굼벵이 주부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지음, 김해생 옮김 / 샘터사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궁금한 마음에 집어 든 책 <굼벵이 주부>. 책을 읽는다기보다 옆집 아줌마와 재미있는 수다를 떨고 있는 듯 했다. 게다가 굼벵이 주부가 저 멀리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아줌마라고는 안 믿길 정도로 우리 한국의 아줌마들의 정서와 아주 닮아있었다. 어느 나라나 아줌마들은 비슷한 건가? 국경을 초월한 아줌마의 수다. 굼벵이 주부의 수다를 들으며 지루하고 힘든 일상을 유쾌하고 재미있는 한 편의 드라마로 여겨 보게 되었다.

 

여자의 인생은 결혼과 출산을 기점으로 생활이 참 많이 달라진다. 결혼으로 인해 달게 되는 아내라는 명찰과 출산으로 인해 달게 되는 엄마라는 명찰. 그 명찰 뒤에 따라오는 부수적인 일들이 어찌나 많은지. 남자들이 과장으로, 부장으로 승진할 때 여자들도 승진 아닌 승진을 하는 것인가. 아내로 또 엄마로... 많은 이들을 돌봐야 하는 것은 비슷한데 어째 대우는 다른 것인지. 회사로 치면 과도한 업무량에 비해 현저히 낮은 대우임이 분명하다. 일반 회사 같으면 당장에 사표를 써도 모자랄 자리이것만.

 

결혼해도 아가씨처럼 예쁘게 하고 다녀야지 했다. 헌데 출산 후.. 매일 아침 화장은 커녕 세수라도 하면 다행이었고, 머리 감은 것은 고사하고 머리라도 빗으면 다행이었다. 절대 아줌마는 안 되야지 했었는데, 요즘 내 모습은 영락없는 아줌마다. 살이 쪄서 맞는 옷이 별로 없다보니, 편안하게 퍼지는 월남치마에 펑퍼짐한 티셔츠를 입고 머리를 질끈 올려 매고 다닌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로.. 가끔씩 거울을 볼 때마다 느끼는 좌절감이 날 더 힘들게 하는 것 같다. 세련된 미시족이 되고자 했지만 뚱뚱한 아줌마가 되어있으니 말이다.

 

 

지금 내가 느끼는 불만의 원인이 무엇일까? 번쩍이는 가구와 좋은 물건들로 집 안을 꾸미지 못해서일까? 아니다. 지금 우리는 사실 젊었을 때는 있지도 않았고, 그래서 갖고 싶어 할 수도 없었던 물건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원인은 나 자신에게 있다. 우리는 자신을 기대에 맞게 발전시키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상상하던 자신의 미래상은 상냥하고 명랑하며 침착한 어른의 모습이었다. 매사에 공정하고 너그러우며 사려 깊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 믿었다. 특히 아이가 생기면 정말 자상한 엄마가 되어 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인생의 동반자에게도 한때는 이상적인 배우자가 되어 주려고 했다. 그리고 서점에 나오는 주요 신간은 모두 읽을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그 시절로 사반세기가 지난 뒤 우리가 반쯤 잠든 남자 옆에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군것질을 하면서, 또는 겉뜨기 두 번 안뜨기 두 번을 하면서 저녁 시간을 보내게 되리라고는 정말이지 꿈에도 상상하지 않았다. 단지 젖은 수건을 아무 데나 놓아두었다는 이유로 아이들한테 소리를 지르는 행위는 당시에는 말도 안 되는 일로 치부했었다. 그리고 여가 시간에 전시회에 가기보다 카페에 앉아 수다 떠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상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시절에 우리가 꿈꾸던 미래의 남편, 아이, 친구들의 모습도 지금 그들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그들이 우리가 꿈꾸던 모습대로였다면 우리 자신도 분명 젊은 시절에 계획했던 대로 되었을 텐데...

- <굼벵이 주부> p37 중에서 -

<굼벵이 주부>를 읽으면서 느껴지는 동질감이 내가 혼자가 아님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나와 같은 생각을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이 세상에 많구나 싶었다. 저 멀리 오스트리아에도 있는 걸 보면.. 굼벵이 주부의 말처럼 지금 내가 느끼는 불만의 원인은 바로 나 자신에게 있었다. 지금의 나는 내가 생각했던 서른 두 살의 내 모습이 아니기에. 서른 셋의 나는 내가 꿈꾸는 모습 그대로이길 바라본다. 아직 몇 달이나 남아있으니 기대해도 되겠지? 하루하루, 매 시간시간 열심히 살아보련다.

 

 

 

- 연필과 지우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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