조금 이국적으로 보이긴 했지만 책 제목이 신라 공주 파라랑이니 당연히 우리나라 문양이려니 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책 표지에 있는 문양이 우리나라 문양이 아니라 페르시아 문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는 역사 저 너머로 사라진 페르시아지만 그 옛날 우리나라와의 설화를 바탕으로 한 편의 서사시를 남겼고, 그것은 다시 작가의 상상을 보태어 신라 공주로 태어났지만 페르시아의 왕비로 살았던 파라랑이라는 여인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다.

 

책 표지에서부터 신라 공주 파라랑이라고 써 있었기 때문에 파라랑이라는 인물이 신라 공주라는 사실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처음 책을 읽을 때 파라랑이라는 이름이 그리 한국적인 이름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를 배경으로 떠올리며 읽었다. 그리고 궁전이 아닌 시장을 배회하다 특별한 인연을 만나는 상황을 보며 저절로 애니메이션 <알라딘>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파라랑을 우리나라 공주가 아닌 이국적인 공주로 상상을 해버렸다. 하지만 파라랑이 페르시아 왕자를 이방인으로 여기는 순간, 파라랑이 우리나라의 공주라는 것을 새삼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단지 상상 속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파라랑의 감정은 굉장히 사실적이고 현실적이었다. 시대가 그 옛날 신라 시대이고 지위가 흔치 않은 왕족인 공주였지만, 그녀가 느끼는 감정들은 지금 이 책을 읽는 현재에서도 충분히 공감을 할 수 있는 감정들이었다. 그것은 물론 파라랑이 신라 시대의 공주임에도 불구하고 솔직하고 적극적인 성격의 인물로 표현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 책은 설화를 바탕으로 한 역사 소설이기도 했지만, 어찌 보면 한 여자가 소녀에서 여자로 그리고 엄마로 살아가는 인생을 담은 성장 소설이기도 했다.

 

처음엔 파라랑의 풋풋하고 설레는 사랑을 하는 것을 보면서 나 역시 어린 시절 가졌던 설레던 사랑을 떠올리며 그녀의 감정에 빠져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작은 손짓에도 가슴이 떨렸던 시절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하지만 사랑은 항상 같은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만 머물러있지 않았다. 사랑에도 과정이 있었고 사랑도 그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파라랑은 사랑을 하며 소녀에서 한 남자의 여자가 되었고, 그에 따라 그녀의 사랑도 한층 더 성숙해졌다. 그리고 사랑의 결실이라 할 수 있는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 후 그녀의 사랑은 더욱더 강인해졌다. 사랑 뿐 아니라 그녀 자신 역시 말이다.

 

 

우리 아리가 언제 이렇게 컸을까? 네가 자랑스럽구나.”

아리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파라랑은 아리를 보며 생각했다.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은 어른들이 다 함께 정성으로 보살펴야 한다는 것을. 사람에 의해 상처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사랑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사랑을 베풀 것이고, 그 아이들의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기 때문이다.

- <신라 공주 파라랑> p170 중에서 -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다고들 한다. 파라랑도 그런 강한 엄마였다. 그런 파라랑을 보며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얼마 전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너무나 힘겨웠기 때문에 엄마 역할이 나에겐 너무나 버거웠기 때문이다. 나 역시 엄마가 된 후 그 전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모든 엄마가 다 강하지만은 않은 듯하다. 나는 내가 강한 엄마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엄마 역할을 겨우겨우 해내고 있을 뿐. 그러다 엄마 역할이 너무 힘들어지면 가끔 나보다 힘들게 엄마 역할을 견뎌내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조금이나마 힘을 더 내보려고 한다. 그래도 나는 행복한 거라 여기며 말이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며 나의 행복을 다행이다 여기는 것이 옳지는 않지만 나쁜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적어도 내가 가진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조금이라도 느끼게 해주니 말이다.

 

파라랑의 강인한 사랑은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행복이 얼마나 큰 것인지 다시금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내가 나의 사랑을 성숙하게 만들지 못한 채 소녀 같은 사랑만 붙들고 머무르려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나는 이미 소녀에서 여자로 그리고 엄마가 되었음에도 내 사랑을 소녀 같은 사랑에만 머물게 하려 했음을 말이다. 사랑은 항상 같은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만 있을 수 없음을 나는 몰랐다. 그저 사랑은 변하지 않은 것이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사랑은 변해야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랑한다는 사실은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고 그대로일 테니까. 이 책은 한참 엄마의 역할로 힘겨웠던 나에게 나의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게 했다.

 

 

 

 

- 연필과 지우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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