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가 되렴 책읽는 가족 47
이금이 지음, 원유미 그림 / 푸른책들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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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작가님의 첫 장편동화라는 소개에, 책을 읽기 전부터 조금 기대가 되었다. 어떤 책일까 싶어서. 헌데 이상하게도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이금이 작가님의 작품 중 많이 이슈화가 되고 교과서에서도 수록된 책 <너도 하늘말나리야>를 떠올리게 되었다. 시골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나 서울에서 시골로 전학 온 아이가 등장하는 것,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던 아이가 고아가 된 것, 자전거 타는 남자 아이가 등장하는 것, 큰 나무에 애착을 느끼는 것 등 이 책은 소소한 많은 부분에서 알게 모르게 책 <너도 하늘말나리야>와 닮아있었다. 어쩌면 작가님의 첫 작품인 만큼, 이 작품이 다른 작품들의 뿌리가 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책 <다리가 되렴>은 그렇게 작가님의 글 뿌리가 되어 많은 책들을 꽃 피운 거겠지.

 

시골에서 자라셨다는 이금이 작가님. 확실히 이금이 작가님의 작품은 풋풋함이 묻어나는 시골 정경을 배경으로 한 책들이 많다. 반면 나에게 시골이란 부모님을 통해 듣던 것과 책이나 텔레비전에서 본 게 다다. 진짜 시골다운 시골에 가 본 것도 어렸을 때 딱 한 번 먼 친척집에 갔던 것뿐,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나에게 시골은 먼 나라 이야기 마냥 낯설기만 하다. 그럼에도 시골하면 인심 좋은 시골 분위기나 자연이 푸르른 시골의 정경을 떠올리며 마음이 포근해지는 건 왜인지. 그것이 이금이 작가님의 작품을 읽으면 마음이 포근해지는 또 하나의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근데 한 가지 이상한 건, 이금이 작가님의 작품을 읽을 때면 매번 도입부에서 몰입이 잘 안 된다는 거다. 목에 뭔가가 턱 걸리는 듯 한 느낌. 조금만 더 읽으면 손에서 책이 안 내려질 정도로 술술 읽히지만 말이다. 이번에도 역시 그랬다. 은지가 학교 가던 길에 자전거를 타고 쌩 지나가는 경수와의 만남 뒤에 바로 이어진 이야기에 고개를 갸우뚱 하게 했다. 이야기 흐름상 하교길이라는 걸 알 수는 있었지만, 아무 이야기 없이 갑자기 나타난 은지와 수진이란 아이와의 이야기는 내 머리에 자꾸만 물음표를 찍어주었다. 게다가 수진이란 아이는 이때 이후로 더 이상 나오지 않았기에 더 그랬다. 그러면서 난 뭐지 싶어서 같은 페이지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은 뒤에야 다음 장을 넘길 수 있었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수록 빠져들게 되는 이야기 속에서 난 묘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서울태생인 난 학교 역시 서울에서 다 나왔음에도 말이다. 책 <다리가 되렴>에 나온 희망원 아이들이 동네 아이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걸 보면서, 난 내가 초등학교 때있던 특수반 친구들을 떠올랐다. 특수반은 말 그대로 특수한 친구들만 모아 놓은 반이었다. 외모만 보면 다른 아이들과 특별히 다를 것은 없지만,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공부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그런 친구들만 있는 반이었다. 그런 친구들만 가는 학교도 있었지만, 그 친구들의 부모님은 자신의 자녀가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서 똑같이 학교에 다니길 바랐다. 하지만 학교에선 그런 친구들을 따로 모아서 한 반을 만들었고, 아이들은 그 아이들이 특수반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특수반이 없어지고 그 친구들도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서 반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특수반에 있던 친구들과 함께 놀려고 하지 않았다.

 

그때는 나 역시 그 친구들과 말하는 것은 물론 마주치는 것조차 피했다. 그 친구들과 어울리면 뭔가 이상한 것이 옮기라도 하듯 그렇게 말이다. 그리고 그때는 그게 당연한 거라고 여겼다. 나뿐 아니라 모른 아이들이 그랬기에 더 그랬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 특수반 친구들은 얼마나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까 싶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학교에 다니길 바랐던 그 친구들의 부모님은 마음이 또 얼마나 아프셨을지. 그 친구들은 중학교에도 똑같이 진학했지만, 이미 초등학교 때 특수반에 있었다는 꼬리표 때문에 아이들이 친해지려 하지 않았었다. 그 다음엔 그 친구들에 대한 기억이 없지만, 그 친구들이 동네에 있던 고등학교에 갔다면 똑같이 아이들로부터 외면 받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나와 조금 다른 이들과 어울리는 법을 알기에는 너무 어렸던 걸까. 아니, 난 그 보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나와 다르면 구분해 놓는 것부터 먼저 배웠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만약 그 친구들을 특수반에 있지 않고, 처음부터 다른 친구들과 똑같이 반을 배정했더라면, 아이들은 그 친구들을 특별히 이상하게 여기거나 피하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냥 조금 다른 친구 정도로만 여기며 그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았을까. 아이들은 어른들이 그 친구들을 특수반이라는 곳에 따로 구분해 놓았기 때문에 그 친구들과는 함께 어울리면 안 된다고 여겼을 뿐이다. 책 <다리가 되렴>의 아이들 역시 그랬다. 아이들은 희망원 친구들은 무조건 나쁘니 어울리지 말라는 부모님들을 따라 희망원 친구들을 멀리 했다. 희망원 친구들과 노는 것은 물론 말을 나누지도 않았다.

 

아이들은 그저 어른들을 따라 나와 조금 다른 친구들을 구분하고 배타적으로 대했을 뿐이다.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이, 부모가 먼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은지의 아버지처럼, 기와집 할아버지처럼 나와 조금 이들을 보듬을 줄 아는 열린 마음과 포옹력을 아이들에게 먼저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요즘 아이들은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아파트 평수에 따라 친구를 구분해 사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파트에 있는 같은 놀이터에서 놀면서도 평수가 넓은 단지에 사는 아이들은 평수가 작은 단지에서 사는 아이들과 같이 안 논다고 말이다. 과연 아이들이 평수라는 것이 뭔지 알고 그랬을까.

 

아이들은 어른들의 축소판일 뿐이다. 아이들을 보며 어른들은 자신을 한번 돌아봐야하지 않을까.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내면을 들여다 볼 줄 아는 눈을 가져야 함을 알려주며 말이다. 위기의 순간에 경수를 도와줬던 건 희망원 아이인 윤철이였던 것처럼.

 

 

 

- 연필과 지우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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