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생의 사랑 푸른도서관 42
김현화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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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내내 참 즐겁고 행복했다. 조금은 빠르게 진행되는 이야기에 같은 페이지를 몇 번씩 반복해서 읽어야 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한 장에 담긴 이야기가 알차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했기에 오히려 즐겁기만 했다. 재미있는 책을 만나 좋았지만 바쁜 일상 때문에 읽는 중간중간 몇 번이나 손에서 책을 내려놓아야 했다. 그럼에도 이야기의 맥이 전혀 끊기지 않았던 건, 이야기의 강력한 매력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소설 같은 경우 읽다가 자주 내려놓게 되면 이야기의 흐름을 놓쳐서 아무리 재미있는 내용이라도 싱겁게 느껴지기 십상인데, 이상하게도 이 책만은 그러지 않았다. 나중에 가서는 한 장, 한 장, 넘기는 게 아쉬워서 오히려 야금야금 아껴 읽었기도 했고, 한참을 읽고도 아직 책장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제목만으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가득했던 이 책에서 난 오랜만에 무협지의 향수에 빠져들었다. 한동안 푹 빠져서 무협지만 읽던 20대의 추억 속으로도 함께~

 

저자는 마지막에 ‘인간의 삶이 살아 숨 쉬는 길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조생, 조연이라는 인물이 자신의 불우한 세계를 극복해 가는 과정을 통해 ‘삶을 어떻게 깨우쳐 가는지 그려보고 싶었다’고 말이다. 이 책은 저자의 바람대로 연이라는 인물이 홀로 세상과 만나는 어린 시절부터 홀연히 세상을 등지고 떠나는 성년 시절까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 중간중간 곁들여지는 연의 사행길 이야기는 또 다른 묘미를 더해주고, 갈라졌던 길이 다시 만나듯 이야기의 끝에서는 연의 성장 이야기와 다시 만났다. 책을 읽으면서는 길이라는 걸 떠올릴 수 없이 이야기에 빠져들었지만, 저자의 착한 설명에 이야기와 함께 삶과 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연이 자신의 삶에서 만난 사랑은 모두 어긋나가기만 했다. 어린 시절 간절히 바랐던 부모님의 사랑은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고, 부모님의 처참한 마지막 모습만 악몽처럼 각인되어 그를 괴롭혔다. 그리고 그의 애틋했던 첫사랑은 모질게 그를 떠나버렸고, 그를 비웃듯 그의 가까이에서 그의 진심어린 마음을 짓밟았다. 그렇게 자신의 사랑이 무참히 깨지는 것을 경험한 연은 자신의 마음을 굳게 닫아 버렸다. 그로 인해 자신에게 찾아온 소중한 사랑의 기회도 날려버리고, 자신이 받은 상처만큼 자신을 사랑하는 이에게 고스란히 안겨주고 말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 상처를 준 사람은 그보다 더 큰 상처를 입게 된다고 했던가. 미처 돌아보지 못한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게 되면서 뒤늦게 자신이 다른 이에게 어떤 상처를 입혔는지 그제야 깨닫게 된 연. 연은 역시 자신이 다른 이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보다 더 큰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그는 세상을 등지게 되었다.

 

소중한 것은 언제나 가까이 있거늘, 가까이 있을 때는 미처 알지 못하고 잃은 뒤에야 알게 되는 것인지. 연이 황사 속에서 봤다는 길 밖의 길에 서서야, 자신의 바로 곁에 있던 소중하고 아름다웠던 인연을 보게 되었다.

 

연은 자신의 삶에서 만난 두 여인. 연은 그녀들에게서 그네들의 전부를 받았지만, 그는 정작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지 못했다. 그리고 두 여인을 잃은 뒤에야 그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 기화에게는 자신의 신념을 내어주지 못했고, 자신을 사랑했던 여인, 애기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내어주지 못했다는 것을. 연은 자신의 강한 신념과 확고한 사랑만이 삶의 전부가 아님을 뒤늦게 보게 된 것이지 않을까. 자신의 신념을 조금만 내어주었더라면 자신이 그렇게 사랑했던 기화를 놓치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자신이 마음을 조금만 내어주었더라면 자신을 너무도 사랑했던 애기를 잃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가 떠난 마지막 길은 길고도 험한 고행길이었다.

 

 

 

- 연필과 지우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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