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황옥, 가야를 품다 푸른도서관 38
김정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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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글이나 소개글 없이 시작되는 책이 참 신선했다. 색안경을 끼지 않은 채, 책을 만나 느낌이랄까? 딱 들어맞는 예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의 이름만 알고, 그 사람의 나이나 직업, 사는 곳 등 다른 정보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만나는 소개팅 같은 느낌. 그렇기에 아무런 편견 없이 순수하게 그 사람에게 집중하게 되는 느낌. 적어도 나에게 이 책은 그런 느낌이었다.

 

특히나 가야는 평소 내 관심을 끌던 나라는 아니었다. 가야는 그저 잠시 있다 사라진 나라로만 기억할 뿐이었다. 그리고 허황옥이라는 이름 역시 낯설기만 했다. 아유타의 공주, 라뜨나의 가야 이름인 허황옥도. 아무것도 모른 채 읽어내려 간 후일 수로 황후가 된 라뜨나의 이야기, 그리고 가야라는 나라가 세워진 이야기. 너무나 재미있었다. 이 책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가야의 건국신화를 쓴 책이었다 하지만, 딱딱하기만 한 역사 책도 아니었고, 허무맹랑한 신화 책도 아니었다. 그저 라뜨나를 주인공으로 한 재미있는 소설책 같았다.  

 

 

라뜨나의 머리 위로 밧줄이 흔들렸다. 갑자기 어떤 강렬한 힘이 밧줄을 따라 정수리 쪽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어떤 일이건 당당하게 맞서야 하는 거야. 두려워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단다.’

라뜨나가 뒷걸음질 칠 때면 냉정하게 되뇌던 왕비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 <허황옥, 가야를 품다> 중에서 -

   

라뜨나는 아주 비싼 값을 치르고 여러 분야의 한나라 서책을 사들여 탐독하기도 했다. 서책에는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수많은 정보가 들어 있었다.

‘두려워 마라. 사람이 하는 일에 노력해서 이루지 못할 것은 없단다.’

라뜨나는 때때로 왕비가 하던 말들을 떠올리며 다짐했다.

‘어머니처럼 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리라. 하루빨리 월리족을 물리칠 수 있도록 아유타를 도우리라. 그리고 아유타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 <허황옥, 가야를 품다> 중에서 -

   

 

처음엔 어리고 연약한 도망자 공주였지만, 그녀가 능수능란한 상인으로 그리고 만인을 보듬는 황후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나 역시 조금씩 성장해 가는 느낌이었다. 용감하고 지혜로운 여인으로 성장한 라뜨나. 참 멋진 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옛날 여자의 몸으로 어쩌면 저렇게 대범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린 나이에 어쩌면 그리고 지혜로울 수 있었는지. 부럽기만 했다.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은 그녀 역시 그녀의 부족한 경험과 지식을 책을 통해 얻었단 것이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이렇게 책을 통해 하나둘 배우고 익혀나가다 보면 나도 라뜨나처럼 폭넓은 지식과 풍부한 지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가야에 대해서도, 가야의 초대 국왕 김수로에 대해서도, 가야의 첫 황후 허황옥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자 나는 가야와 수로왕, 수로황후에 대한 것들이 너무 궁금해졌다. 그래서 책을 읽은 후 인터넷을 통해 가야에 대한 정보를 찾다보니, 생각보다 가야에 대한 정보도 많았고 이미 알려진 것도 참 많았다. 무엇보다 1994년엔 ‘김수로왕비 허황옥’이란 책이 이미 나왔었고, 2009년엔 ‘가야여왕 허황옥’이란 총체극이, 2010년엔 ‘김수로’라는 드라마까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김수로와 라뜨나.. 허황옥. 이 둘을 세계적인 커플이라고 칭하고 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었다. 유라시아대륙 북방의 흉노족 출신인 김수로와 유라시아 남방의 인도인 출신인 허황옥의 만남이었으니 말이다. 특별했을 이들의 만남은 아름답기까지 했던 것 같다. 그리고 함께 하는 것이 행복했을 것 같다.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백성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기에.

 

허황옥. 그녀는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어지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은 이런 묘한 매력에 빠져들게 하는 씨앗을 내 가슴에 심어놓은 듯 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책을 펼쳤지만, 책에 담겨진 이야기 외에 더 많은 것을 스스로 찾아보게 만드는 책. 아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특히나 이제 막 우리의 역사를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말이다. 역사책을 통해 배우는 딱딱한 지식 전달식 배움이 아니라, 사람의 숨결이 느껴지는 이야기를 통해 살아있는 역사를 느끼게 만들어 줄 테니까.

 

조금 아쉬운 것은 내가 이 책을 학창시절에 만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것이다. 내가 책상 앞에서 앉아 역사책을 펼치고 가야의 초대 국왕은 김수로, 황후는 허황옥라는 것에 밑줄을 치며, 머리로 이 사실들을 외우고 있을 때, 누군가 이 책을 나에게 보여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난 이 사실들을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머리 속이 아니라, 오랫동안 머물 내 가슴 속에 남길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 연필과 지우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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