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화가들은 우리 땅을 어떻게 그렸나 생각나무 ART 17
이태호 지음 / 생각의나무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조선 후기의 유명한 화가들이 그린, 진경산수화에 담긴 우리땅의 절경을 찾아 그림과 실경을 비교한 책인데, 특히 저자는 초점거리 50mm 표준렌즈와 35mm, 28mm 광각렌즈 및 180도를 촬영하는 파노라마 카메라를 가지고 진경 작품의 현장을 답사했다고 한다. 현장답사를 하며 작품들을 분석하니, 정선의 진경 작품은 28mm 이하 광각렌즈나 파노라마 카메라이어야 겨우 소화할 수 있었고, 김홍도의 진경 작품은 35~50mm 렌즈의 카메라로 그 작품과 같은 실경이 잡혔다고 한다. 이와 같은 분석으로써 부감시(俯瞰視), 다시점, 시방식(視方式, view point) 그리고 화각(畵角, angle of view)을 보다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조선의 진경산수화풍을 확립한 것은 겸재 정선(1676-1759)이다. 물론 고려시대와 조선 중기까지도 우리나라의 실경을 그린 실경산수화의 흐름이 있었지만, 그 작품들을 살펴보면 표현력이 상대적으로 풍부하지 않고 무엇보다도 현재 남아있는 작품들이 별로 없다. 오히려 조선시대 중기까지는 중국의 산수를 소재로 그린 관념산수화가 주류적인 흐름이었다. 관념산수라는 것은 조선 문인들이 실제로 가보지 않은 중국의 산수를 이상향으로 상상하여 그린 그림을 말하는데, 이런 분위기에서 조선의 실경을 소재로 한 진경산수를 하나의 장르로 확립한 문인이 바로 정선이다.

 

그런데 정선의 진경산수를 실경산수로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그 유명한 '인왕제색도' 정도를 제외하면 실경과 닮은 작품을 찾아보기 드물다고 한다. 아마도 진경(眞景)의 의미를 어떻게 파악하는지에 따라 생각을 달리할 수 있을것 같은데, 저자는 정선이 생각하는 진경(眞景)을 '실재하는 진경과 더불어 이상향이라는 선경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즉 소동파가 '회화에서 대상의 닮음(形似)을 강조하는 것은 어린애 수준'이라고 평가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겠다. 실제로 정선의 작품을 살펴보면 사람의 화각으로는 단번에 볼 수 없는 장대한 자연경관을 압축적으로 그려넣기도 하고, 실경을 보고 받은 인상과 감명을 지각현상을 통해 장쾌하고 리드미컬하게 풀어놓기도 하는데, 이것은 정선이 뛰어난 화가이자 경학에도 밝은 문인이었기 때문에 그림에서 문학적인 감각이 표출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정선의 회화는 비판도 받았다. 정선의 독특한 특징 가운데 하나인 부감법(俯瞰視, 위에서 내려다 본)에 대해서 '새처럼 하늘에서 내려다보았다면 진실이겠다'는 평가가 있었는데, 한마디로 구라치지 말라는 것이다. 또한 조선후기 대표적인 문인화가 표암 강세황(1713-1791)은 정선의 그림이 사실묘사가 결여되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표암 강세황 아래서 화가로 성장한 이가 바로 단원 김홍도(1745-?)이다. 모두가 너무나도 잘 알다시피 김홍도는 산수, 인물, 풍속, 동물 등 모든 분야에서 사실적인 회화로서 기량을 뽐낸 화가였다. 표암 강세황도 그에 대해 '자연의 조화를 빼앗을 정도로 잘 그려 일찍이 이런 솜씨가 없었다'며 극찬했다고 한다. 겸재 정선이 성리학적 이념에 입각한 진경산수화를 그렸다면, 단원 김홍도는 근대성에 입각한 실경(實景)과 같은 진경산수화를 그렸다고 볼 수 있겠다. 회화에 있어서 근대화라는 시각에서 본다면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는 과도기적 진경산수화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조선 중기까지의 관념산수에서 겸재류의 진경산수를 거쳐 단원류의 진경산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옛 화가들의 활동과 화풍 및 풍부한 도판자료가 소개되어 있고 아울러 문예사적 흐름까지 파악할 수 있는 정말 괜찮은 책을 읽었다.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있는 정말 괜찮은 책이 우연히 손에 걸린듯 싶다. 저자의 또다른 책 '옛 화가들은 우리 얼굴을 어떻게 그렸다'에도 관심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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