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가 된 위안부 할머니 (문고판) 네버엔딩스토리 19
이규희 지음 / 네버엔딩스토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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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음 받았을 때 조금 걱정이 되었다. ‘과연 이 책을 아이들에게 읽혀도 될까?’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아이들에게 위안부가 어떤 것인지 설명해주는 것도 난감한데, 위안부에 대한 책이라니. 아이들에겐 다소 자극적이거나 충격적인 책이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어서 선뜻 손이 가지지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머뭇거리다 내 마음을 잡은 건 아주 작은 것이었다. 그것은 살짝 훑어나 볼까 싶어서 책을 들추다 본 첫 이야기 제목이었다. 첫 이야기 제목은 ‘507호가 수상하다’였는데, 공교롭게도 우리 집이 507호였던 것이다. 똑같은 호수로 시작되는 것이 신기해서 책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한 장, 두 장 읽어나가면서 내가 했던 우려가 기우였음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혀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 역사의 어두운 부분이기는 하지만, 결코 잊혀 져서는 안 될 역사의 귀중한 조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자신만의 비밀이 생기는 시기에 그것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닌 부모의 입장에 서게 될 나이에 접어든 나에게 있어, 참 필요한 책이었다. 우리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는 것도 그렇지만, 더 컸던 것은 아이들에게 생겨날 비밀들에 대처하는 방법이었다. 내가 부모가 된다 해도 해주기 힘든 일들을 이 책이 해주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 책에 나오는 은비는 어느 날 부모님에게 말 못할 고민이 생겨버렸다. 어두운 밤 낯선 남자에게 끌려가서 육체적 모욕을 당할 뻔했던 것이다. 다행히 도망은 쳤지만, 그것은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의 은비에게는 잊지 못할 치욕적인 일로 기억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은비는 점점 예민해져갔고, 사람을 거부하게 되어버렸다.

 

비록 은비처럼은 아니지만, 나도 이런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한참 예민한 시기인 중학생 때였다. 발 한발을 옆으로 내딛기 힘들 정도로 꽉 찬 버스를 타고 가던 길이었다. 너무 붐벼서 누군지는 잘 몰랐지만, 누군가가 자꾸 내 몸을 더듬는 것이 느껴졌다. 너무너무 불쾌했지만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도 몰랐고, 누가 그러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최대한 움직여서 그 자리를 벗어났을 뿐이다. 그저 기분 나쁜 티를 확확 내면서.

 

그런 뒤 우연히 내 친구를 통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내 친구는 수업을 마치고 늦은 시간 집으로 가던 골목길에서 은비처럼 낯선 남자가 끌고 가려던 것을 겨우 뿌리치고 집으로 갔다는 것이었다. 나나 내 친구나 그리고 은비나 모두가 다행히 큰 탈 없이 위험한 상황은 모면할 수 있었지만, 그것은 여자로서 불쾌할 뿐 아니라 모욕적인 일이기도 했다.

 

이정도로 끝났으니 다행이긴 하지만, 혹시나 큰 변을 당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누가 되었든 더더욱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에게 말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큰 일 일수록 발 빠른 대처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결코 내 아이는 겪지 않았으면 하지만, 혹시나.. 정말 만에 하나 그런 일을 겪었을 때 이 책은 아이에게 작은 힘이 되어 줄 수 있을 듯하다. 갑자기 내 아이가 달라졌거나 이상해졌을 때 조용히 권해보는 것을 어떨지... 부모에게조차 말 못할 비밀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싶을 때 말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놀랐던 것은 이 책이 실화를 바탕으로 지어졌다는 것이었다. 그 주인공은 황금주 위안부 할머니셨다. 책에 나왔던 것처럼 황금주 할머니는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며 일본 대사관 앞에서 욕을 퍼부으시던 욕쟁이 할머니이기 하셨고, 꽃과 나무를 자식처럼 키우시는 꽃 엄마이기도 하셨고, 고아 5명을 홀로 길러 내시기까지 하셨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은 치매로 인해 치매 전문 요양원에 머물고 계셨다.

 

무엇보다 가장 놀랐던 것은 실제로 책 속 이야기처럼 황금주 할머니는 술과 담배를 안 하고 돈을 모으셨고, 그 돈을 전쟁과 여성 인권박물관 건립을 위해 내놓으셨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위안부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를 피해자로 보는 우리나라와 일개 매춘부로 보는 일본. 위안부 할머니들은 아직 언제 끝날지 모를 긴긴 싸움 중에 계셨다. 그리고 안타까운 것은 이제 그 힘든 투쟁을 끝까지 이어갈 분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어두운 역사이지만,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한 조각. 우리의 아이들에게 역사의 상처를 계속 안고 가게 해서는 안 되겠지만, 우리 역사의 상처를 잊지 말고 기억하게 해야 하지는 않을까. 이 책은 우리 아이들에게 역사의 귀중한 진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 연필과 지우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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