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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책을 먹는 치과의사 ㅣ 푸른책들 비평집 4
신형건 지음 / 푸른책들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책보다 작가에 대해 먼저 알고 찾게 된 책이다. 치과의사 출신이라는 작가의 특이한 경력이 나의 관심을 끌었다. 치과의사 출신 작가라는 점도 특이하지만 더 특이한 것은 책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치과의사라는 번듯한 직업을 버리고, 작가이자 출판사 대표로 책과의 삶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대체 얼마나 책을 좋아하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이 작가에 대해서 말하자.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즉각 나왔던 대답은 ‘치과가 잘 안 되었던 거야.’ 치과가 잘 되었으면 왜 굳이 출판사를 열었겠냐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난 동의 할 수만은 없었다. 요즘 같은 때 정말 책에 대한 깊은 뜻이 없고서야 출판사를 운영하는 것도 그리 쉽지 않은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나 역시 사람인지라, 정말 치과 운영이 잘 안 돼서 출판사를 차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아주 저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찾게 된 작가의 책. 책 제목을 보면서 이 책도 외과의사 출신 작가가 썼던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처럼 치과의사로서 아이들과 겪었던 일들이 쓰여져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책을 펼쳤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우선 치과의사로서의 시각은 전혀 그려져 있지 않았다. 그리고 작가가 치과의사라는 것도 출판사 대표라는 것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단지 동화와 동시를 좋아하는 한 사람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 동화와 동시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동화와 동시가 갑자기 마구 읽고 싶어졌다.
책에 대한 작가의 깊은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고나 할까. 그러면서 작가의 특이한 경력 때문에 본의 아니게 가졌던 색안경을 단번에 벗어버릴 수 있었다. 그저 이 책을 통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 것이 반가웠고, 아이들과 함께 책과 친해지는 방법을 알려주고 좋은 책들을 많이 소개해준 것이 고마웠고, 좋은 작가들과의 대화에 참여할 수 있게 해준 것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단지 궁금한 건 ‘왜 굳이 책 제목에 치과의사라는 걸 넣었을까?’하는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었던 것은 동시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이었다. 얼마 전 생각지도 못하게 동시집을 접하면서 했던 내 반응과 어찌나 똑같던지. 무슨 책인지 모르고 동시집을 펼친 아이가 했던 것처럼, 나 역시 내가 가지고 온 책이 동시집인 것을 알고는 ‘뭐야, 동시집이잖아’하고 한 것이 동시집에 대한 첫 마디였기 때문이다. 시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은 아이나 어른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했다.
하지만 책에 대한, 그리고 동화와 동시에 대한 작가의 깊은 열정은 이 책을 보는 이로 하여금 동화와 동시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작가가 이 책에서 언급했던 많은 동화와 동시들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평소 그림을 좋아해서 그림이 많은 동화책을 좋아하는 나였지만, 어떤 책을 읽어야 할 지 몰랐던 나에게는 더 없이 좋은 정보들이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책을 다 읽으면 여기 나온 책 제목을 따로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근데 웬걸. 작가는 친절하게도 책 맨 뒤편에 이 책에서 언급했던 책의 제목을 ㄱ,ㄴ 순으로 주욱 나열해놓은 것이 아닌가. 작가의 섬세함과 친절함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어쩜 이렇게 독자의 마음을 잘 읽고 있는지. 이 작가가 작가이자 출판사 대표이기 이전에 책을 향한 열렬 독자이었음을 분명히 느끼게 하는 순간이었다.
조금은 불순한 눈으로 책을 펼쳤던 처음과 달리 맑고 순수해진 눈으로 책을 덮을 수 있었다. 거친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의 때에 물들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가끔씩 이렇게 세상에서 묻혀온 묵은 때를 벗어줘야 하지 않을까. 서른이 넘긴 나이지만, 나도 다시 나의 순수했던 마음을 찾기 위해서라도 다시 동화책을 펼쳐보고 싶어졌다.
- 연필과 지우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