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위의 아이들
이병연 글.그림 / 어문학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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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극적으로 시작하는 첫 이야기가 무슨 상황인지 잘 이해가 안 되었다. 그래서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일반적으로 맞닥뜨릴 수 있는 상황과는 많이 달랐다. 응급치료 받는 아내 곁에서 분주한 남편, 응급치료 받는 엄마의 가슴을 치는 아빠를 바라보는 아이. 나는 몇 번이나 다시 읽은 뒤에야 제대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여기에 나온 남편이자 아빠인 사람이 의사였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은 충격이었다. 엄마의 죽음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한 아이의 아픔보다도, 아내의 죽음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는 남편의 아픔보다도 더 큰 아픔으로 다가온 것은 자신의 아내를 구하지 못한 의사 남편의 아픔이었다.

 

충격과 놀라움, 아픔과 슬픔까지 담은 짧은 이야기 뒤에는 애처로움으로 절로 눈물짓게 하는 이야기가 바로 이어졌다. 아내를 하늘로 떠나보낸 뒤 어린 세 아이들을 데리고 먼 길을 떠나는 아빠, 젖병이 없어서 우는 아이를 안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서툰 아빠, 그럼에도 아이들 앞에서 차마 울 수 없는 아빠. 부모가 되고 보니, 그런 부모의 모습에 동화되어 괜히 눈물이 나왔다. 가끔, 아주 가끔 너무 힘들 때 철없이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내가 없으면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지낼까 하고 말이다. 그럴 때면 엄마인 내가 없는 우리 아이들은 너무나 안쓰럽게 느껴졌다. 내가 특별히 아이들에게 해주는 것이 없다고 여겼는데, 누가 나만큼 우리 아이들을 신경써줄까 싶은 생각이 가득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엄마 없이 아빠와만 있는 아이들을 보니, 역시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되었다.

 

엄마가 없다는 것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아픔이 될지도 자꾸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엄마인 내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존재인지를 깨닫게 했다. 내가 하는 말 한 마디, 내가 하는 행동 하나 하나가 우리 아이들에게는 소중한 추억이 될 수도, 아픈 기억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또한 말이다. 내가 누군가의 삶에 큰 영향을 주는 존재라는 사실이 많이 부담스러웠다. 내가 생각하기에 난 아직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인데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난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로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되었다. 그래서 언젠가 내가 없이 세상을 살게 되더라도 행복한 추억을 갖고 살 수 있도록 말이다.

 

이 책 속에 나오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엄마의 부재 속에 있는 아이들이었다. 엄마가 없거나, 엄마를 잃어버리거나, 엄마가 아픈 아이들.. 제대로 엄마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밝게 자라나고 있었다. 대지가 엄마의 보살핌을 대신해주고 있어서일까.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뛰어놀았고, 자연 속으로 자꾸만 파고들었다. 아마도 아이들에겐 자연이 엄마의 푸근한 품처럼 느껴져서 그랬던 것을 아닐까. 엄마의 품을 잊고 싶지 않아서.

 

“자네가 실수했어도 자네는 여전히 훌륭한 의사야. 잘하려는 과정에서 생긴 실수는 누구든 용서하네. 일부러 그런 게 아니지 않나?”

갑자기 아저씨의 얼굴에 흐릿한 홍조가 돌았다. 드디어 아빠의 입술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김 선생! 나는 홀어머니 밑에서 외롭게 자랐네. 열등감으로 가득한 소심한 산골 소년이었어. 나는 의사가 되면 열등감이 없어질 줄 알았네. 결혼하면 사라질 줄 알았어. 아이들이 태어나면 모든 것이 완벽해질 줄 알았네..... 그런데 아내가 떠난 후, 힘겹게 쌓아올린 모래성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지. 학벌, 명예, 돈 무엇으로도 내 안에 있던 열등감은 사라지지 않는 걸 깨달은 거야. 그러고 나니 정말로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이었는지 돌아보게 되었어.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채, 남을 사랑한다는 건 자칫 집착이 될 수 있겠더군.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른 채, 이룬 것은 모래성이 될 수도 있고 말일세.”

아빠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처음에는 내려놓는 것이 두려웠어. 그래서 한 손에 있는 것부터 내려놓았지. 일단 시작하니까 숨 쉬는 것만큼 쉽더군...”

- <하늘 위의 아이들> p190 중에서 -

이 책은 열 세 살의 여자 아이의 시각으로 그려진 이야기지만, 이야기 속에는 다양한 이들의 삶이 담겨있었다. 그 중 도시 의사에서 시골 의사가 된 아빠의 이야기는 이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큰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 책의 진짜 주인공은 아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골 의사가 된 아빠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어렴풋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말하고 있었다. 내 삶에서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자신이 주인공이듯,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삶과 함께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바로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엄마로 사는 삶 역시 그렇다. 엄마 역시 엄마인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할 수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무리 엄마라 하더라도 자기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 없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고 가정이 행복하다는 말처럼. 엄마가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 있단 생각을 깊이 하게 되었다. 나도 앞으로는 나 자신을 좀 더 사랑해주기로 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 연필과 지우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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