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보이!
마리 오드 뮈라이유 지음, 도화진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뭔가 재미난 이야기가 담겨 있을 줄 알았다. <오, 보이>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생기발랄함에 난 또 내 마음대로 상상을 해버리고 말았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내 상상에서 크게 빗나갔지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야기 속으로 난 금세 빨려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난 어떤 것도 상상할 수 없었다. 그저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기대하기만 할 뿐.

 

세 명의 모를르방 아이들. 어느 날 이 아이들만 덩그러니 세상에 남겨지게 되었다. ‘첫해에는 세 아이와 어른 둘이, 두 번째 해에는 세 아이와 어른 하나가, 그리고 그 날 아침에는 세 아이(열네 살인 시메옹, 여덟 살인 모르간, 다섯 살인 브니즈)뿐이었다.’라는 책의 표현 그대로. 이 아이들이 남달라 보였던 것은 남매지간의 우애가 유난히 돈독하다는 것이었다. 아무도 이들을 갈라놓지 못할 것처럼.

 

이들의 돈독하다 못해 단단한 우애 덕분에 이들은 진짜 가족을 찾게 되었다. 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진짜 가족들을 말이다. 쉽지 않았지만, 이들의 믿음대로 또 이들의 바람대로 모를르방 가족을. 가슴 아팠던 것은 시메옹이 힘든 상황 중에 죽음의 기로에 서서 고통을 견뎌야 했다는 것이다. 아직 어린 아이 것만, 아직 부모의 손길이 간절히 필요한 나이 것만, 오히려 어린 두 동생을 걱정하며 홀로 병마와 싸우는 것이 정말 너무나 안타까웠다.

 

겉으로 보기에 이 아이들은 참 힘들고 슬픈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결코 불행해 보이지만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었고, 이 아이들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아이들의 말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고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은 세상에 일가친척 하나 없는 고아일 뿐이었지만, 서로 이 아이들을 차지하기 위해 실랑이를 벌이는 이들을 보며, 그래도 ‘너희는 참 행복하구나’ 싶었다.

 

우선, 이 소설은 가정 해체가 발생하는 즉시 작동되는 사회 안전 시스템을 보여준다. 주인공 시메옹이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 안정된 가정을 가지게 되는 것은 자신의 영웅적인 노력이나 몇몇 사람이 베푸는 개인적인 온정 덕분이 아니라 사회복지사, 후견담당 판사, 의사, 심리 상담의사 등 사회 시스템 내에서 일정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제 몫을 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소설은 느닷없이 닥치는 불행이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불행에 빠진 사람을 구제해야 하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의 몫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우리가 이 작품을 통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는 가족간의 배타적인 애정이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가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 힘을 모으는 통합적인 인간애를 맛보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 <Oh, Boy> p274 중에서 -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까지 이야기에 푹 빠져서 마냥 재미있기만 했다. 그저 누가 이 아이들을 키우게 될까, 이 아이들은 과연 어떤 삶을 살게 될까 궁금해 하며 울고 웃으며 책을 읽기만 했다. 헌데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역자 후기를 읽으면서야 난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역자의 말처럼 이 아이들이 행복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몇몇 사람이 베푸는 개인적인 온정 덕분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 내에서 일정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제 몫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족애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도 다른 어느 나라 못지않다. 하지만 가정 해체가 발생했을 때 작동되는 사회 안전 시스템은 어떤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 일가친척 없이 버려진 아이들, 이 아이들에게 새로운 가족을 찾게 해주기 위한 노력을 우리는 얼마나 하고 있을까. 외국으로 입약아를 수출하는 해외입약 대국이라는 오명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아직 갈 길이 멀어만 보인다.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 담긴 깊이 있는 여러 주제들과 마주하게 되면서, 난 다시 이 책의 첫장을 넘겨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읽을 땐 재미있지만, 읽은 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 이런 책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 연필과 지우개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