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세상을 꿈꾸다
기획회의 편집부 엮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9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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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권을 함께 읽다가 상당히 오랜 시간을 들이고 드디어 개강날 다 읽고 반납한 책.

'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내는 책들이 전부 디자인, 카피, 저자, 기획이 쟁쟁한 터라 이번에도 어느 정도 높아진 기대를 품고 책을 집어들었다. 만만치 않은 두께이지만 무겁지 않고 책표지도 유려하게 잘 빠졌다. 제목도 나쁘지 않고 글씨도 좋음.

무엇보다 제일 좋은 점은(!) 평소에 책을 읽으면서 훑어보던 출판사들 이름이 올라와있다는 것. 잘 구해볼 수 없는 중국소설이나 동유럽소설을 출판했다거나, 같은 책의 여러 판 중에서도 역자의 번역이 특히 뛰어났다거나, 책 자체가 예뻐서 손에 안 쥐고는 집으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거나, 젠장 완전 여기 가서 무슨 일이든 해보고 싶군, 했던 출판사의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다.

분야도 인문사회과학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만화, 장르소설까지 두루 나오고 있고 글을 쓴 편집인들의 경력 자체가 출판 영화 방송 프리 등을 넘나들고 있어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기억에 남는 것 or 추천

읽다보니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된 부분들도 있었는데, 그것은 저자의 경력과 상관없이 서술방식의 덕을 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짧은 글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 책 한 권을 만든 과정을 전부 서술한 경우: '사장수업'이라는 책은 친구도 보고 있던 것이고 이런 비슷한 컨셉으로 20대를 위한 말랑한 사회데뷔책에 관심이 있던 터라 잘 읽어봤는데, 편집자 자신이 직접 저자로 나서게 되기까지의 기획과정이 회의노트를 정리한 것처럼 나와있다. 이미 취재해서 원고 집필까지 끝낸 필진을 앞에 두고 있더라도, 기획과 맞지 않으면 과감하게 없어야 한다는 것. 창조적 작업은 작업량과 결과물의 질이 정비례관계에 있지 않지만서도 누군가에게 부탁하고 무엇을 받아내면 정말 미안해서라도 그걸 써야할 것 같은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도 역시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 물론 가장 좋은 기획이라면 그런 수고로움을 권하지 않는 것이겠지만.



  • 정말 잘 되었으면, 하고 바랐으나 그렇지 않았던 책에 대해: 휴머니스트 편집주간이 썼던 글 같은데, 인문사회과학분야에서 책을 내는 사람으로서의 고민이 정말 잘 반영되어 있었다. 어학이나 실용서 부분은 '자기계발'과 같이 어느 정도 합의된 이슈에 맞춰, 매우 까다롭게 내용을 구성해내는 것이 관건. 같은 편집이라도 그쪽과 인문사회과학 기획편집의 일은 천차만별인 것 같다. 만화도 그렇고 소설도 그렇고 똑같이 '편집, 기획'이라는 말로 묶어낼 수는 없겠지만, 특히나 휴머니스트의 분이 기고한 글에서는 한 개인사를 책으로 담아내는 데 있어 어떠한 자세를 취하는가가 사회적으로 예민한 부분과 너무나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었다. 누군가를 영웅으로 만들어 책을 팔아먹는 작전은 이미 오랫동안 많은 기획편집자들이 해왔기 때문에, 그를 영웅이나 시대의 희생물이나 그런 것으로 만들지 않고 온전히 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내가 취한 관점이 사회에서 받아들여질까, 등을 고민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 마티, 다시 쓰세요: 제목이 좋았다. 편집자들이 글에 붙이는 제목을 보는 재미도 정말 쏠쏠하다. 서술방식도 그렇지만 제목에서도 성향이 드러난다.



  • 대중사회과학서, 대중법률서 관련 저자들의 이야기, 그림책상상: 관심있어 하는 분야들이었기 때문에 특히 술술 읽혔다. 특히 그림책상상은 내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일들을 완벽하게 재현해내고 있다. 목쌤의 소개로 그림책상상을 처음 읽어보게 되었을 때 어찌나 반갑던지 ... 홍대에 공간이 있고 거기서 창작워크숍을 하고 잡지에 소개했던 그림책의 원서들을 구비해놓는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당장 이번 주에 가야겠다. 서울에 사는 다수로서 복 받는구나. 기획편집에도 자극이 될 만한 내용들을 잡지로 발간해내면서 네트워크를 넓히고 지적 확장을 추구하는 것 역시 무척이나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정말 저런 걸 해야겠다는 생각.

    대중사회과학서에 관심이 있다 보니 자연히 이제는 스타로 떠버린 저자 이덕일의 책 이야기에도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는데, 나 역시 '사도세자의 고백'을 통해 이덕일의 글을 처음 접하게 되었지만 당쟁을 통해 본 조선시대 등 당장 성공하지 않았더라도 그러한 기회를 통해 귀한 필자를 만나 재미있으면서도 뜻 깊은 작업을 해낸 편집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 부산지역출판사 이야기: 동교동-서교동-상수동을 비롯한 홍대 일대, 파주, 어쩌다 충정로 대학로 종로 등 대부분 서울 지역에 있는 출판사들 이야기천지다. 지역색이 강하고 학벌이 개인의 삶을 구속하는 정도가 한국보다는 덜한 일본의 경우에도 도쿄에 출판업의 70%가 집중되어있다는 것에 엄청 놀랐다. 출판업이 인접해있을 때에 이득을 보는 산업이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그렇게 발전한 것이기는 하겠지만, 서울에는 90%이상이니(너무 충격적이라 숫자도 기억 안 남) 더 놀랐다. 한국에서밖에 볼 수 없는 책들은 지역의 저자들을 발굴해내지 않으면 안 나올 텐데. 나무, 곤충, 지역사, 등등 견훤의 무덤에서 미끄럼 타고 놀았다는 엄마 이야기만 들어도 그 지역의 이야기가 무지하게 궁금해지는데 시장이 너무 기형적으로 발전해있는 건 아닌가 한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 같은 사람들이 정말 대부분이니 ... 인구가 두 번째로 많다는 대도시인 부산 - 부산영화제 때 나름 기대한 바가 있어 가보면 정말 척박했다. 보일라와 같이 드물게 문화잡지도 있고, 이 책에서 나온 출판사도 있지만 아직은... 마음 속에서 정말 응원하고 싶어진다. 지역 출판사들에게 건투를 빈다.

아쉬운 점


  • 모든 연재글을 모아놓은 책이 그렇듯이, 단편적인 글들이 모여있기 때문에 이 책에는 오랜 시간에 걸쳐 하나씩 읽어보는 독서방식이 맞는 것 같다. 지하철 같은 곳에서. 그렇기 때문에 책이 좀더 얇아야한다고 생각한다. 크기가 작으면 금상첨화고! e-book으로 팔거나 RSS로 공개하면 더 좋고! 저자가 여러 명이다 보니 10명 읽으면 2명 밖에 기억 안 나는 상황이 ... 좋은 영화 왕창 봤더니 오히려 띄엄띄엄 본 그저그런 영화들보다 덜 기억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나처럼 RAM 작은 인간들은 힘들다.

    개인적으로 여러 저자의 글을 모은 것은 잘 안 읽게 되는데, 한 저자가 짜놓은 글을 길게 감상하고 또 다른 저자의 글을 읽는 것이 훨씬 더 성찰적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깊이 들어갔다 나와야 바깥이 어두운 걸 알게 되는 것 같다. 짧은 글은 몰입도 짧다.



  • 이 책을 읽으면서 '아, 이거 못 읽었네.' '아, 이거 읽어야겠다.' 한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저자들의 책자랑은 매우 바람직하고 듣기에도 즐거운 것들. 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펴낸 또 다른 책 '취미는 독서'를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내가 좋아하고 쓰다듬고 싶은 책들에 대한 느낌이 잔잔해서 좋다. 그렇지만 자기의 편집 인생을 이력서 쓰듯이 편집한 책과 거쳐간 회사들을 쭉 써놓은 글은 굉장히 별로였다. 기획편집자라기보다는 '그냥 회사원' 느낌?



  • 지난 학기에 문헌정보학과 수업을 들어서 그런 것인지, 출판'업계'로서의 이야기들이 적은 것 같아 좀 아쉽다. 도서정가제라든지 온오프라인 판매에 대한 것이라든지, 기획을 할 때 고려해야하는 객관적인 시장상황에 대해서 글이 좀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물론 연구자가 아니기 때문에 섣불리 쓰는 게 힘들기도 하겠지만서도 ... 도서관이 폭발적으로 증가를 한 것이나 독서문화기획 등등과 관련하여 그러한 객관적인 변화들이 기획자로서의 시각에 어떠한 변화를 주었는가, 출판업계에 어떠한 충격이 있었나, 그러한 것들은 현장인으로서 생생하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그 많은 편집자들 중에 몇 명은 있지 않았을까? 관련 없는 사람들은 잘 안 가는 도서전 이야기만 좀 자주 나온 것 같다.(그렇다고 그 이야기가 싫었다는 건 아니다.)


상관없는 이야기


  • 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낸 책들 정말 좋군.

  • '출판업계 회사원'이 아니라 '기획편집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고 그래서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책을 만들어 팔아야되니 기획해야지, 라는 이상한 spirit을 발산하는 사람들보다는 출판도 하고 무슨 모임도 하고 공간도 꾸며보고 등등 필드에 상관없이 자신의 '기획'이라는 창조적 작업을 전개시켜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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