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16 - 4부 4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6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기 마련이고, 영원한 이별이 아닌 다음에야 이별 뒤의 만남 역시 있기 마련일 것이다. 하지만 만남이라 하여 항상 즐거울 수만 없고, 이별이라 하여 항상 슬플 수만도 없다. 때론 슬픈 만남도 있고, 시원한 이별도 있을 것이다. 특히나 사연 많은 <토지>의 인물들. 그들의 만남과 이별에 난 내가 그들을 만나고 이별한 양 오르락내리락 하는 감정의 변화를 겪어야 했다.

 

가장 시원했던 이별은 조용하의 세상과의 이별이었다. 그도 나름의 사연이 있었지만, 나에게 그는 착한 이들을 괴롭히는 악인에 불과했다. 그의 죽음으로 그의 전부인인 명희나 그가 연정을 품던 인실이 한시름 놓을 수 있다는 생각에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이 마냥 시원할 수만은 없었던 것은 그가 나쁜 사람인 것에 앞서 참 불쌍한 사람이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악인의 말로다운 처량한 죽음이 그를 더 불쌍하게 여기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임이와 홍이의 만남은 그 자체로 상당히 불쾌했다. 뻔뻔하고 이기적인 임이. 임이네의 등장부터 퇴장까지 임이네를 미워할 수밖에 없던 나로썬 임이의 재등장이 전혀 반갑지 않았다. 근데 그것이 홍이와의 만남으로 이어지자, 나는 임이를 저 멀리 내몰고 싶어질 정도였다. 꼭 임이가 우리집 대문을 두드리고 우리 집에 쳐들어 온 것 마냥 말이다.

 

오랫동안 서로의 소식조차 모르고 떨어져 있다 다시 만난 숙이와 몽치. 이들의 만남은 안도감을 주었다. 결혼은 했으나 아직 신랑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마음고생하고 있는 숙이에게 어릴 때 헤어졌던 동생 몽치와의 재회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을 것이다. 가까웠던 거리에 비해 너무나 늦어졌던 이들의 재회. 그나마 이들의 이별이 더 길지 않았음에 난 기뻐할 수 있었다.

 

부부의 연을 맺어도 함께 한 시간보다 떨어져서 지내는 이들은 참 많았다.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지내는 부부들. 서희와 길상네만이 아니었다. 상현과 그의 부인 박씨도 그러했고, 옥이와 두메네 역시 그러했다. 아마도 당시의 많은 이들이 실제로 그러했을 것이다. 공부한다는 명목으로, 돈을 번다는 명목으로, 혹은 독립운동을 한다는 명목으로. 많은 남정네들은 집을 떠나 외지를 떠돌아 다녔을 테고, 아낙네들은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이제나저제나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잦은 만남과 이별이라 해도, 이들 만큼 애틋하지는 않았다. 유인실과 오가다 지로. 이 둘의 연은 아슬아슬하게 이어진 채 이들의 만남과 이별 역시 아슬아슬하게 이루어졌다. 한국인 여자와 일본인 남자의 관계라는 이유로 서로 너무나 큰 아픔을 감내해야 했던 이들. 이들의 우연한 만남은 이들에게 어떻게 작용하게 될지. 유인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지만, 오가다의 애틋한 마음이 너무 눈물겨워서 이제는 그만 둘이 이별 없는 만남을 이어갔으면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인간관계. 그런 게 다 사람 사는 모습이라지만, 아름다운 만남과 이별만이 있기를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인가 보다.

 

 

 

- 연필과 지우개 -

 

 

 

 

 

제4부

1929년의 원산 노동자 파업에서부터 만주사변, 남경대학살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상황이 주로 지식인들의 입을 통해 생생하게 증언되고, 농촌붕괴와 도시유랑민들의 증가 등 1930년대 일제의 폭압과 혼란상이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통해 전개된다. 특히 조선과 일본의 역사와 문화, 예술, 사상, 민족성 등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전편을 통해 폭넓게 제시된다. 서희의 아들 환국과 윤국의 성장, 길상의 출옥, 군자금 강탈사건 이후 만주로 도피하는 송관수의 갈등, 명희의 이혼과 새로운 삶, 유인실과 일본인 오가다의 사랑, 그리고 인실의 도피와 변신, 색소폰주자로 떠도는 송관수의 아들 영광의 모습 등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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