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2 - 비밀의 서약
크리스티앙 자크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뒷표지에 쓰인 소개글처럼 이 소설은 박진감 넘치는 스릴러는 아니었다. 혹시라도 흥미진진한 스릴러를 기대하고 이 책을 펼쳤다면 실망하고 돌아설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제목 그대로 모차르트라는 인물과 그의 인생, 그리고 그의 음악에 대해 숨겨진 이야기들이 알고 싶었기에 이 책은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역사적 사실을 뼈대로, 그곳에 풍부한 상상력으로 맛있게 살을 붙이는데 있어 크리스티앙 자크는 단연 최고였다. 그의 전문분야인 이집트가 아니어서 처음엔 의아하긴 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알 수 있었다. 그가 모차르트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모차르트의 음악과 함께했다는 그의 말이 사실로 다가왔다.

 

모차르트가 남긴 수많은 작품들은 그가 250여 년 전 과거로 떠나는 여행에 있어 중요한 길잡이 노릇을 해주었고, 이 책이 그저 환타지 소설일거라 의심을 품는 이들에게는 그의 훌륭한 증거자료가 되어 주었다. 하지만 그가 모차르트에게 부여한 프리메이슨단의 대마법사란 역할이 잘 이해가 되기 않았다. 프리메이슨단은 그저 그 시대에 형성되었던 하나의 길드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특별한 종교적 의미라든지, 정치적 성향이 있다기보다 그저 이해관계에 얽혀 만들어진 많은 조직들 중의 하나로 보였다. 정말 모차르트가 프리메이슨단 같은 어떤 조직에 가입되어 있었을지 아닐지는, 나중에 역사책을 뒤져서라도 꼭 확인해보고 싶긴긴 하다.

 

책을 읽는 동안 내가 맛본 즐거움은 내가 모차르트를 만나는 순간, 그때 그가 만든 작품을 들을 수 있다는 것. 이 책에는 모차르트가 작품을 만들었던 순간순간들이 담겨 있었고, 그때 탄생된 작품의 제목들이 정확히 쓰여 있었다. 알 수 없이 길기만 한 제목들 옆에 알아보기 쉽게 적어놓은 모차르트만의 암호로. 그렇기에 난 눈과 귀로 동시에 모차르트를 만날 수 있었다. 그것은 클래식이 갖고 있던 큰 장벽을 훨씬 쉽게 무너뜨리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건 마치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는 동안 그가 직접 그 음악에 대해 생생하게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새로 작곡한 세레나데 <우편나팔 세레나데 D장조>(K. 320)는 엉뚱하면서 충격적이기까지 한 부분이 여럿 있어 여간 당혹스러운 게 아니었다. 느린 템포로 전개되는 데다 너무 엄숙한 분위기를 풍겼다. 게다가 비슷한 상황에서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음울하고 비장한 D단조 안단티노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또 의외인 것은 두 번째 3중주가 한참 진행되는 중에 느닷없이 마부의 뿔나팔이 우편마차의 팡파르를 소리 높여 연주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웬 변덕이야?”

레오폴트는 아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 마차나 골라 타고 이곳 잘츠부르크를 벗어나고 싶다는 제 열망이 담긴 거예요. 보세요. 첫 번째 악장이 콜로레도의 속박을 거부하고 있잖아요. 알레그로로 진행되는 부분은 저의 투쟁 의지를 그대로 표현했을 뿐입니다.”

 

- <모차르트 2. 비밀의 서약> 중에서 - 

  

타고난 천재성으로 탄탄대로의 길을 걸으며 승승장구 한 줄로만 알았던 모차르트. 하지만 천재인 그에게도 그만의 고민과 아픔이 있었다. 지금의 우리와 똑같이. 쉽게 열리지 않는 취업의 문 때문에 벗어나고 싶은 현실에 갇혀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 보내야 하기도 했고, 자꾸 피해가는 승진의 열쇠 때문에 억울함으로 창작에 대한 의욕을 잃기도 했다. 그리고 동료들의 시기와 질투 속에서 모든 기회들을 원천봉쇄 당하기도 했다.

 

그 앞에 많은 시련이 있었기에 그는 그의 천재성만 믿고 안주하지 않고,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그리고 시련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도전하고 또 도전했다. 그는 단순히 천재 음악가였던 것이 아니라, 노력하는 천재 음악가였던 것이다. 가끔씩 보통 사람이라는 것이 괴로울 때면 종종 생각했었다.

‘나에게도 천재적인 재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말이다. 하지만 모차르트를 보면서 이젠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련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온다는 것. 단지 그 시련을 이겨내든지, 이겨내지 못하는지에 따라 성패가 가려진다는 것이다. 어쩌면 모차르트는 천재이기에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를 지배하는 시간은 두 가지가 있다. 외부에서 부과되는 시간과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는 시간. 그 둘이 하나가 될 때 너는 지고한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야. 단, 무기력함에 한 치의 틈도 내주어선 안 된다. 그게 안 된다면, 너는 그야말로 하찮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 <모차르트 2. 비밀의 서약> 중에서 -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만난 모차르트와 소설 <모차르트>에서 만난 모차르트는 너무 달라서 괴리감이 컸다. 영화 속의 모차르트는 자신의 재능만 믿고 행동하다 파멸에 이르는 자유로운 음악가의 모습이었다면, 소설 속의 모차르트는 자신의 재능을 갈고 닦아 성공에 이르는 신념있는 음악가의 모습이었다. 달라도 너무 다른 두 모습. 난 소설 보다 영화를 통해 모차르트를 먼저 만났기 때문에 이 소설 속의 모차르트가 너무 미화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작가의 개인적인 호감이 반영이 된 것을 아닐까 싶은 생각과 더불어..

 

크기만 했던 이 괴리감이 조금 줄어들게 된 것은 모차르트에 대한 그의 아버지의 평을 보고서였다. 그의 아버지가 말하는 모차르트의 모습은 영화 속에서 본 모차르트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그걸 보고 난 어떤 게 진짜 모차르트의 모습인가에 대한 고민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기 마련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있어도 나에게 좋은 사람이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수는 없는 법이다. 때론 나에게는 좋은 사람이 다른 이들에겐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나에겐 나쁜 사람이 다른 이들에게는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거다. 누구든 그 사람의 실제 모습 그대로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그리고 자신이 보고 싶은 모습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의 숨겨진 고충과 노력을 잘 모르는 당시의 사람들의 눈에 모차르트는 자신의 천재성만 믿고 설치는 망나니 음악가 정도로 보였을 것이다.

 

모차르트의 탄생부터 성장과정을 죽 지켜보며 항상 동행했던 그의 아버지조차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 세상 사람인들 오죽 했겠는가. 같은 음악인의 길을 걷고 있는 친아버지조 이해하지 못하는 그를 세상 사람들이 이해해주길 바라는 건 과도한 욕심이었다. 당대의 사람들은 모차르트를 영화 속의 모차르트처럼 바라봤던 것이다. 그의 아버지조차도.

  

발트슈테텐 남작부인은 방금 도착한 레오폴트의 편지에 대해서 모차르트에게 차마 얘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편지에서 레오폴트는 아들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었다.

‘너무 수동적이고, 무기력하고, 태평하며, 가끔은 자만에 빠지기도 합니다. 또 참을성이 없고, 도무지 기다릴 줄 모른답니다. 무엇데든 지나치거나 부족하지, 결코 중간을 몰라요. 좀 생각해보십시오! 안타깝게도, 가장 똑똑하고 재능 많은, 소위 특출난 사람들일수록 그 앞길에는 수많은 장애가 널려 있는 게 세상의 이치 아닙니까!’

 

- <모차르트 2. 비밀의 서약> 중에서 -

  

천재적인 재능에다 음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까지 갖춘 모차르트. 그에게 작곡이란 그저 자신의 머리에 있는 걸 종이에 옮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고, 연주란 머리가 시키는 대로 손만 움직이면 되는 거였다. 이렇게 쉽게 음악을 만들어 내는 그가 힘겹게 음악을 만들어 내는 이들의 눈에게는 얼마나 얄미워 보였겠는가. 게다가 포커페이스조차 할 줄 모르는 모차르트가 얼마나 거만해 보였을지. 천재인데다 노력까지 하는 그를 따라가기란 거의 불가능했기에 사람들은 그가 너무 싫었을 것이다. 몇날몇일 동안 고생해서 겨우 한곡 만들까 말까한 힘든 이들에게 잠깐만 시간을 주면 곡 하나쯤은 뚝딱하고 만들어내는 그가 얼마나 부럽고도 얄미웠을까.

 


황제는 모차르트가 새하얀 백지를 앞에 놓고 연주를 해내자 그만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네덜란드 출신 피아니스트 리히터는 볼프강의 손가락 놀림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쓰라린 심정을 그만 드러내고 말았다.

“맙소사! 나는 죽어라 땀 흘리며 고생을 했어도 이 모양인데, 당신은 그저 장난하듯 하는구려!”

볼프강이 말을 받았다.

“오! 저 역시 지금 고생하지 않기 위해서 엄청나게 애를 써야만 했답니다.”

 

- <모차르트 2. 비밀의 서약> 중에서 - 

  

자신의 능력과 자신이 원하는 것과 달리 낮게만 평가된다고 생각하는 모차르트는 멈추지 않았다. 자신을 가로 막고 있는 벽을 깨기 위해서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열성적으로 그를 키워왔던 그의 아버지마저 그에게 현실에 순응하고 안주하라고 했을 때마저도. 그런 그가 그의 아버지의 눈에는 허황된 꿈만 쫓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기회가 있을 때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도전을 해야 기회가 온다는 것을 모차르트는 몸소 보여주었다. 성경에도 이런 말씀이 있지 않던가.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니라.’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그려놓고도 쉬이 발을 떼지 못한 채 바라만 보며 고민만 하던 나는 그를 보며 용기를 얻었다. 나 또한 열심히 내 길을 걷다 보면 기회의 문을 만날 수 있을 것이고, 그 문을 열심히 두드리면 언젠간 꼭 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선 난 더 이상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가야할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볼프강이 직접 <하프너>와 <린츠> 교향곡을 지휘하며, <D장조 콘체르토>를 연주하는가 하면, 몇 곡의 아리아와 더불어 바로 전날 작곡한 <피아노와 오보에, 클라리넷, 호른 그리고 바순을 위한 5중주>(K 452)도 선보일 참이었다.

“이 작품은 아마도 내 생애 최고의 작품일 것이오.”

볼프강은 콘스탄체에게 고백했다.

악기 배합이라든가 음색을 이끌어가는 기술은 완벽의 경지를 자랑하고 있었다.

심지어 볼프강 자신도 그 정도의 걸작을 더는 만들어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기적이 쉬이 되풀이되는 것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게다가 그것이 과연 진정한 종착점일지, 아니면 그마저도 극복되길 기다리는 가짜 한계일지 그걸 누가 알겠는가!

 

- <모차르트 2. 비밀의 서약> 중에서 - 

  

수많은 시련을 넘고 넘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거머쥔 모차르트는 과연 행복했을까? 만족감보다는 공허감이 크지 않았을까? 그의 노력이나 그의 짧았던 생을 놓고 보자면 그 결실이 너무 일찍 맺어졌다고는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자신의 꿈을 이뤄버린 그는 다음에 나아가야 할 길을 정하지 못했다. 꿈이 없어진 그는 더 이상 갈 길을 잃어버린 느낌이었을 것이다. 꿈이 없으면 희망을 품을 수도 없기에. 단란한 가정을 갖고, 안정된 직장을 갖고, 세상의 인정을 받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에게는 꿈이 없었다.

 

그러기에 그는 프리메이슨단이 제시하는 대마법사라는 직책에 그리 쉽게 넘어간 것은 아니었을까? 그 곳은 그에게 그 다음의 꿈을 꾸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 구성원이 되는 것은 곧 그가 더 이상 순수한 음악인이 아니라는 걸 뜻했다. 그것은 곧 정치에 입문한다는 것이기도 했으니까. 절대 권력을 가진 왕과 탄탄한 경제력으로 왕을 움직이는 귀족들 그리고 신앙심으로 시민들을 움직이는 종교단체들. 그들 사이에서 각각의 이해관계로 뭉친 정치적 세력들. 모차르트는 그 정치 세력 중 하나인 프리메이슨단에 그는 가입한 것이었다. 이제 더는 개인 음악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프리메이슨단의 단원으로 살아야할 모차르트.

 

그에게 어떤 변화가 생길지.. 궁금했다.

 

볼프강이 성공과 명예를 그토록 꿈꾸었던 건 오로지 음악가로서의 독립을 확고히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일단 목표가 달성되자 생각만큼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러한 성공 자체가 성전의 문을 열어주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 <모차르트 2. 비밀의 서약> 중에서 -

  

- 연필과 지우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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