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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호 - 2001년 뉴베리 아너 상 수상작 ㅣ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29
샤론 크리치 지음, 황윤영 옮김 / 보물창고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깊이 있는 이야기들을 담아내는 보물창고의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시리즈였기에 읽기 전부터 기대가 컸다.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 시리즈 속에는 항상 청소년들이 등장한다.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이제는 큰 아이이도 하고 작은 어른이기도 한 청소년들. 청소년들의 이야기이지만 어른인 나 역시 책을 읽으며 그들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을 하게 되고, 그들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곤 했다. <방랑자호>, 요즘 인생을 방랑하고 있는 나였기에, 이 책은 나의 마음을 더욱더 깊이 끌어들였다.
책장을 펼치자 항해를 위한 지도가 먼저 나왔다. 그리고 방랑자호가 가려는 길을 표시해두어 책을 읽을 때 구체적으로 항해길을 떠올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지도가 나오자 나는 궁금해졌다. 이 책 속에 나오는 지역들이 실제로 있는 지역들인가 하고 말이다. 이 궁금증은 책을 읽으며 해결할 수 있었다. 친절하게도 지역명칭이 나올 때마다 지역에 대한 짧은 설명을 덧붙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 속에는 주로 세 명의 어른과 세 명의 아이들이 나온다. 그리고 이 여섯 명은 방랑자호를 함께 타고 항해를 떠나는 이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들 중 단 두 아이들, 소피와 코디의 항해일지만으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 둘의 항해일지를 통해 다른 네 명의 방랑자호 일행 뿐 아니라, 그들이 만났던 이들과 만나려는 이들의 이야기까지도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인생이 그렇듯 항해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에 말이다.
“봄피 할아버지가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어. ‘어디로 가느냐가 아니라 그 곳에 어떻게 가느냐가 중요하다.’고 말이야.”
“그렇다 쳐도 우린 지금 어디로도 가고 있지 않잖아. 안 그래?”
내가 말했다.
“아냐. 우린 가고 있어! 이 섬에 왔잖아. 바다가재도 잡았고 조개도 캐러 갔었지. 그런 것도 이번 여행의 일부라고! 우린 방랑자잖아!”
- <방랑자호> p98 중에서 -
모 삼촌은 스케치북을 가지고 나와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돌고래들을 재빨리, 그리고 능숙하게 그렸다.
“돌고래를 보고 있으면 호기심 가득하고 힘이 넘쳐흐르는 어린아이가 되는 것 같아. 자라서 꼭 뭔가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보다는 과연 뭐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나 꿈을 떠올리게 돼.”
모 삼촌은 꿈을 꾸듯 읊조렸다.
- <방랑자호> p174 중에서-
감정이 풍부하고 적극적인 소피, 그런 소피가 들려주는 항해일지는 정말 재미있었다. 종종 소피의 마음 속에 남모른 아픔이 있다는 것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소피에게 그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소피처럼 밝고 명랑한 아이에게는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소피에게 그 누구보다 큰 아픔을 갖고 있었고,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단지 스스로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 어린 소피가 혼자 이겨내기에는 너무나 큰 아픔이었기에.
무엇보다 소피가 걱정이 되었다. 혹시나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지내는 아이가 아닐까, 상상 속에서만 사는 아이가 아닐까 싶어서 말이다. 그래서 실제로 현실과 부딪혔을 때 견뎌내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면 어떡하나 싶었다. 그래서 소피가 봄피 할아버지를 만날 때 너무나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소피는 강한 아이였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아픔을 이겨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소피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다행히 좋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만약 소피가 혼자였더라면, 과연 이렇게 이겨내고 밝게 웃을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은 아마 끝까지 물음표로 남게 될 듯하다. 그리고 그와 함께 떠오르는 많은 궁금증들. 우리 주변에 있을 또 다른 소피들은 과연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들은 이 책 속의 소피처럼 좋은 사람들을 만났을까. 그래서 자신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치유했을까.
도크 삼촌은 위성항법장치, 무선 통신 수신기, 레이더가 모두 못 쓰게 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어디쯤에 있는지도 모르며, 다른 사람들도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 우리에게 정말로 절망적인 상황이 닥치더라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다.
우리는 여전히 돛이 없는 상태로 항해하며, 바람과 바다가 잔잔해지기만을 기도할 뿐이다. 그러면서 깨어 있는 모든 순간과 힘을 엉망진창이 된 배를 치우면서 보낸다. 우리는 살아있음에 대해, 그리고 살아 있는 것과 살아 있지 않은 것 사이를 잇는 밧줄이 얼마나 끊어지기 쉬운가에 대해 생각하며 평소보다 훨씬 더 조용히 지낸다.
- <방랑자호> p244 중에서 -
방랑자호라는 배를 타고 큰 바다를 건너는 이들을 보며 인생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바다가 우리네 인생과 많이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때론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지만 또 때로는 모든 것을 앗아갈 정도로 거칠고 잔인한 바다 그리고 인생. 때론 모든 첨단 장비를 통해 예측할 수 있는 순탄한 길을 내주지만, 때론 모든 것을 무용지물로 만든 채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무력한 길을 가게 하는 바다와 인생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때론 바다를 보며 인생을 이해하기도 하고, 바다와 맞서며 인생을 이겨내려 하기도 하다보다.
소피 역시도 그래보였다. 누가 봐도 쉽지 않아 보이는 항해에 뛰어들며 자신이 갖고 있는 힘겨움과 직접 마주하고 싶어 하는 듯 했다. 나중에야 소피의 사연을 알게 되면서 방랑호에 타기 위해 소피가 얼마나 용기를 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 아니었다. 바다를 좋아했지만, 바다는 소피로부터 너무나 많은 것들을 앗아갔다. 그런데도 소피는 바다를 피하기보다는 다시 바다와 마주하길 바랐다.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 바다와 맞서며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가족을 되찾았다.
“있잖아, 사람은 누구나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나봐.”
코디가 내 옆에 와 앉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걸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기도 하고.”
코디는 내 구두끈을 끝매듭으로 묶어 주면서 덧붙였다.
“코디, 넌 쓸모 있는 사람이야.”
“시에라-오스카, 너도 마찬가지야.”
- <방랑자호> p247 중에서
그리고 꼬마가 어딜 가나 사람들은 묻는다. 아름다운 곳으로 떠나 버린 그 어른들을 기억하냐고. 하지만 꼬마는 그 아픈 일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차니까. 꼬마는 바로 여기에, 지금 이 순간에 있고 싶어 한다. 바로 지금 이 순간과 앞에 놓인 것을 보고 싶어 한다.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고 싶은 게 아니라, 바로 저기 수평선 너머 앞에 있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꼬마가 원하는 게 뭐든, 꼬마 안에 있는 뭔가가 꼬마를 앞으로 밀면 또 다른 뭔가가 또는 누군가가 꼬마를 뒤로 잡아당긴다.
- <방랑자호> p252 중에서 -
“부모라는 게 참 묘하단 말이야. 모든 일에 책임감을 느끼고 자식을 너무 보호하려고만 들지. 걱정만 태산 같아서 때로는 똑바로 생각도 못 해. 하지만 그러다가 수많은 일들을 자신이 다 통제할 수 없으며 그저 모든 일이 잘 되기를 바라기만 해야 한다는 걸 깨닫기도 하지.”
스튜 삼촌은 주방에서 목록을 붙이고 있는 브라이언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가끔은 그냥 내버려 두고 아이가 혼자 힘으로 잘해 내기를 기도해야 한다는 것도 깨닫지.”
- <방랑자호> p255 중에서 -
나는 이제 꿈나라나 현실의 나라, 그렇다고 고집쟁이 나라에 있지도 않다. 나는 바로 여기 이 곳, 지금 이 순간에 있다. 눈을 감으면 아직도 바다 냄새가 나지만 나는 맑고 시원한 물 속에 들어갔다가 완전히 깨끗해지고 새로워져서 나온 기분이 든다.
- <방랑자호> p329 중에서 -
사람은 목숨을 잃을 정도로 위험한 일을 겪고 나면, 지금이 얼마나 소중한지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더더욱 깊이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어떤 것도 내가 살아있지 않으면 느낄 수 없으니 말이다. 살아있기에 행복뿐 아니라, 아픔도 힘겨움도 고통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니까. 소피는 잃어본 적이 있기에 가지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었고, 잃을 뻔한 적이 있기에 갖고 있는 것의 중요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인생의 풍랑을 너무나 일찍 만났기에 또래보다 훨씬 더 빨리 인생을 알아버린 소피였다.
소피는 방랑자호의 다른 일행들에게 진정한 가족이 되고 싶었다. 가족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온정과 사랑을 느끼며 말이다. 그런 간절함 덕분이었을까. 바다는 소피의 마음을 치유해주었고, 소피가 진정한 가족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리고 소피를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그리고 누구든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겪게 되는 다양한 순간을 담으며 인생을 돌아보게 했다. 누구든 태어나면 아이의 시기를 지나, 어른이 되고, 사회인이 되고, 사랑을 하게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아이가 크면 결혼을 시키고, 손자를 만나고 되고, 할아버지든 할머니든 나이든 사람이 되기 마련이다. 태어난 이상 겪게 될 인생의 순간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그 순간들을 어떻게 보낼 건지가 아닐련지.
- 연필과 지우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