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엄마 - 개정판
최유경 지음 / 열매출판사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며 이 책의 내용이 가벼울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이렇게 많이 울게 될 줄은 몰랐다. 바보엄마가 진짜 바보를 말하고 있는 줄도 몰랐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엄마가 바보인 줄도 미처 몰랐다. 그냥 엄마는 모두 엄마인 줄로만 알았다. 헌데 이 책을 읽으며 난 우리 엄마도 바보엄마임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자식이란 이름으로 자식이란 것을 무기로 내 부모에게는 무한한 사랑과 절대적인 희생만을 요구하고, 그렇게 받은 사랑과 희생은 내 부모가 아닌 내 자식에게만 돌려주는 이들. 그들이 곧 누군가의 자식이자, 누군가의 부모였다. 하지만 부모와 자식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삶의 연결 고리 속에서, 사랑과 희생은 위가 아닌 아래로 아래로만 흐르게 되어 있었다. 나 역시 누군가의 딸이었고, 누군가의 어머니였다. 그리고 나의 사랑과 희생도 위가 아닌 아래로만 흐르고 있었다.

 

“엄마는 나랑 절반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겠죠? 나에게 절반의 유전자를 물려준 사람이 엄마일 테니까. 그런데도 난 엄마를 절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절반이 아니라 100만 분의 1조차도, 엄마도 그럴 거예요. 날 절대 이해할 수 없겠죠.”

알 수 없었다. 절반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그토록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우리 엄만 절대 날 이해 못해. 그렇게 불평하면 현주는 웃어 졎혔다. 우리 엄마도 마찬가지야. 세상의 모든 딸들이 그렇게 생각할걸? 현주는 똑같은 대답만 했다. 하지만 우리 엄만 달라.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곤 했다. 난 절대 우리 엄마 같은 엄마는 안 될 거야. 그렇게 속으로 다짐하곤 했다. 난 절대 우리 딸에게 그런 소리는 안 들을 거야.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도 다른 엄마들과 똑같았다. 그녀가, 나의 엄마가 그랬듯이...

- <바보엄마> p70 중에서 -

“별도 새로 생겨나?”

“그럼 새로 생겨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고 그래. 보통 새로 생겨나는 별들은 쌍성인 경우가 많아. 모성, 그러니까 엄마별을 갉아먹으면서 태어나는 거지. 엄마별의 먼지, 바위, 에너지들을 전부 끌어당겨서 자기가 빛을 발하게 되는 거야.”

“그럼 엄마별은 어떻게 되는데?”

“어떻게 되긴. 에너지를 다 잃고 죽어버리는 거지. 차갑게 식어 가면서. 더 이상 빛날 수 없으니 죽은 거라고 볼 수 있겠지. 결국 저 거대한 별조차도 그렇게 죽어 간다는 게 참 허무하지 않아? 그것도 자식한테 먹혀서.”

“그래도 엄마별은 행복할 거야. 비록 자신은 죽어 가지만 바로 옆에서 밝게 빛날 자식이 있어서 행복할 거야.”

엄마의 대답에는 일말의 의심도 없었다. 당연하다는 듯, 무조건적인 믿음에 닻별이가 한풀 껶였다.

- <바보엄마> p119 중에서 -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난 말썽만 피우는 나쁜 딸인데, 엄마는 왜 그렇게 날 사랑해?”

어디선가 민 원장의 말이 울렸다.

“몰라. 이유 같은 거 없어. 누가 그러더라. 이유가 있는 사랑은 이유가 사라지면 없어지지만 이유가 없는 사랑은 사라질 수가 없다고. 나도 그래. 널 왜 사랑하는지 나도 모르겠어. 이유가 없어. 처음부터, 네가 생긴 그 순간부터 그냥 널 사랑했으니까. 그냥 널 사랑한다는 것만 알아, 바보 같지.”

그게 엄마였다. 바보와 동의어.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외할머니가 했던 ‘네 자식을 낳아 보면 알 거다’라는 말도 이젠 ‘알 수’ 있었다.

“그거 알아? 나도 죽고 싶은 적 참 많았어. 너무 힘들고, 서글프고, 억울해서 죽고 싶을 때가 참 많았어.”

의외의 고백에 닻별이가 놀라서 날 쳐다보았다.

“그런데 날 잡은 게 뭔지 알아? 너야. 내가 세상에 머무르는 이유, 그게 바로 너야.”

- <바보엄마> p160 중에서 -

엄마 선영과 딸 영주를 보면서, 난 몇 달 전에 있던 일이 생각이 났다. 신랑의 장기출장을 앞두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처음으로 가족 여행을 계획했다. 헌데 여행을 가기 바로 전 주 주말 아이들이 아파서 집에 부모님이 오셨고, 그제야 어머니의 무릎 수술에 관해 알게 되었다. 근데 우연찮게도 수술일이 우리 가족 여행 날이었다. 난감해 하며 말씀드렸더니, 부모님은 걱정할까봐 수술 다 끝나면 말씀해주시려고 했는데 한동안 아이들 아파도 수술 때문에 못 봐줄 것 같아서 말한 거라셨다. 그러시면서 큰 병도 아니고 안전한 수술이라시면서 올 생각 말고 여행 다녀오라고 하셨다. 그런 줄 알았음 수술 얘기 하지도 않는 건데 라며 오히려 미안해하시면서 말이다.

 

우리가 계획한 3일 간의 여행 일정과 어머니의 3일 간의 수술 입원 일정은 약속이나 한 듯 똑같았다. 몇일을 고민한 끝에 우리는 여행 일정을 조금 조정했을 뿐 여행을 가리고 결정했다. 수술하는 날은 오빠네 식구가 간다고 하여 우리 식구는 어머니가 퇴원하시는 날 가는 걸로 말이다. 하지만 여행 마지막 날 우리는 서둘러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야 했다. 아이를 위해 계획했던 여행이었는데, 아직 어린 아이로서는 우리가 계획한 여행이 너무나 힘겨웠는지 열이 나더니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렇게 무리해서 갔던 여행 뒤 우리 아이는 5일 동안 열에 시달렸고, 나는 아이 병간호를 하느라 수술하신 어머니도 찾아뵙지 못했다.

 

지금이라면 당연히 여행을 가지 않고 어머니 수술하시는 어머니 곁을 지켰을 것이다. 하지만 몰랐다. 가족 여행과 어머니 병간호를 놓고 내가 저울질 할 때 부모님은 자신보다 자식인 나를 더 생각하셨다는 것을. 크건 작건, 위험하건 안전하건 수술은 누구에게나 무섭고 두려운 것이라는 걸 나는 왜 몰랐을까, 병원이라는 낯선 곳에서 누구나 혼자 있기보단 누군가 곁에 있어주기를 바란다는 걸 나는 왜 몰랐을까 싶다. 자신의 힘겨움보다 자신의 두려움보다 자식의 즐거움이 더 걱정하셨다는 걸 당시에 나는 미처 깨닫기 못했었다. 그저 내 아이들에게 여행으로 줄 즐거움을 더 생각했을 뿐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 부모님은 우리 아이들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 내 전화를 받으시고는 한걸음에 달려 와 주셨었다. 어머니가 무릎 수술을 하신지 얼마 되지 않으셨을 때인데도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때 일들이 떠올리며 부모님에게 참 죄송했다. 그리고 나도 이제야 내가 부모가 되었다는 걸 비로소 실감하게 되었다. 또 우리 부모님도 날 이렇게, 이런 마음으로 키우셨다는 걸 온 마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자식으로서 바라보던 부모님과 같은 부모로서 바라보는 부모님의 모습은 상당히 달랐다. 부모로서 바라보는 부모님은 내가 부모님에게 어떤 존재인지 더 깊이 느끼게 해주었다.

 

“다른 뜻으로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어차피 벌어진 일을 두고 가정을 하는 것만큼 우스운 일은 없으니까요. 그 일이 나쁜 일이든 좋은 일이든,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이미 결론이 났다면 다른 가정을 하는 건 불필요하죠.”

- <바보엄마> p169 중에서 -

항상 웃도록 노력해, 반찬투정하지 마, 인사 잘 하고, 밥도 잘 먹고, 건강이 제일 중요해..... 하지 못한 말들이 눈물로 떨어져 내렸다. 언제나 행복해야 해, 엄마를 잊어버릴 정도로 행복해야 해. 난 천천히 주저앉았다.

부끄러움도 모르고 그렇게 주저앉아 있던 나를 일으켜 세운 건 엄마였다. 언제나 그랬다. 끝까지 내 곁에 남아 있어 주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젠 마지막까지 내 곁에 남아 있으려 할 엄마를 보내야 할 때였다.

- <바보엄마> p196 중에서 -

자식들은 항상 이런 착각을 하는 것 같다. 부모님은 언제까지나 같은 자리에서 날 바라봐 주실 거라고 말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연결고리에서 사랑과 희생이 항상 아래로 흐르듯, 부모와 자식 간의 연결고리에서 죽음은 항상 위로 흐른다는 것을 망각한 채. 그리곤 자식들은 항상 깨닫는다. 부모님이 더 이상 날 바라봐 주실 수 없을 때야 부모님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사랑과 희생을 받았는지를 말이다. 참 다행이었다. 내가 너무 늦게 결혼하지도, 너무 늦게 부모가 되지 않아서, 지금이라도 나의 착각과 망각을 깨트릴 수 있어서 말이다.

 

평범한 가족을 꿈꿨다. 일하느라 힘든 아버지의 어깨를 주무르고, 힘든 살림살이에 지친 엄마 대신 설거지를 할 수 있길 바랐다. 평범하지만 착한 남편과 아이를 꿈꿨다. 다른 이들에게는 지긋지긋하기만 한 ‘평범한 가족’이라는 단어를 내게도 쓸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엄마와 나도, 나와 닻별이도 그런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누구나 가진 것처럼 보이는 그 평범함이 우리에겐 멀게만 느껴졌다.

- <바보엄마> p213 중에서 -

하루하루 너무나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하루하루 분주하기만 한 일상에 지치는 우리들. 하지만 그 지긋지긋한 평범함이 깨지기 전까지 우리는 그것이 평범함 속에 감춰진 소중한 행복임을 모른 채 특별한 행운을 찾아 헤매곤 한다. 세상에는 우리의 평범함이 특별한 행복인 이들도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한 채 말이다.

 

 

 

- 연필과 지우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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