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4 - 신이 사랑한 자
크리스티앙 자크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예부터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이 절대적이라 할 순 없지만, 여러모로 맞는 말임에는 틀림이 없다. 모차르트가 힘들고 어려웠을 때 그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도움의 손길을 내민 이가 프리메이슨단이 아니라 가톨릭단체였다면 어땠을까? 모차르트의 말로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프리메이슨은 모차르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고, 그가 어릴 때부터 그를 지켜보며 그의 주의를 맴돌았다. 그러면서 그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나타나 프리메이슨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알게 모르게 프리메이슨에 젖어든 모차르트는 결국 프리메이슨에 입단했고,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했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에게 프리메이슨은 이미 하늘의 해와 달처럼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는데. 스스로 프리메이슨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프리메이슨에게 선택당한 모차르트에게 과연 책임이 있는 것일까?

 

가끔 신앙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하다보면 의문이 들 때가 있다. 하나님은 과연 타종교인을 모두 벌하실까? 그렇다면 모태신앙으로 인해 종교에 대한 선택권이 없이 종교를 받아들이게 된 사람들 역시 동일한 심판을 받아야 마땅한 것일까?

 

나 역시 모태신앙으로 개신교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내 부모님이 가톨릭이셨거나 불교셨다면 난 가톨릭이나 불교를 먼저 받아들였을 것이다. 개신교를 모태신앙으로 갖게 되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개신교인이다. 부모, 형제, 친척 그리고 학교도 개신교를 종교로 갖고 있는 학교를 가게 된다. 그리고 매주 교회에 가다보니 동네 친구들은 거의 대부분 교회친구들이 된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가면 이미 개신교인이기 때문에 개신교 관련 동아리를 들게 된다. 그러면 대학 생활에 있어서도 개신교 친구들이 훨씬 더 많아지게 된다. 사회를 나가도 종교적 색채가 같은 회사에 취직을 하는 경우 이전과 마찬가지의 환경에 놓이게 된다. 설사 대학교 이후부터 타종교를 접하게 된다 하더라도, 이미 개신교 쪽에 쌓아온 관계가 있기 때문에 왠만해선 종교를 잘 바꾸지 않는다.

 

개신교의 하나님과 가톨릭의 하느님이 다른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그저 신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지. 굳이 어느 신이 옳다고 싸울 일은 아니라고 본다. 그렇지만 이슬람교나 힌두교 같은 경우에는 그 차이가 너무 커서 그 자체로 존중하기가 힘들긴 하지만.. 그렇지만 이슬람교나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이 그르다고 할 수 있을까? 만약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그저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죄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내가 그곳에서 태어났다면 나 역시 이슬람교나 힌두교를 따르고 있을 텐데 말이다. 그들이 이곳에서 태어났다면 개신교나 가톨릭, 내지는 불교를 믿고 있지 않겠는가.

 

어느 종교이든지 간에 신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신 아래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이라면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신은 우리를 벌하시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길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에. 그 어떤 종교에서든 나쁜 것을 멀리하고 좋은 것을 가까이라고 하지 않는가. 남의 것을 탐하고, 남을 미워하라고 하는 종교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도 지금까지도 각각의 종교들은 대치 상태에 있다. 겉으로는 어느 정도 공생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조금만 안으로 들어가도 각자 자신들의 신만이 진짜라 여기고 자신들만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그나마 지금은 서로 민감한 부분은 건드리지 않고 있어, 무한 휴전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모차르트 시대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우리가 아니면 무조건 적이었다. 프리메이슨에게 선택되어진 모차르트는 어쩔 수 없이 많은 이들의 적이 되어야 했고, 천재이기에 받아야하는 세상의 시기 질투뿐 아니라 프리메이슨이기에 받아야하는 배척과 증오까지 감당해야 했다. 하이든의 말처럼 모차르트에게 프리메이슨은 너무 좁은 세상이 아니었을까. 프리메이슨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도움과 보호를 받은 것은 사실이나, 프리메이슨이 감당하기에 모차르트는 너무 큰 인물이었지 않나 싶다. 프리메이슨의 일선에 서서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재능에 비해 너무 적었던 것이다.

 

모차르트에게는 프리메이슨을 떠나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음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나 찾아왔다. 하지만 그는 프리메이슨도 아니고 프리메이슨의 빈 지부를 위해 그 기회들을 모두 날려버렸다. 그저 프리메이슨으로서 많은 걸 하고 싶었다면 꼭 그곳이 빈 일 필요는 없었을 텐데도. 그에게 프리메이슨보다 음악이 먼저였다면 당연히 그는 빈을 떠났어야지 옳았지만, 그에겐 그 어떤 것보다 프리메이슨이 더 중요했었다.

 

만약 페르겐 백작 같은 사람이 없었더라면, 프리메이슨은 영향력을 점점 더 키워갈 수 있었을 테고, 모차르트도 그 안에서 더 많은 부와 명예를 얻어갈 수 있었을 거다. 그랬다면 ‘모차르트가 유명해진 데는 프리메이슨의 역할이 컸다.’ ‘모차르트가 프리메이슨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라고 달리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차르트 시대에는 중상모략을 일삼는 페르겐 백작이 존재했고, 역사 속에서.. 적어도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역사 속에서 모차르트가 일찍 죽은 건 프리메이슨의 영향이 컸다. 그리고 모차르트가 프리메이슨을 만난 것은 운명이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그에게 불행이었다.

 

모든 것이 지났기에 확신을 갖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모차르트는 그의 고국 오스트리아를 떠나 일찍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던 프랑스나 영국으로 갔어야 했다. 그랬다면 우리는 모차르트의 작품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이보시오, 페르겐 백작. 적어도 지금까지 나는 대결보다는 타협을 우선함으로써 오직 성공만을 이끌어냈소. 프리메이슨단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그대는 눈이 먼 것 같소. 그대의 모든 경고를 액면 그대로 고려한다 해도, 결국 통치하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라는 사실을 기억하시오.”

 

- <모차르트 4. 신이 사랑한 자> 중에서 -

“백작님, 우리 정보원들의 보고 내용은 모차르트가 프랑스대혁명에 관해 그 어떤 흥미도 느끼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우린 그를 혁명의 공모자로 몰아갈 걸세. 결국 황제도 그를 위험인물로 간주하게 될 거야.”

 

- <모차르트 4. 신이 사랑한 자> 중에서 -

 

잘은 모르지만, 당시 프리메이슨이란 단체는 발전하고 있는 단계였던 듯하다. 그 과도기적인 시기에 모차르트는 혼자서만 너무 앞서 간 탓에, 이는 프리메이슨 외부뿐 아니라 내부에서까지 적을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프리메이슨의 사상인 자유, 평등, 박애를 주창한 것은 맞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남자들일 때의 이야기지, 그 대상에 여자는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대우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한발 진보된 프리메이슨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그런 사상을 오페라에도 담아내었다. 모차르트가 원했던 프리메이슨이 완성되었다면 여권 신장도 좀 더 빨리 이루어지지 않았으려나? 여러모로 그의 이른 죽음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우선 제목은 <마술피리>로 정했습니다. 천상의 불벼락이 내리치는 끔찍한 폭풍우 속에서 천년 묵은 참나무 깊은 곳의 나무를 깎아 만든 이 기발한 악기가 곧 프리메이슨의 자를 상징합니다. ‘마술피리’를 연주함으로써 인간과 짐승의 야만성을 고요히 잠재우고, 폭력을 다스리게 되지요. 그리고 남성과 여성은 함께 위대한 신비를 체험하게 되는 겁니다.”

 

- <모차르트 4. 신이 사랑한 자> 중에서 -

“이집트에서는 모든 신적인 힘이 세 가지로 표현된다네. 신비, 빛 그리고 수식(數式)이지. 보통 인간의 정신으로는 결코 가닿을 수 없는 유일자가 3이라는 숫자를 통해서 구현되는 것이네.”

그제야 볼프강도 어느 정도 확신이 드는 모양이었다.

“<마술피리>에는 3이라는 숫자가 명백히 드러날 겁니다. 의식은 직급장등급의 비밀의 숫자 9를 통해 3을 승화하는 양상으로 시작 될 거고요. 서곡의 도입부도 서로 다른 세 개의 화음으로 시작하다가, 그것이 중간에 다시 세 배로 늘어나서 결국 위대한 신비를 찬양하는 의미를 띠게 될 겁니다. 존자 자라스트로는 파미나와 타미노라는 한 쌍에게 왕도의 예술을 전수해주고자 하지요.”

“<마술피리>는 신비주의적인 동시에 모든 이의 가슴에 말을 거는 대중적인 작품이 될 것이네.”

 

- <모차르트 4. 신이 사랑한 자> 중에서 - 

 

이 글을 보고 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 역시 프리메이슨 단원이라지 않는가. 이 사실은 프리메이슨에 대한 검색을 하다 이미 한번 읽었던 내용이라 그 놀라움은 더 컸다. 설마 했는데 크리스티앙 자크 마저도 조지 워싱턴이 프리메이슨이라고 지목하다니. 그렇다면 조지 워싱턴 뿐 아니라 그와 함께 지목된 다른 이들도 정말 프리메이슨 단원이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 다시 검색에 들어간 프리메이슨. 이번에 찾은 건 단지 프리메이슨이라는 명칭만이 아니었다. 프랑스. 그것도 파리에는 프리메이슨이라는 박물관이 있었고, 박물관 앞에 유리 피라미드가 서 있는 루브르 박물관 역시 프리메이슨의 박물관이라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라 미국 알렉산드리아에는 조지워싱턴 프리메이슨 박물관이라는 곳이 있단다. 그저 음모론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제 프리메이슨은 뜬 소문이거나 음모론일 뿐이라는 생각은 더 이상 들지 않았다.

 

“조만간 평등주의라는 최악의 정치적 강령을 등에 업은 인간의 잔혹성으로 이 세상은 만신창이가 될 것이네. 모든 것을 평평하게 고르겠다는 교설을 내세우는 그자들이야말로 기존의 기득권을 빼앗아 자기들만의 것으로 만드는 자들일 테니 두고 보게. 아마 참다운 광명은 미합중국이라는 신세계에서 도래할 것이야. 거기서 4월 30일에 바로 우리 형제인 조지 워싱턴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지 않은가!”

 

- <모차르트 4. 신이 사랑한 자> 중에서 -

“창조적 사고를 실어 나르기 위한 음악적 형태를 워낙 아름답게 빚어내는 터라. 사람들이 그 정체를 여간해선 간파하지 못한답니다. 그래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가슴으로 먼저 감동을 받고, 그렇게 전해지는 메시지의 위력은 이론적인 교의를 훌쩍 뛰어넘지요.”

 

- <모차르트 4. 신이 사랑한 자> 중에서 -

<레퀴엠>

“난 이 작품을 마치 극적인 오페라처럼 구상하고 있소. 모든 것이 내 영혼이 갈망하는 저 피안의 신비, 영원한 휴식과 죽음의 초월로부터 우러나오고 있다오. 우선 ‘키리에’의 처절한 싸움이 필요한데, 그건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가 이중의 푸가 속으로 엮여들면서 구체화되지. 그리하여 결국 진노의 날에 이르고, 인간의 저열함 때문에 세상은 잿더미로 화하게 돼. 이때 천상의 트럼펫 소리가 피조물들을 신성한 법정으로 불러낸다오. 그 무엇도 징벌을 면해갈 수 없기 때문이지. 트롬본 독주는 의로운 자들을 불러내 사슬을 벗어나라고 독려하오. 악의 신봉자들을 벌벌 떨게 하는 임금의 위용을 두려워할 자들은 그들이 아니라는 거지. 이 심판으로 인해, 신의 전능하심이 빛을 발하고 희망을 허락하는 반면, 저주받은 자들한테는 어둠의 공포와 잔혹한 불길 그리고 소멸만이 기다리고 있소. 부활한 자들은 평온을 청하면서 죽음의 극심한 고통에서 벗어난다오. 그것은 심연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고, 빛을 향해 오르게 하는 고요한 힘이라오. 이제 지옥의 고통에서 해방된 영혼들을 모아 빛을 향해 이끌어 가는 일은 대천사 미카엘이 담당해야 할 몫인 거요. 하지만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그 초자연적인 빛의 약속이 지켜지기는 할까? 영혼은 이제 새로운 싸움을 시작 해야많 하오. 모든 불안을 떨쳐내 진정한 확신에 도달하기 위해서 말이오. 마침내 신의 축복과 진정한 평화의 획득이 이루어지고 나면, 영원한 빛과의 혼연일체가 펼쳐지지....”

 

- <모차르트 4. 신이 사랑한 자> 중에서 -

 

역시 역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최후의 승자는 살리에리가 아닌 모차르트였기에. 당시에는 온간 권모술수로 모차르트를 무너트리고 자신이 앞서고자 했지만, 그는 모차르트가 죽은 후에도 그러지 못했다. 게다가 그는 역사 속에서 질투에 눈 먼 비열한 음악가로 기억되고 말이다. 만약 그가 모차르트의 성장을 도왔다면 역사는 그를 많이 넓은 조력가로 기억했을 테고, 그 역시 모차르트를 통해 그 자신의 음악적 성장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재력은 모차르트보다 덜 해졌을 테지만.

 

당시 모차르트는 자신의 능력만큼 인정해주지 않는 현실이 참 힘들었을 거다. 하지만 그가 세상에 이별을 고한지 한참이 지난 지금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의 천재성과 음악성은 길이길이 기억되고 인정되어 질 것이다. 현실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예술인들에게도 작은 희망이 되지 않을까. 적어도 역사만은 나를 제대로 기억해줄 거라는 것을 안다면.

 

미가치 대주교는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고해성사를 결국 받아주기로 했다. 살리에리는 사면받는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하느님께서 용서만 해주신다면, 그는 회한을 지우고 모차르트를 잊음으로써 다시 궁정음악가로서의 화려한 경력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었다.

* 안토니오 살리에리는 1825년 일흔다섯의 나이로 사망했다. 1823년 요양원에 입원했을 때 그는 자신이 모차르트를 살해했다며 자책했는데, 당시 정신이 온전치 않은 노인의 말을 귀여겨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모차르트 4. 신이 사랑한 자> 중에서 -

 

장장 4권에 걸쳐 읽은 모차르트. 신이 사랑했기에 크나큰 달란트를 받은 모차르트. 그는 신이 그에게 주신 그 달란트를 세상에서 모두 발휘한 뒤 다시 신에게 돌아갔다. 그러기에 그는 신 앞에서 당당할 것이다. 나도 신 앞에서 당당해지고 싶다. 하지만 그 전에 내가 받은 달란트를 먼저 찾아야 할 것 같다.

 

- 연필과 지우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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