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미안해
채복기 지음 / 문이당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이야기의 시작은 주변의 여느 가정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지만, 이야기의 끝은 쉽게 벌어질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또는 우리 가정에서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을 담고 있었다. 지극히 평범했던 가정이 위기와 고비를 겪으며 순식간에 파탄이 나고 가족이 흩어져버리는 것. 이것은 단순히 남의 일이라고 치부해버릴 수는 없었다. 지금은 안정적이고 행복해 보이는 가정이라도 갑자기 닥쳐오는 어려움과 계속되는 어려움 앞에서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다.

 

이 책은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던 현서를 통해, 한 가정의 가장이 위기 앞에서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무너져 내리는 것은 정말 순식간이었다. 그 시작이 어려웠을 뿐, 한번 무너져 내린 것을 되돌리기란 정말 어려웠다. 그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 시작된 무너짐은 한 가정이 와르르 무너져 내림으로써 끝나게 되었다. 몇 번이고 다시 되돌릴 수 있는 기회를 안타깝게 붙잡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퇴직과 장기간의 재취업 실패, 크게 벌인 사업의 실패는 곧 가정에 현실적인 문제를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당연하게 일어난 부부싸움. 누구보다 화를 참지 못한 것은 아내인 민지였고, 남편인 현서 역시 화를 참지 못하고 집을 나가버렸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 다음부터였다. 한번 집을 나간 현서는 아예 소식을 끊고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죽기 직전에야 집에 돌아와 아내 앞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현서가 겪게 되는 여러 일들과 여러 가지 심적 고통들을 보며 가장의 어깨를 짓누르는 힘겨움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와 달리 나는 아버지인 현서보다 어머니인 민지가 더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내가 여자이고 어머니이기에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집을 나간 후 집에다 아무 연락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지도 않는 현서를 보며 너무 무책임하게만 느껴졌다. 그의 마음을 아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싶었다. 집을 나간 후 1년 가까이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는다는 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역시 힘들었겠지만, 혼자 두 아이를 키우기는 민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그저 자기 몸 하나만 건사하면 되었지만, 민지는 자신 뿐 아니라 두 아이들까지도 돌봐야했기 때문이다. 여자 혼자 아이 둘을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알기에 더 그랬다.

 

난 책을 읽는 내내 민지가 너무 불쌍하고 안타까웠다. 아무리 부부싸움을 했기로서니 집을 나가고, 집을 나가 소식을 끊고, 1년 가까이 집에 돌아오지도 않는 남편이라니. 너무 무책임하고 자기 생각만 하는 못된 남편으로만 여겨졌다. 자기 괴롭다고 아이고, 아내고, 가정이고 모두 버리고 혼자 떠나버린 남편을 어떻게 믿고 의지할 수 있을까. 그것도 아무런 말도 없이 그렇게 훌쩍 떠나버린 남편을 말이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은 것 중에 하나가 기약 없는 기다림이기에 그의 행동에 대한 원망은 더했다. 게다가 민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와중에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리기도 하고 말이다. 그 여자가 거절을 해서 그렇지 만약 승낙을 했다면 그는 민지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이혼서류를 보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 하지만 현서와 민지의 기구한 만남의 끝을 보면서, 이 둘이 어긋나게 되었던 시작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그때 민지가 현서를 너무 몰아붙이지 않았더라면, 현서의 자존심을 너무 뭉개버리지 않았더라면 상황은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현서의 힘겨움을 좀더 따뜻하게 보듬어주었더라면 현서도 집을 나가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얻었을지도 모를 텐데 싶어서 말이다.

 

나에게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황이고,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상황을 떠올리며 난 민지처럼 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해본다. 우리가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이란 세상에 없으니까 말이다. 현서와 민지도 당시에는 못 견딜 정도로 큰 힘겨움이었겠지만, 지나 보니 둘이 함께 했더라면 견디지 못할 정도의 어려움은 아니었듯이.

 

 

 

- 연필과 지우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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