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17 - 5부 1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7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의 마음에는 항상 같은 의문이 있는 것 같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세상에서 어떤 존재인가’ 일제치하에 있던 우리네 사람에게도 이런 의문이 있었는 듯 했다. 조국의 광복을 통해 자신의 뿌리를 되찾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바램이지만, 그것이 나의 뿌리를 찾는 것은 될지언정 내 자신을 찾는 것은 분명 아니기 때문이다. 나라 잃은 서러움만으로도 벅찬데 신분차별은 여전했고, 빈부의 격차는 더 심해졌다. 신분에서 벗어나 보고자 공부를 하지만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고, 없는 살림에 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공부를 하고 유학을 간다 한들 나라 없는 국민이 대접받을 리도 없었다.

 

 

“보지도 못한 하나님을 만들어내고 귀신을 만들어내고 영웅을 만들어내고 왜들 그러지요? 사람답게 못 사는 한풀입니까? 왜 사람들은 남들에게 이런저런 옷을 입히기를 좋아하는 거지요? 아름다우면 추하게 입히려 하고 추하면 아름답게 입히려 하고, 반대로 아름다우면 더욱더 천상적으로 꾸미려 하고 추하면 더욱더 지옥으로 만들려 하고, 진실은 어디 있습니까? 온통 빈 껍데기, 빈껍데기만... 그럴듯하게 치장하고 화려한 무대에서 연주할 때 관객들은 환호합니다. 열광합니다. 껍데기만 보구요. 껍데기를 벗어버린 무대 뒤가 얼마나 살벌한지 아십니까? 추악한 일들, 더러운 몰골들이 여기저기 웅크리고 있습니다. 지분으로 떡을 쳐서 청중의 인기를 독차지한 가수가 무대 뒤에선 임자 없는 추녀라든지, 많은 사람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여배우가 기둥서방한테 머리채를 잡힌 채 지갑바닥까지 털어야 했다든가, 인생이란 따지고 보면 본시 그런 모습, 으스스하고 을씨년스럽고 과히 아름다울 것도 없는, 그게 삶의 현실 아닐까요? 대체 신성한 곳은 어디 있습니까?”

 

“자네 말대로 하자면 담요 한 장 둘러메고 얼음판을 뛰다가 얼어죽은 사람, 굶주리며 행군하는 사람, 붙잡혀서 고문당하고 사살되는 사람, 그들도 치장하고 무대에 선 가수나 배우와 같다, 정말 그런 거야?”

 

“독립이라는 헛된 꿈을 꾸는 사람들이지요.”

 

- <토지 5부 1권> 중에서 -

 

 

어쩜 아무것도 몰랐던 때가 더 마음이 편했는지도 모른다. 그저 몸을 써서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되었던 때. 머리는 깨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그 격차에서 오는 가치관의 혼란은 더 컸을 것이다. 그리고 내 자신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배부른 생각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 본연의 질문이기에 그에 대한 의문을 끊을 수 없었던 사람들.

 

혼란의 시대는 여전했지만, 그 혼란도 계속되자 그에 대한 면역이 생겨버린 사람들. 그들은 끊임없이 던졌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차차 자신을 찾기 시작했다. 영광은 음악인의 삶을, 몽치는 바닷사람의 삶을, 영선네는 공양주 보살의 삶을, 양현은 의사의 삶을, 환국은 화가의 삶을. 그렇게 하나 둘 자신의 삶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얘기는 다르지만 어떤 사람이 한 말인데, 사람에게 가장 강한 거는 생존본능이라는 거야. 그건 누구나 다 아는 얘기지. 그러나 때에 따라서 그보다 강한 것은 생명에 대한 연민이래. 말하자면 어머니의 사랑은 그 생명에 대한 크나큰 연민이라는 거야. 불교에서 말하는 대자대비, 그런 거겠지. 가령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려고 뛰어들었다가 함께 죽는 경우, 기차가 달려오는 철길에서 노는 아이를 구하려고 뛰어들었다가 치여 죽는 경우,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건 생명에 대한 연민이 자기 생존의 본능을 앞지른 것 아니겠니? 벌레 한 마리 죽이지 못하는 심약한 사람은 의학을 공부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들 하지. 그러나 실은 그렇지가 않다는 거야. 냉정하고 결단력과 기술이 의사의 첫째 조건이지만 사람이 물체가 아닌 생명인 이상 이성의 토대는 생명에 대한 연민이라야, 그래서 의학을 인술이라 하는 것 아니겠느냐, 아무리 심약한 사람도 그 생명에 대한 연민이 크면 얼마든지 냉정해질 수 있고 결단하는 용기도 생기고 기술의 깊이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거야. 그 말에 비추어본다면 사막을 걷는 인내와 용기도 절로 생기는 거 아닐까? 내 생각에는 인술이야말로 양현이같이 무구한 마음이 가야할 길인 것 같다.”

 

- <토지 5부 1권> 중에서 -

 

 

특히나 인상 깊었던 것은 길상이었다. 사명을 갖고 뒤늦게 든 붓이었지만, 그의 재능을 녹슬지 않았고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그의 재능의 의해서라기보다 원력에 의한 것이었다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지는 것은 그의 작품이 실제 존재할까 하는 것이다. 드라마 <토지>에서 나왔던 도솔암이 아니라 책 <토지>에 나온 도솔암은 진정 존재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 어느 정도 당시의 현세를 바탕으로 쓰여진 <토지>이다보니 단순히 작가의 상상력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교에는 문외한 인 나이지만 책 <토지>에 나온 도솔암이 존재한다면 왠지 가보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 부처는 대자대비(大慈大悲)라 하였고 예수는 사랑이라 하였고 공자는 인(仁)이라 했느니라. 세 가지 중에는 대자대비가 으뜸이라. 큰 슬픔 없이 사랑도 인도 자비도 있을 수 있겠느냐? 어찌하여 대비라 하였는고. 공(空)이요 무(無)이기 때문이며 모든 중생이 마음으로 육신으로 진실로 빈 자이니 쉬어갈 고개가 대자요 사랑이요 인이라. 쉬어갈 고개도 없는 저 안일지옥의 무리들이 어찌하여 사람이며 생명이겠는가..

 

- <토지 5부 1권> 중에서 -

 

 

모두가 이들처럼 사람 행세를 하며 자신을 찾아가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사람 행세 못한 채 자신을 버리고 망가진 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장 끔찍했던 이는 조준구. 알면서도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인지, 민망하여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것인지 모를 그. 그의 속을 정말 들여다보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내 포기가 되었다. 악인인 그에게 무슨 기대를 하는가 싶어서. 그가 그런 뉘우침이나 민망함을 안다면 결코 그런 삶을 살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중했고, 세상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인데 갖지 못했다 여기는 이였다. 자신이 남의 것을 강탈하고 남한테 한 해코지는 전혀 고려치 않는 이였다.

 

그를 보며 떠올리는 이는 당연 임이네였다. 몸이 상해 죽음을 앞에 두고도 생의 끈을 놓지 않고 오히려 질기게 부여잡으려 하는 그 처절한 모습, 죽음 앞에서도 털끝만큼의 뉘우침도 없던 모습, 그 두 악인은 어쩜 그리도 닮았는지 모르겠다. 이것이 작가가 두 악인에게 내린 형벌일지는 몰라도, 그들에게 그들이 그렇게 구박하던 자식의 지극한 수발을 받게 하는 것은 왜 일지. 그런 악독한 이들의 말로치고는 너무나 복에 겨운 것 아닌가 싶었다.

 

 

몽치와 양생이 밖으로 나왔을 때 사방은 어두워져 있었다. 선창가에는 노점상의 가스불이 늘어놓은 울긋불긋한 잡화를 화려하게 비추어주었으며 마치 굴비 엮어놓은 듯 항구에는 작은 배 큰 배가 빽빽이 정박해 있었다. 기름을 부은 듯 매끄러운 바다, 바다 위에 달빛이 희번덕이고 멀리 등대섬의 등댓불이 깜박이고 있었다. 고동을 울리며 떠나가는 밤배, 들어오는 밤배, 어쨌거나 항구는 활기에 넘쳐 있었다.

 

해안선을 따라서 난 신작로말고는 거의 평지라고는 없는 이고장, 부자들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건 빈자들의 오막살이건 모두 다 산비탈에서 뻗치고 있었다. 그 산비탈에 등불들이 나돌아서 부자 빈자 구별 없이 아름다웠다.

 

옛날, 일개 편벽의 갯촌이었고 고성군에 달린 관방에 불과했던 이 고장이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구국의 영웅 이순신의 당포와 한산도의 대첩을 거두게 되는데 그로인하여 삼도통제사 군영이 이곳 갯촌으로 옮겨지게 된 것이다. 바로 통영이 탄생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 통영에는 벼슬아치들을 따라 서울의 세련된 문물이 흘러들어왔을 것이며, 팔도 장인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을 것이며 나라를 구하겠다는 지순한 영혼들이 이곳을 향해 팽배했을 것인즉, 그 위대한 힘과 정신이 마침내 찬란한 승리의 꽃을 피게 했던 그것은 편벽한 갯촌의 엄청난 변신, 변화였을 것이다.

 

전쟁이 끝나자 각처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귀향을 서둘렀겠지만 해류관계인지 천하일미를 자랑하는 해물이며, 아름다운 풍광, 온화한 기후, 넘실대는 바다, 아득한 저편에 대한 동경, 그러한 생활의 터전을 사랑했을 감성 풍부한 장인들 자유인들이 잔류했을 가능성은 충분하고 상상키 어렵지 않다. 그들이야말로 남쪽 끝머리 새로운 모습으로 떠오른 통영의 주역들이며 뿌리가 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유례 없는 아름다움과 정교함을 자랑하는 통영 갓, 전국에 명성을 떨친 통영 소반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나전칠기며 독특한 목공예가 뿌리 없이 되어진 것은 아니다. 선자방 칠방 주석방 등 공방이 이곳에 국영으로 있었던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다. 이들 자유와 창조의 정신들은, 고기 배 찔러먹는 뱃놈이라 하시를 하면서도 그 바다에서 신선한 활력을 받아 쇠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피는 맥맥히 흘러 이 땅에서는 아직 숨쉬고 있다. 자긍심 높은 후손들이 치욕을 씹으며 그러나 오기를 잃지 않고 거닐고 있다. 사람들은 성지, 충렬사의 붉은 동백꽃을 마음으로 몸으로 수호하며 이순신이 팠다는 명정리의 쌍우물, 어떠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해서 가뭄 때는 통영사람들 유일한 식수가 되는 명정리 우물을 바가지로 퍼올리는 아낙들 마음은 늘 경건했다. 왜국 군선들이 몰리었던 판데목, 어마지두한 왜병들이 손으로 팠다는 판데목, 사람들은 그곳에 설치한 해저터널을 다이코보리라 부른다. 그것은 일본의 참패를 상징하는 말이다. 사람들은 우람한 기둥의 세병관이 학교 교실로 쓰이며 퇴락해가는 것을 슬퍼한다. 어떤 여인이 일본인가 동서한다 하여 그의 부모가 집밖 출입을 아니하고 형제자매 일가친척이 여인을 외면하며 고장사람들 모두가 그 여인에게 말을 걸지 않았으니, 파문으로 철저하게 응징하는 그 치열함, 여하튼 일제 치하의 통영, 남쪽 멀리 멀리 날아가버린 자유의 새가 돌아올 것을 기다리는 사람들, 자랑스러움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 활기에 넘쳐 있다. 통영은.

 

- <토지 5부 1권> 중에서 -

 

 

통영이 고향이었던 작가 박경리. 박경리 선생님은 이렇게 고향 통영을 알려주셨다. 업무차 통영을 잠깐 방문한 적은 있지만, 통영을 둘러볼 여유는 없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그곳이 박경리 선생님의 고향인지도 몰랐었다. <토지>를 읽으며 나는 문득 토지 기행이 하고 싶어졌다. 하동 마을이며, 평사리, 화엄사, 구례, 지리산. 비록 중국과 북쪽은 가지 못하겠지만, 언젠간 꼭 떠나보고 싶은 토지 기행이다.

 

 

 

- 연필과 지우개 -

 

 

 

 

 

제5부

1940년경부터 1945년 해방에 이르기까지 억압을 견뎌내야 했던 민족의 삶이 확대된 공간을 오가며 다양하게 펼쳐진다. 서희는 박 의사의 죽음, 양현과 영광의 슬픈 사랑을 보면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달으며, 인실과 오가다의 재회, 길상의 관음탱화 조성, 소목장이가 된 조병수와 아버지 조준구의 처절한 죽음, 후일담형태로 채워지는 평사리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로 주요 인물간에 얽혔던 한이 한겹씩 풀어진다. 또한 해도사와 소지감 등을 중심으로 한 지리산 모임, 이홍의  상의의 일본인 학교생활, 일본인의 앞잡이가 된 우개동의 행패 등을 통해 일제말의 현실이 적극적으로 그려진다. 1945년 8월 15일, 양현은 강가에 나갔다가 일본의 항복 소식을 듣고 이를 서희에게 전한다. “그 순간 서희는 자신을 휘감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1897년부터 반세기 가까이 달려온 <토지>의 마지막 장면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