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개의 별
김광호 지음 / 책밭(늘품플러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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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이라든지, 추천서라든지, 작가의 말이라든지 하는 부분 없이 바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자신은 전직 국정원의 직원이었다고 밝히며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내겠다고 하며 말이다. 난 그 말을 믿었다. 나도 가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사람도 나와 같은 사람이었구나 하며 절대 공감을 하면서. 평범하지 않은 직업을 가졌기에 하고 싶은 이야기도 평범하지는 않겠구나 여기며 말이다. 그렇게 난 이야기 속으로 그대로 빨려 들어가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이자 이 책의 주인공을 따라서.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무엇보다 알기는 알기만 자세히는 모르는 국정원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더 그랬다. 국정원의 직원으로 사는 삶은 지독히도 외로워보였다. 주변 사람들과 허심탄회하게 터놓고 지낼 수 없다 보니 속 깊은 이야기도 할 수 없었고, 어느 정도 안 후에도 더 이상 가까워질 수가 없었다. 또 그렇다고 같은 국정원 직원끼리도 서로의 일에 대해 공유할 수 없다보니, 주변 사람들보다는 나았지만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이 책의 주인공, 윤정태는 술도 담배도 즐기지 않다보니 사람들과 가까워지기가 더더욱 힘들었다.

 

그러다 윤정태는 카페 안단테에 가게 되면서 커피에 취미를 갖게 되었고, 그 덕분에 여자를 만나 결혼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커피 마시는 것을 즐기게 된 그. 하지만 그 커피로 인해 정치적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카페 안단테를 계속 다니는 것 때문에 아내와 이혼을 하게 되었다. 커피로 인해 삶의 위안을 얻었지만, 또 커피로 인해 안정되었던 삶이 무너지게 되었다. 윤정태에게 커피란 어떤 것일까.

 

변하지 않는 걸 내 기준에서 굳이 꼽자면 커피와, 그 커피를 좋아하는 나 자신이다. 한 가지에 집착해서 광적인 상태를 거치면 느긋하게 그 대상을 즐기게 되는 것일까. 나는 커피를 마시며 틈틈이 글을 쓴다. 글 쓰는 일이 적성에 맞을 수도 있고, 그냥 인생의 낭비가 될 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 상관없다. 다만 나는 쓸 뿐이다. 그게 전부다. 나는 혼자다.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건지, 내가 세상으로부터 도피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나도 뭐라고 말 못하겠다. 단지 혼자인 지금에 익숙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 <52개의 별> p320 중에서 -

마지막에 그는 말한다. 어쩌면 커피로 인해 그의 안정되었던 인생이 불안정한 인생으로 바뀌게 되었는데도, 커피가 좋다고 말이다. 나 역시 커피를 좋아해, 매일 하루에 한 잔씩 커피를 마신다. 하지만 내 인생이 커피로 인해 흔들리게 된다면 난 커피를 끊을 수 있을까. 간간히 들려주는 커피에 대한 이야기들 중 내가 한 잔의 커피를 마시기 위해 지구촌 어딘가에선 열악한 환경에서 생을 위해 힘겹게 커피 열매를 딴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들의 힘겨움은 안타깝지만, 그것 때문에 내가 커피를 끊을 수 있을까. 나 역시 그처럼 그럼에도 커피가 좋다라고 말 할 듯 싶다.

 

너무나 생생한 이야기에 나는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그의 이야기에 푹 빠져 있었다. 과거 북한과 교류가 있을 때 난 그저 텔레비전으로 아무렇지 않게 소식을 접했었는데, 그 뒤에는 이런 숨겨진 이야기들이 있었다는 것에 놀라며 말이다. 보여지는 것 그 이면에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정치적, 사회적, 개인적 개입과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그저 놀랍기도 했다.

 

국정원이란 곳이 어떤 곳인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순간, 난 다시 현실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었다. 이 책속의 주인공은 윤정태이고, 이 책의 저자는 김광호라는 것을 새삼 다시 깨닫게 된 것이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시작한 책의 첫장으로 인해 난 소설을 현실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현실감 넘치는 생생한 표현과 탄탄한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이야기가 씌여져 있었기에 난 더 쉽게 이야기에 빠져 버렸으리라. 이 책의 진짜 마지막 장은 작가의 말로 끝을 내며 저자 역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 소설을 쓰면서 온전히 나 자신의 실체와 만나는 기분이었다.’고 말이다. 작가 역시 푹 빠져서 써내려간 책을 독자가 어찌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 연필과 지우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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