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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ㅣ 올 에이지 클래식
케네스 그레이엄 지음, 고수미 옮김 / 보물창고 / 2012년 2월
평점 :
책과의 첫 만남도 중요한 것 같다. 어떤 책은 읽으려 할 때마다 자꾸만 책을 내려놓아야만 상황이 일어날 때가 있다. 그러면 맥이 끊겨서 읽을 때마다 다시 읽게 될 때마다 첫 장부터 다시 읽게 되는데, 그 책만 들었다 하면 또 자꾸만 책을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이 일어나게 되다보니 결국 어느 순간 그 책을 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근데 안타깝게도 이 책이 나에게 딱 이런 책이었다. 읽고 싶은데 도무지 어느 장이 넘어가면 책장을 넘길 수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같은 곳만 계속 다시 읽게 되고, 책에 대한 흥미가 뚝 떨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이 책을 처음 본 지 거의 일 년이 지났을 즈음, 나는 안 되겠다 싶어서 가장 한가한 날 모든 것을 정리하고 이 책을 끝까지 읽기로 마음을 먹었다. 근데 첫 부분은 너무나 많이 읽어서 어느 정도 내용을 알고 있다 보니 인내심이 조금 필요했다. 힘겨운 고비를 지나고 마지막 장을 넘길 즈음 나는 남모를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끝까지 읽었다는 시원함과 함께 말이다.
다 읽고 나서 나는 왜 이 책을 끝까지 읽기 어려웠을까 궁금해졌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 책의 주인공들인 두더지나 물쥐, 두꺼비, 오소리 모두 그동안 읽었던 동화책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동물들이었다. 게다가 꼭 동화책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호감이 가는 동물들도 아니었다. 두더지, 물쥐, 두꺼비, 오소리 실제 보게 된다 해도 왠지 기분이 좋아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다지 예쁘지도 않고, 귀엽지도 않은 동물들이 주인공이다 보니 책에 대한 흥미도 떨어졌던 것이 아닐까도 싶었다.
근데 왜 작가는 이렇게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인기 없는 동물들을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정했을지 궁금했다. 하다못해 동물원에가도 쉽게 볼 수 없는 동물들인데 말이다. 우리가 평소에 쉽게 볼 수 없는 동물들이니까, 그런 동물들에 대해 알려주기 위해 그랬던 걸까. 나름대로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었을지 생각해보았지만 알 수 없었다. 작가의 의도는 책의 맨 뒤에 있는 옮긴이의 말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작가는 날 때부터 시력이 좋지 않았던 자신의 아이를 위해 땅속에 사는 두더지를 이야기의 첫 주인공으로 삼았던 것이다. 작가의 의도를 알고 나서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보니, 두더지가 이 책 속의 진짜 주인공이었고, 가장 착한 동물이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두더지가 집을 떠나 만나게 되는 물쥐와 오소리, 두꺼비를 통해 자신의 아이에게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처음 이 책은 나에게는 생소한 동물들의 낯선 이야기였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를 알고 나니, 동물들에서 우리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보게 되었고, 그들이 생활을 보며 우리들의 삶을 비춰보게 되었다. 그리고 부모님의 품을 떠나 홀로 세상에 나가게 되었을 때 무서워하지 말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바르게 살아가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느끼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이 책은 다 읽을 뒤에도 자꾸만 생각을 곱씹어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이 책이 영국에서 최고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책이고 작가는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또 색다른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
- 연필과 지우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