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충성 - 충성과 배신의 딜레마
에릭 펠턴 지음, 윤영삼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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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이라고 하면 으레 국가에 대한 혹은 조직과 상관에 대한 수직적 관계에 있어서의 그것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여기에서는 충성을 부부, 가족, 친구 등과 같은 수평적 관계에서의 사랑, 의리, 신뢰, 성실 등의 개념으로 치환할 수 있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의무와 같은 충성만으로는 인식해서는 부족함이 있다.  

 

 충성은 어느 시대에서나 최고의 덕목으로서의 지위를 가지면서도 동시에 낡은 유물 같은 취급을 받기도 했던것 같다. 셰익스피어가 충성으로 주인을 따랐던 하인을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처럼 묘사한다든지, 심지어 기원전 로마의 한 극작가가 충성스러운 성품을 가진 사람을 '고대의 덕목을 가지고 있다'고 묘사한 것, '충성은 어떤 시대에나 이전 시대에만 존재했던 것'이라는 로마의 격언을 통해 그와 같은 이중적 지위를 느낄 수 있다.

 

충성은 여전히 살아있는 덕목인가? 불편하게 시작하는 서론에 비하면 결론이 진부하긴 마찬가지다. 여전히 우리 삶에서 해야할 일이 많은 덕목이라는 것이다. 다만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 충성이 가지는 내재적 갈등, 마찰 또는 딜레마를 풍부한 사례를 통해 끄집어 내는 점이 전반적으로 가장 좋았다. 충성이 단순한 덕목이 아니라 훨씬 복잡한 선택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특히 관심있게 봤던 부분이 가족에 대한 충성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공동체로 보는 측면도 있고 제도적으로 접근한 이유도 있는것 같다. 가족에 대한 충성은 종종 정의에 반하는 경우가 있다. 부모가 자식의 범죄사실을 알았을 경우 부모는 법원에서 증언을 해야할까? 일반적으로는 어느 국가나 가족제도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가족관계의 특권을 인정하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본능적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이용해 부모를 감시하는 전체주의적 행태에 대해 불쾌감을 표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족 특권'을 제한없이 확장시키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것은 가족 간에 범죄를 공모하려는 시도를 고취시킬 것이고 종국적으로는 가족제도를 붕괴시킬 것이다.

 

우리의 제도와 이론을 살펴보면 이러한 논의들을 이미 담고 있는데, 이를테면 교통사고를 낸 사람이 가족으로 하여금 허위 진술로 그 가족이 피의자로서 조사를 받도록 함으로써 범인도피를 교사한 경우, 피교사자는 친족간 특례 규정에 따라 처벌을 받지 않으나 교사자의 경우 '방어권의 남용'을 이유로 처벌을 받는다. 위 논의에 비추어 절묘하다고 생각된다.

 

 풍부한 사례를 통해 충성을 시험대에 올려 놓고 검증해 보았고, 비로소 막연한 의무에서 벗어나 사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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