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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사춘기 ㅣ 푸른도서관 58
김인해 지음 / 푸른책들 / 2013년 4월
평점 :
사춘기를 겪는 청소년들이 나오는 이야기에는 어김없이 사춘기 청소년 자녀를 둔 엄마, 아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왜냐하면 사춘기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인이 되는 시기인데, 이런 사춘기 청소년들을 가장 많이 어린 아이 취급 하는 사람이 바로 그들의 엄마, 아빠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사춘기 청소년과 그들의 부모 사이에는 갈등이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동안 청소년 이야기라고 하면 항상 청소년이 주인공이었다. 헌데 이 책은 조금 달랐다. 청소년만 이야기의 중심에 있지 않았다. 청소년 자녀를 둔 엄마도 이야기의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 속의 엄마는 단순히 밥 해주고 빨래해주는 가사노동자로서의 모습만 담고 있지 않았다. 3~40년의 세월을 산 한 사람으로서의 고뇌를 담고 있었다. 청소년만 사춘기를 겪는 것이 아니었다. 엄마들에게도 사춘기가 온다. 청소년 시기의 사춘기와 다른 형태로.
이럴 땐 모르는 척 텔레비전 시청을 눈감아 줘야 하겠지만 그러려면 버릇없는 행동에 대해 뉘우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하지 않을까? 자존심이 문제다. 엄마의 자존심은 무시당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엄마한테 할 말 없어?”
아들은 곁눈질을 한 번 하고는 엄마 말에 대꾸할 가치조차 없다는 듯 화면만 쳐다볼 뿐이다. 자동차 원격 조종기를 생일 선물로 받고 이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아, 하고 목을 껴안던 아들은 이제 없다. 모두 은희 씨 곁을 떠나고 있다.
- <우리들의 사춘기>p40 중에서 -
이 대목을 보면서 나는 벌써부터 가슴 한 켠이 조금 허전해졌다. 아직은 세살, 네살인 우리 아이들. 아직은 자동차 한 대만 선물 받아도 좋아서 깡총깡총 뛰는 나이이다. 세상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엄마만이 최고고 엄마가 제일 좋다는 시기에 있는 우리 아이들. 이런 우리 아이들도 조금만 더 자라면 이 책속에 나오는 청소년들처럼 엄마와는 대화조차 잘 하려하지 않는 사내아이가 된다니.
청소년들은 이 대목에서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다 커서 엄마랑 무슨 대화야, 당연한 거 아니야, 나만 그런가 다들 그럴 텐데. 이렇게 여길까? 엄마 밖에 없던 어린 시절을, 자식과 대화하고 싶은 엄마 마음을, 자식에게 존중받고 싶은 부모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생각할까?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엄마 곁을, 부모 곁을 떠난다고 생각할까?
청소년들의 사춘기는 부모의 품을 벗어나고 싶지만 아직은 벗어날 수 없는 답답한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라면, 부모들의 사춘기는 자식을 품에 더 두고 싶지만, 이제는 품에 둘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잘은 모르겠지만 자식을 낳고 기르는 것이 힘든 만큼 자식을 품에서 떠나보내는 것 역시 참 힘들지 않을까 싶다.
소희의 교복발은 환상적이다. 여신이다. 교복을 입고 이젤 앞에서 스케치를 하는 모습에 홀딱 반한 애가 한두 명이 아니다. 30년 뒤의 소희는 한층 세련되고 곱겠지. 절대 엄마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다. 뭐? 소희가 엄마가 된다고? 안 돼! 결혼하고 애도 낳고 엄마처럼 잔소리도 하고? 나는 도리질을 하며 상상을 중단시켰다.
- <우리들의 사춘기> p163 중에서 -
소희네 엄마, 아빠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고 했다. 찢어지게 가난해서 소희 하나만 낳고 겨우겨우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면서 살아가고 있다나. 소희 엄마는 학생 때부터 가고 싶었던 배낭여행을 이렇게 살다가 미루면 평생 못 가 후회할 것 같다고 했단다. 그리고 소희 아빠는 클레오파트라를 기다리면서 클레오파트라처럼 저질러 버리기로 마음먹었다고.
- <우리들의 사춘기> p167 중에서 -
“1년 있다가 돌아오면 우린 살 집도 없어.”
소희 목소리가 낭랑한 종소리처럼 들렸다. 벌써 어느 멀리에 닿은 듯 이국적으로 다가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렇게 다 팔아 버리고 용감하게 떠날 수 있는 소희네 엄마, 아빠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1년 뒤에 돌아온 소희네가 어떻게 될지는 나중 일이었다. 물론 우리 엄마 아빠처럼 겁 많고 욕심 많은 사람은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소희네는 그런 걱정 따위가 우스워 보이는 걸까? 같은 사람인데 왜 이렇게 다르지?
- <우리들의 사춘기> p168 중에서 -
나도 분명 아이였던 때가 있었는데, 훌쩍 커버린 다음에는 다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예전 모습까지도 말이다. 아이들은 알까. 엄마 아빠도 자기들처럼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걸. 책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자기 엄마처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는 상상하다 흠칫 놀라는 아이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자기 엄마도 자기들의 여자 친구처럼 예쁜 소녀였던 때가 있었다는 걸 상상이나 해볼까 하고 말이다.
그러다 오히려 내가 더 깊은 생각에 빠졌다. 나도 아리따운 아가씨였던 때가 있었다는 걸. 아가씨였던 때는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도 그때 모습 그대로 일 줄 알았는데. 그때와 지금은 달라도 참 많이 달라져 있었다. 화장 안 하고는 집 앞에도 안 나가던 내가, 이제는 어쩌다 차타고 멀리 나갈 때만 화장 할 정도니 말이다. 옷은 또 어떻고, 아가씨 때는 매일매일 다른 옷을 입고 다니던 내가, 이제는 매일매일 똑같은 옷만 입고 다니고 있다. 나도 이제는 그냥 동네 아줌마가 되어버린 걸까. 왠지 조금 서글퍼졌다. 나이가 들더라도, 책에서 아이가 상상했던 것처럼 세련되고 고운 모습이고 싶었는데. 적어도 20년 뒤에는 아줌마더라도 지금보다는 멋진 아줌마의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본다.
- 연필과 지우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