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문, 환문총
전호태 지음 / 김영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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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사회에 있어서 5세기는 커다란 변혁기이다. 공간이라는 측면에 있어서도 요동을 장악하고 요서로 세력을 뻗어 나갔을 뿐만 아니라 그 공간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도 '위나라 때에 비해 세배'라고 할 만큼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확대를 이루었다. 서로 다른 문화적 습성을 가진 공간과 사람들이 합류하면서 문화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어찌보면 필연이라고 할 수 있다. 고구려 사회 또한 바로 이 시기에 횡적갈등과 종적갈등을 겪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마도 이 환문총이 보여주는, 백회 아래로 사라진 고구려인의 춤사위 그림과 새로이 그려진 겹둥근무늬는 바로 당시의 사회상을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격변의 시기에 관한 기록이 부실한게 참 안타까울 뿐이다.

소설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이 책에서, 환문총의 주인이 될 대형 한보는 마지막까지 전통사상과 새로운 불교사상 사이에서 고뇌를 거듭하는데 이런 부분들은 상당히 설득력 있게 이해되었다. 소설 설정상 상대적으로 열린 사고를 가진 귀족 한보는 점차 불교를 이해해가기 시작하는데, '정토에 가면 모든 인연의 끈이 풀린다는데 외롭지 않겠는가. 차라리 조상의 땅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는게 낫지 않을까'라는 고민이라든지, 윤회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만일 이웃 연보네 송아지로 태어난다면 정말 난감한 일이 아닌가'라는 식의 고민은 상당히 재밌게 읽히기도 했다. 고구려인들은 현재의 삶이 이어진다는 사후세계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무덤 안의 벽화를 현실 모습과 같이 꾸미는데, 이와 같은 그림을 지우고 전혀 색다른 형태의 그림을 그렸다는 것은 피매장자의 세계관이 바뀌었다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것 같다.

다만 소설에서는 한보가 벽화를 다시 그릴 것을 주문하고 눈을 감았고, 화공이 오랜고민 끝에 문득 깨닫는 바가 있어서 동심원을 그리는 과정으로 해석했는데 이것은 조금 의문이 든다. 어느 분야든 단순화와 추상화가 가장 어렵지 않은가. 그것은 정수를 함축적으로 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문양이 불교적 표현이 맞다면 전통에 따른 그림을 지울것을 지시한 사람과 겹둥근무늬를 다시 그릴 것을 지시한 사람은 동일인이며 불교에 대한 상당한 이해가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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